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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미스터리
J.M. 에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단숨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5월 4일 금요일...홈스가 사라졌던 라이엔바흐 폭포가 지척에 있는 스위스의 베이커 스트리트 호텔에서 10명의 홈스학자들이 학회를 연다. 이들은 소르본대 총장인 보보 교수의 주관하에 신설되는 홈스학과의 초대 정교수직을 얻고자 모여든 자들이다. 참가자 모두 초대 정교수직에 대한 욕망과 그러기 위해서 라이벌들을 제거해야 하는 악의를 감추고 있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눈사태로 호텔은 매몰되고 전기, 전화, 냉난방, 탈출로등이 모두 차단된다.
나흘뒤 호텔 지배인과 소방대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갔지만 발견된 건 참혹한 시신 11구뿐...남아있는 건 그들의 일기장과 각종 메모 그리고 음성 파일뿐이다. 과연 이곳에서 나흘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 흉측한 대참사의 진실과 범인은 누구인가. 현장을 방문한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발견된 자료들을 토대로 깊은 추리에 빠져든다.
이 책을 나흘간의 미스터리한 일정을 추적해서 범인을 밝혀내는 정통 추리소설로 생각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이 책은 그러한 유형의 책이 아니다^^ 『셜록 미스터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에 대해 알아야한다. 1971년생 프랑스인으로 고등학교 프랑스어 교사이기도 한 저자 J.M. 에르는 "즐거움, 유머, 놀이가 소설의 원동력"이라고 말하듯이 재기발랄함이 넘치는 작가다. 이 책 역시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블랙 유머와 도발적인 스토리텔링이 잘 살아있다.
학회 참가자들은 자신이 정교수로 선택받기위해 놀랄만한 홈스 관련 미공개 친필 원고가 있다면서 저마다 비장의 히든 카드를 꺼내 든다. 뤼팡은 홈스의 숨겨둔 아들이다, 허드슨 부인은 홈스의 정부이자 추리 파트너였다, 나는 홈스의 증증손자이다 등 온갖 해괴망칙한(?) 주장들이 난무한다. 일부분은 하도 기가 막혀 크크크하며 미친듯이 웃었다 ^^.
마치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믹 연극을 감상하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첫번째 사망자가 발생하고 서로를 비꼬고 힐난하는 블래 유머로 가득했던 전개가 조금씩 본격 추리소설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연이어 사망자가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고립된 호텔에서의 사건의 양상은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불후의 명작『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전개를 그대로 답습한다. (여기서 주의!『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범인과 범행 방법이 고스란히 나온다).
홈스의 정전(正典, canon)인 장편 4편과 단편 56편에서 차용한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작품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등장해서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홈스 작품들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추억에 젖기도 한다. 책 중간중간에 홈스의 실재 여부, 여성관, 변장술, 잭 더 리퍼와의 관계등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셜로키언이 이 책을 본다면 정전에서 차용한 수많은 주옥같은 대사와 홈스의 과거, 정체, 여성관등 알려지지 않은 홈스의 여러가지 얘기를 접하는 새로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황당한 이론과 주장을 내세워서 홈스를 희극화시키는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에 다소 마음이 언짢을 수도 있겠다. 또한 대학 교수 임용 기준을 여성과의 잠자리 횟수로 결정한다는 등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블랙 유머가 작품 기저에 흐르고 있어 여성 독자의 반응이 궁금하다.
암튼 작가의 위트가 담긴 블랙 코미디에 본격 미스터리를 가미한 아주 독특한 소설이다. 세계적인 대탐정 홈스를 추종해서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무척이나 재기발랄한 놀이의 세계를 한 번 접해보시길 바란다. 마지막장의 반전은 가벼운 애교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