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전쟁 이스케이프 Escape 3
존 카첸바크 지음, 권도희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작년 초에 사두었으나 분량(700쪽)의 압박때문에 미뤄왔던 존 카첸바크의 1999년 작품 <하트의 전쟁>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사실 카첸바크의 국내 출간작들인 <애널리스트>와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에서 별 감흥을 못받았기에 이 책을 읽기전에 일말의 걱정이 있었습니다만...한마디로 그것은 기우였네요.

 
1944년 독일 스탈라그 루프트 13 포로 수용소...미군, 영국군, 연합군 조종사 만 여명이 포로로 수용된 이 곳에서
'장사꾼 빅'이라고 불리우는 미군 대위가 공동 화장실 안에서 피살체로 발견됩니다. 모든 정황 증거들이 피살자와 앙숙 관계였던 수용소의 유일한 흑인이자 미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인 링컨 스콧 중위를 살해범으로 지목하고 있고...하버드 법대 졸업반인 토머스 하트 소위는 미군 최고 지휘관 루이스 맥나마라 대령의 명령으로 용의자 스콧 중위의 변호를 맡아 사건 조사에 착수합니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될수록 조작된 증거와 배후 세력이 존재함을 알게 되는데...

  

이 책에는 라스트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잔인한 폭력이나 화려한 액션씬은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료한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밀리터리 법정 스릴러라고 해야 할까요. 포로수용소라는 한정된 장소와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700쪽의 방대한 분량을 끌어가다보니 마치 내 자신이 그 곳 수용소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작가의 인간 심리에 대한 섬세한 내면 묘사가 때론 속도감을 더디게 만들기도 합니다만 포로소용소와 살인 사건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긴장감으로 인해 딱히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습니다.

 

한치 앞의 생명을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해가는 전쟁 포로의 실태와 그들이 느끼는 감정선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고 비록 수용소에 한정되지만 독일군과 미군 포로들간에 오가는 상당히 평화스런 분위기와 미군 최고 지휘관이 판사 자격으로 진행하는 군사 재판에서 포로 수용소장인 독일 대령이 방청석에서 흥미롭게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장면등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내려는 하트 소위와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간의 치밀한 두뇌 싸움 그리고 이어지는 군사 재판에서의 법정 공방...반전이 일어나는 100여쪽의 라스트씬은 그야말로 이 책의 백미입니다. 에필로그에서는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전해지는군요. 오랫만에 접한 명품 스릴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인들의 저택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도착의 론도>,<도착의 사각>,<도착의 귀결>,<원죄자>,<침묵의 교실>에 이은 여섯 번째로 만나는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입니다. <이인들의 저택>이란 표지와 제목을 보면 왠지 으스스한 분위기의 공포 소설이 연상되지만 이 책은 공포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미스터리 서스펜스 드라마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서술 트릭의 대가'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이지만 이 책에 서술 트릭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치의 빈틈도 없이 정교하고 복잡하게 짜여진 플롯은 독자를 정신없이 현혹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아들 고마쓰바라 준이 사이코 숲에서 실종되자 자식의 무사 귀환을 고대하며 어머니 다에코는 유령작가인 시마자키 준이치에게 아들의 일대기를 책으로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는데... 준이치가 취재가는 곳마다 얼핏 그림자만 비추는 실체없는 미행자, 누군가 존재하는 것 같은 음습한 지하실, 사이코 숲속에서 발견되는 의문의 백골 시체, 아버지 켄토, 어머니 다에코, 아들 준, 여동생 유키의 복잡한 가족사 등...유령작가 준이치가 실종된 고마쓰바라 준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 취재 및 조사를 할수록 각종 의문스러운 점들은 쌓여만 갑니다.

 

화자가 계속해서 바뀌는 교차 서술 방식에 현재와 과거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시점, 소설속에 또 다른 소설 거기에 숨겨진 사건의 진상, 주요 등장인물인 유키, 유코, 준, 준이치등 엇비슷한 이름이 마구 교차하면서 이야기는 정신없이 숨가쁘게 흘러갑니다. 그야말로 오리하라 이치만의 독특하고도 현란한 전개 스타일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흡입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리고선 마지막 이인의 정체와 함께 숨겨진 배경과 진상이 드러나고 그토록 복잡했던 이야기가 실타래 풀리듯 하나의 완벽한 결말로 마무리될 때 아! 과연 오리하라 이치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더군요.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은 <도착의 론도>와 닮았습니다. 다만 좀 더 등장인물이 많고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이고 저택과 사이코 숲을 오가는 등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또한 각종 치밀한 복선이 깔리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은 그의 대표작 <원죄자>를 보는 듯 합니다. 폭풍처럼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결말 부분에 비해 중간 부분 전개가 다소 평이하고 느슨한 느낌도 있었습니다만 한마디로 오리하라 이치만이 쓸 수 있는, 오리하라 이치만의 스타일이 완연히 녹아있는 꽤나 만족스런 작품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신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8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남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네요. 요코미조 세이시 스탈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신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8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남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카기 아키미쓰란 작가의 1948년 데뷔작품입니다. 동서판 표지가 조금 그렇긴 하지만...내용은 한마디로 대박입니다. 대전쟁의 패전으로 인한 암울한 일본 도쿄...문과 창문이 모두 잠긴 욕실에서 문신이 그려진 몸통 부분만 사라진 여인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과연 시체는 누구이며 몸통은 어디로, 왜 사라진 것일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의 연쇄 살인...문신사 아버지가 그린 쌍둥이 딸들과 아들의 3자견제 문신 그리고 그 문신의 숨겨진 비밀...편집광적으로 문신 수집에 집착하는 박사...밀실 수수께끼 포함 범인이 숨겨놓은 치밀하고 교활한 물리적, 심리적 트릭을 파헤치는 탐정의 기발하고도 논리정연한 추리가 빛을 발합니다.

