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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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기묘한 설정의 감성 미스터리이다. 주로 트릭과 반전이 판을 치는 본격추리물을 읽다가 이렇게 비현실적 배경에 감성을 자극하는 소설을 읽으니 그 느낌이 색다르다. 이 책은 시급 300엔의 저임금을 받고 사자의 미련을 풀어주어 다시 저세상으로 보내는 걸 돕는,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남자 고등학생이 겪는 이야기이다. 사자란 죽은 뒤에도 미련이 남아 그 미련을 해소할 때까지 추가시간을 받아 살아가는 죽은 자라는 뜻. 물론 사신은 그러한 사자를 돕는 역할을 한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들의 손편지를 찾아달라는 아버지, 아이가 무사히 자라는 걸 보고 싶은 어머니, 자신을 학대해 죽게 만든 엄마에게 복수를 하고픈 딸 등 사자의 기구하고도 다양한 사연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돕지만 밝혀지는 이면에는 놀라움이 가득하다. 과연 누구를 위한 미련인가? 자기 자신? 아니면 상대방? 그 미련을 해소함으로써 구원을 받아 편안하게 이승을 하직할 수 있을까. 오히려 체념의 길이 바르고 빠르지는 않을까. 사자의 애절한 미련이 남을수록 오히려 상대방의 행복을 저해하는 독소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극의 흐름상 충분히 예견되는 이야기이며 한 편의 동화 같은 이별 장면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천만 영화 <신과 함께>가 생각나기도 하고, 시간이 멈추는 장면에서는 강동원 주연의 <가려진 시간>이란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미련은 존재한다. 내가 만약 원치 않는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자가 된다면 나의 미련은 무엇일지 상상해 본다. 가족, 부모, 친구, 친척 등에 대한 원망이나 현 사회와 세태 같은 것에 대한 불만일까... 하지만 그러한 미련을 해소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만화스러운 장정에 재미나고 가벼운 문체, 얼핏 라이트노블스러운 작품이지만 제법 묵직한 스토리에 먹먹한 울림이 있다. 읽은 지 며칠 지났는데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나저나 책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이 겨울에 뭔가 가슴이 따스해지는 그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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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회관 밀실 살인사건 한국추리문학선 3
윤자영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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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독특한 스타일의 한국 추리소설과의 만남이다. 작가는 현직 고등학교 과학 교사로 재직 중인 윤자영 작가.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생물, 화학 같은 과학을 베이스로 한 트릭이 많이 등장한다. 책은 1,2,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는 2015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한 등단작 1부 <습작소설>을 장편화해서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야기의 시작점은 강원도 정선의 한 폐교에서 추리 마니아들이 모여 거금의 상금을 걸고 추리게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독살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이 밝혀지면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이야기가 거대한 배후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과연 거액이 들어간 이 추리 게임을 시행한 궁극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한 설계자는 누구인가?

책은 크게 정선 폐교에서 벌어지는 추리 게임과  재벌 2세의 갑질 구타 사건 이렇게 두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정선 폐교 사건 현장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주인공이 배후 세력의 존재를 눈치채고 개인적 복수와 사회 정의를 위해 뛰어난 추리와 대담한 행동력으로 배후의 실체를 밝혀내 복수에 성공하는 스토리는 재밌다. 즉 스릴러적 완성도는 제법 괜찮다.

하지만 추리소설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출판사 홍보 글을 보면 클로즈드 서클, 커피잔 트릭, 밀실 살인, 암호 풀이 등 추리 마니아를 솔깃하게 하는 다양한 추리 요소들이 등장하는데 읽어보니 시체를 완벽히 처리하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먼저, 책 제목의 밀실 살인사건. 도대체 밀실 살인사건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무릇 '밀실 살인'이란 출입이 불가능한 장소에서 피살자만 존재하고 범인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경우를 말하지 않는가. 이 책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밀실 살인은 없다. 작가는 3부의 폐쇄된 지하 대피소안에서의 살인 사건을 밀실 사건이라 칭하는 것 같지만...

두 번째, 커피잔 트릭. 동일한 여덟 개 커피잔중 하나만 독이 들어 있어 한 사람이 죽는다. 무릇 범인이 목표하는 사람이 죽어야 트릭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희생자가 누가 됐건 육안으로 구별이 어려운 동일한 잔에서 범인이 독이 든 커피를 피하는 방법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트릭의 실체 역시 뭔가 기발한 방법을 기대했는데 그런 트릭이라니 조금은 실망스럽다.

마지막 암호 풀이. 금고를 열기 위해 세 개의 암호가 제시되는데  이게 포커 전문가, 유전학 전공자, 불꽃놀이 기술자가 아니고서는 일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암호다. 당연히 암호 풀이에 동참도 어려울뿐더러 암호가 풀렸을 때 개인적으로 아무런 감흥도 발생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부분은 2부에서 참가자들이 시체를 완벽히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이다. 그런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들이 존재한다니... 추리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라면 어떻게 할까?"하고 공상의 나래를 펼친 적이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물론 참가자들이 각종 모의 살인 현장에서 주변 정황만 보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 범인을 특정하는 장면이라든지, 주인공이 1부 커피잔 트릭의 범인과 3부 지하 대피소에서의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장면 등 소소한 추리적 재미를 주는 부분은 셀 수 없이 많다.

