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고 보는 베스트셀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새로운 시리즈를 들고 돌아왔다. 그것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을 배경에 담은, 2020년 겨울에 전 세계에 동시 출간한 뜨끈뜨끈한 신작으로. 탐정이나 형사가 사건을 수사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너무 전형적이거나 식상해서일까. 작가는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인다. 바로 '블랙 쇼맨'이다. 지금은 50대 중년의 조그만 카페 사장이지만 한때 미국 무대를 화려하게 주름잡았던 전직 마술사였던... 그런 그가 자신의 친형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 나선다. 형의 하나밖에 없는 조카딸과 함께... 여기 552쪽의 압도적인 분량으로 전개되는 블랙 쇼맨의 화려한 추리쇼가 막이 오른다.

책은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점잖게 흘러간다. 속도감이 있다거나 드라마틱하게 요동치지 않고 차근차근 한 단계씩 사건의 중심부에 접근한다. 끊임없이 잔펀치를 날리다가 마지막에 KO 한 방을 터트린다고나 할까. 그런 단조로움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블랙 쇼맨이라는 캐릭터의 신출귀몰한 전방위적 활약상이다. 과연 민간인인 주인공이 전문가인 형사들에 앞서 어떻게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사건을 수사해 나갈까. 그것이 이 책의 감상 포인트이다.

주인공의 수사 방식은 무척이나 독특하고 개성이 넘친다. 불법 도청과 감시 카메라는 기본이고, 귀신같은 손재주로 상대방의 스마트폰을 몰래 훔쳐보고, 예리한 눈썰미에 경찰 고위층과도 담판을 벌이는 두둑한 배짱, 상대를 교란시키는 즉흥적인 거짓말과 뛰어난 임기응변 등등... 어찌 보면 타고난 사기꾼 기질의 이 모든 것이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마술사로 성공하기까지 무대에서 갈고닦은 경험과 관록의 산실이리라. 하지만 수전노 같은 경제관념에 조카 돈이나 뜯으려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면 도덕성과 인간성은 거의 바닥에 가깝다. 그야말로 속이 시커먼, 음흉한 '블랙' 쇼맨이다.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는 마치 홈즈와 왓슨 콤비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블랙 쇼맨과 피해자의 딸, 즉, 삼촌과 조카의 알콩달콩한(?) 캐미이다. 아버지 살해 사건의 진상을 알고자 삼촌과 의기투합했지만 때론 비열하고, 치사하고, 불법적인 삼촌의 수법을 조카는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전방위적 정보 습득력과 날카로운 추리, 신속한 추진력 등 사건을 캐내어가는 뛰어난 재능에 감탄하며 삼촌의 수사에 일조해 나간다.

사건의 배경은 피해자가 교편을 잡고 퇴직한 자그마한 마을이다. 피해자의 제자이자 딸의 중학교 동창들이 동창회 건으로 속속 모이는 가운데 그들 대부분이 최근에 피해자와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모두 용의자 선상에 오른다. 그 배경에는 <환뇌 라비린스>라는 매가 히트작으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한 동창생을 중심으로, 그 인기와 캐릭터를 이용해 낙후된 마을을 되살리려는 동창생들, 그들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여기에는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끝이 안 보이는 경제적 불황과 심리적 불안감도 한몫한다.

경야와 장례식 그리고 동창회를 통한 삼촌과 조카 콤비의 비밀스러운 합동 수사는 계속되고...용의자를 한데 불러 모은 중학교 교실에 삼촌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대단원의 막이 오른다. 그리고 펼쳐지는 블랙 쇼맨의 화려한 추리쇼.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살해 동기는 무엇인가. 사실 이 책을 기발한 트릭, 놀라운 반전, 의외의 범인 같은 본격 추리의 관점으로 보면 다소 심심하다. 오히려 기존의 정통성에 탈피해서 범인을 색출해내는 색다른 접근법에 집중하면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수수께끼 풀이의 새로운 방식이라는 작가의 시도는 제법 참신하고 성공적으로 보인다. 독창적인 수사 방식과 비범한 추리 그리고 화려한 쇼맨십으로 무장한 블랙 쇼맨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거기에 조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조카와의 찰떡 캐미까지...이 책을 통해 블랙 쇼맨을 내세운 새로운 시리즈가 무사히 정착되길 기대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