 

문신이 갖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전편에 흐르는 가운데 밀실, 시체 소실, 문신의 비밀, 범죄의 숨겨진 동기와 진상 등 본격 추리의 요소가 제대로 묻어난 수작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들과 견주어 대등하던가 오히려 더 완성도가 뛰어난 느낌...요코미조 세이시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께 강추합니다. 절대 후회없으실 듯...가격도 저렴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르루 지음, 양혜윤 옮김 / 세시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하도 어릴 적에 읽었던지라 범인外에는 스토리 자체가 전혀 기억에 없는 <노란 방의 비밀>이 2011년 9월 세시출판사란 곳에서 제대로 된(?) 판형과 글씨로 출간됐기에 구매해서 읽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책은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가 1907년에 발표한, 세계 최초로 밀실 미스터리를 다룬 '밀실 트릭의 바이블'로 통하는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한마디로 세계 10대 추리소설안에 드는 걸작이죠. 

  

유명한 과학자인 스타제르송 박사의 딸이자 조수인 마틸드 양은 아빠와의 연구를 끝내고 실험실에 붙은 노란 방에 자러 들러갑니다. 하지만 몇 분 후 그 노란 방에서 딸의 살려달라는 비명과 총소리가 들리고...다급한 아빠와 일꾼 영감이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목을 졸리고 관자놀이를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딸이 바닥에 쓰러져 있을 뿐 범인은 오간데 없습니다. 피묻은 손자국과 의문의 발자국 그리고 쓰러진 가구들...문과 창문이 모두 잠긴 밀실에서 과연 범인은 어디로 들어왔다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요.

 

생클레르라는 초보 변호사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역을 맡고, 사건을 풀어가는 탐정역의 주인공은 조셉 룰르타뷰라는 이제 갓 수습 딱지를 뗀, 18세의 엣되지만 추리 능력이 비상한 에포크지 청년 기자입니다. 여기에 룰르타뷰의 라이벌격인 파리 경시청 형사 프레드릭 라르상이 등장, 두 사람간의 불꽃튀는 수사 대결을 보여줍니다. 형사 라르상이 철저한 현장 감식과 수집된 증거로 범인을 추적하는 발로 뛰는 스타일이라면 주인공 룰르타뷰 기자는 확고한 논리와 비상한 추리로 범인을 찾아내는 머리를 쓰는 탐정 스타일로 두 사람의 추리 대결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피해자인 딸과 그 아빠 그리고 그녀의 약혼자를 중심으로 그 성을 관리하는 자크 영감,  문지기 부부, 산지기, 여인숙 주인 부부등 주변 사람들의 각종 이해 관계가 다양하게 얽혀있는 가운데 밀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연이어 두번째, 세번째 사건이 발생합니다. 성 안의 2층 복도에서 네 사람에 의해 쫒기다 바로 눈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범인, 총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뒤바뀐 시체등 첫번째 밀실 사건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불가사의한 사건들이 잇따르며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세계 최초의 밀실 미스터리라는 소재와 더불어 그 완벽한 스토리 전개와 철저한 사건 해결의 논리성에 있습니다. 등장 인물들의 모든 행동과 대사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거미줄처럼 얽힌 모든 의문스런 에피소드들이 마지막에는 실타래 풀 듯 자연스레 하나의 결말로 완벽하게 해결됩니다. 밀실 사건에 굉장한 뭔가가 있을 거라는 인간 심리의 맹점을 교묘히 이용한 트릭, 예상치 못한 범인과 그 동기성, 마지막 법정에서 주인공 룰르타뷰에 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논리정연하게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과 범인 그리고 그 와중에 피해자와 그 관계자들의 명예를 생각해 주는 신사적인 배려까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노란 방의 비밀>은 역대 최고의 탐정소설이다"라는 존 딕슨 카의 말이 허언이 아니더군요.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별 다섯 개 만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