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21.봄호 - 69호
계간 미스터리 편집부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계간 미스터리> 그것도 따끈따끈한 <2021 봄호>이다. 그래서인지 출판사도 바뀌고, 표지 디자인도 확 달라졌다. 속을 들여다보니 레이아웃도 정갈하니 깔끔하고 글자도 시원시원하다.

<추리소설가 20인에게 듣는다>는 기획도 참신하고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덕분에 추리소설가의 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법원 양형조사관으로 재직하는 홍성호 작가가 "자신의 직업이 글 소재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다소 의외였고, 홍선주 작가의 "독자가 작의를 다르게 이해할 때 씁쓸하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한국 추리소설이 외국 추리소설보다 못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독자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달라."라는 주문에는 다소간의 반론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동일선상에서의 비교는 힘들기 때문이다. 아주 예전에 "왜 방화는 외화보다 재미가 없을까요?"라고 리포터가 물으니, 유명 촬영감독이 "외화는 해외에서 흥행이 검증된 작품을 선별해 수입하는 것이고, 방화는 흥행 여부에 관계없이 극장에 걸리는 것이고...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라고 답했다, 지극히 옳은 논리이고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는 일본과 서양 미스터리를 작가의 인지도 및 흥행 성공과 권위있는 상 수상 여부 등 재미와 완성도에서 검증된 작품을 선별해서 국내에 들여온다. 반면, 한국 미스터리 책은 그런 과정 없이 일단 출간한다. 흥행 여부는 차후의 문제이다. 선별된 외국 작품과 국내 소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류삼 작가의 <추리소설가의 하루>는 특별한 내용도 없는데 은근히 빨려 들어간다. 일상 에세이의 담백한 위력인가. 그러면서 마지막에 혹시나 반전을 기대하는 요상한 심리... 누가 미스터리 팬이 아니랄까봐...ㅎㅎ 비슷한 느낌의 에세이 <작가의 방>도 흥미롭게 읽었다. 예술가, 작가, 창업자의 용도로 쓰이는 세 개의 책상들... 나 같으면 두 개는 처분, 하나로 통일하고 남는 공간을 활용하지 않을까 싶다.

마라톤이 올림픽의 꽃이라면, 수록된 단편 소설들은 미스터리 잡지의 꽃이다. 다른 기획 기사들보다 소설이 재밌어야 한다. 읽어보니, 앞의 네 편은 보통, 뒤의 두 편은 괜찮았다. 대부분 작품들이 꼼꼼한 자료 조사나 전문적 지식 없이 머릿속 구상만으로 가볍게 쓸 수 있는, 소설로서의 깊이가 부족한 느낌이다.

연쇄살묘범을 추적하는 소년탐정단의 활약을 그린 <코난을 찾아라>는 경쾌하게 흘러가다 뜬금없는 반전으로 마무리되고, 제법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푸른 수염의 방>은 결말을 위해서는 중간에 복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소녀의 진상을 추적하는 <엄마와 딸>은 본격과 사회파 이도 저도 아닌 진부한 느낌이고, 치매 걸린 노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그린 <긴 하루>는 미스터리물로서의 작가의 정확한 의도를 읽지 못하겠다.

역사 추리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의문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목마장 주인 김만일의 기지와 추리가 빛나는 <목호 마조단>은 재미와 짜임새가 좋다. 특별초청작인 서미애 작가의 <숟가락 두 개>는 살인사건의 진위를 놓고 벌이는 딸과 수양아버지의 공방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잔잔한 여운의 사회파 추리물이다.

여담으로, 앞의 20인 인터뷰를 보니 추리 작가분들이 리뷰에 민감하고 나쁜 평가에 씁쓸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는데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돈과 시간, 정성을 들여 소설을 읽었는데 건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다면 그 허탈감과 실망감은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생산자(작가)는 좋은 상품(소설)을 시장에 내놓을 의무가 있고, 소비자(독자)는 그중에서 맘에 드는 상품(소설)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한새마님이 소개한 <고바야시 월드로의 초대장>를 보니 꽤나 많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그만큼 국내 독자에게 인기가 있다는 증거. 하지만 나에게는 호불호가 존재하는 작가이다. 본격물인 <밀실, 살인>과 단편집 <커다란 숲의~> 그리고 SF 스릴러 <인외 서커스>는 합격점인 반면, 죽이기 시리즈와 <기억 파단자>는 한마디로... 유치했다. 특히 죽이기 시리즈는 고전 동화를 차용한 유아틱한 전개가 내 취향과 체질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본격물 <밀실,살인>을 정말 문제작이다. 당시에 리뷰들을 찾아보니 많은 이들이 작가의 회심의 트릭을 눈치 못 챈 듯... 이 자리를 빌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디저트 격인 황세연 작가의 <예지몽 살인>은 재밌다. 그런 생각지도 못한 정답이 숨어있다니... 역시 추리작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짧은 단편이라도 어디에 어떤 트릭이 숨어있는지 모르니 문장 하나하나 초집중해서 읽게 된다. 그게 본격 추리물만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이 외에, 대한민국 제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박사님과의 인터뷰, 작법의 기초이자 뼈대가 되는 플롯의 구성 방식과 패턴 등을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 기사도 유익하게 읽었다. 보통 미스터리 커뮤니티가 작가는 작가대로, 독자는 독자대로 따로 노는 경향이 있는데 네이버 밴드 '추사사'를 보니 작가와 독자 간의 양방향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모임이라 보기 좋았다.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와 존 르 카레 관련 기사는 시간 날 때 천천히 읽어볼 예정이다.

오랜만에 접하는 계간 미스터리... 최근 몇 년 새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하는 신인 작가분이 많이 보여 반갑다. 늦었지만 축하드리고 부디 정진하셔서 재미난 추리소설을 많이 발표하셨으면 좋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