책을 다 읽고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추리와 스릴러 사이에서 길을 잃다."이다. 재벌 2세 구타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대립을 시작으로 폐쇄된 지하 대피소에서의 숨막히는 생존 서바이벌 게임등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적 재미는 충만한 반면 (그것도 사실 국무총리 더 나아가 대통령까지 등장할 정도로 너무 나간 측면도 있다.), 트릭을 기반으로 하는 추리소설로서는 조금은 아쉽다. 앞으로도 작가가 전공을 살려 재미난 과학 추리물을 많이 써주길 바라며, 한편으론 스릴러물을 집필해도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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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의인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2
에드거 월리스 지음, 전행선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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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란포식의 모험 활극 소설이네요. 하지만 마지막 밀실 살인 트릭은 꽤 신선했습니다. 네 명의 의인에게 축복이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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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 / 스핑크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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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사람을 죽였나요? 아니면, 그 사람이 목이 잘린 채로 저를 안고 걸어 나온 것일까요?" 15년 전,  폐쇄된 산골 마을의 신흥 종교 단체의 집단 자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성이 탐정 사무소를 찾아와 그날의 흐릿했던 해괴망칙한 기억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의뢰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부정해 아무것도 안 남는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라며 기적의 논리를 믿는, 아이돌 뺨치는 외모의 미청년 탐정은 사건을 면밀히 조사한 후에 의뢰인에게 결과를 보고한다. 그것은 그 어떤 트릭도 없는 순수한 기적이었다고...(세상에나...기적을 믿는 탐정이라니...ㅠ)

그러자 "사기 치지 마라. 기적은 없다 "라고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며 나타난 검사 출신의 노인. 그는 오로지 가능성만을 따져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황당무계한 수준의 가설을 제시한다. 하지만 탐정은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라는 시크한 멘트와 함께 상대의 가설을 논리적으로 철저히 분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도전자의 등장과 제시되는 역시 황당한 수준의 새로운 가설... 하지만 이 또한 탐정의 "그 가능성 역시 이미 떠올렸다"라는 시그니처 멘트와 함께 논리적인 반론에 꼬리를 내리고....

기적을 믿지 않는 자의 계속되는 도전과 기적밖에 없다는 탐정의 응전. 가능성만 믿고 막무가내로 공격하는 자와 논리적으로 철저히 방어하는 자. 이 화려한 추리 대결의 끝은 어디일까. 정말 기적이 일어나서 그 소년이 머리가 잘린 채로 다리를 다친 소녀를 안고 집단 자살 현장에서 탈출한 걸까...

한마디로 현란한 추리 대결이 펼쳐지는 한 편의 무협 드라마를 본 느낌이다. 고전 문헌과 각종 역사적 사실과 지식들을 인용한 현학적인 대사들이 난무하고, 가설 위에 새로운 가설, 반론 위에 새로운 반론, 부정의 부정 등  매 라운드에 걸쳐 다양한 추리가 판을 친다. 특히 세 번째 도전자의 가설은 그 개연성과 가능성에 있어서 감탄을 자아낸다. 비록 탐정의 논리적인 반증에 그 즉시 부정되어지는 운명이지만...

막판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과 뒷배경이 밝혀지는데 아마도 속편을 위한 포석이리라. 라노벨스러운 가볍고 코믹한 문체와 분위기가 때론 추리의 진중함을 방해하지만 딱히 걸림돌은 안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도전자를 물리친 탐정이 최후로 밝히는 사건의 전모...그것은 과연 기적의 증명일까...하지만 이 역시 숭고한 희생정신이 깃든 또 하나의 서글픈 가설이리라...어쨌든 첫 번째 도전자의 가설부터 마지막 탐정의 결론까지 다양한 추리를 검증, 대조해가며 정말 재밌게 읽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데뷔 2년 차인 2015년에 발표해서 "제16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올랐다. 당시 수상작은 <죽음과 모래시계>. 두 작품을 비교해 보니, 수상작이 의젓한 범생이 스탈이라면 이 작품은 천방지축 통통 튀는 날라리 스탈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이듬해 속편 <성녀의 독배 -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로 "2017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본격물에 매진하는 신인 작가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고, 당연히 속편도 조만간 국내 정발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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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모래시계 - Novel Engine POP
도리카이 히우 지음, 정대식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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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온 사형수가 수감된 제리미스탄 종말 감옥. 이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두뇌가 총명한 죄수 슐츠 노인이 젊은 청년 앨런을 조수 삼아 사건 해결에 도전한다. 제시되는 여섯 개의 수수께끼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1. 밀실 상태인 독방에서 살해된 죄수의 진상은?
2. 몸에 전자 감시 장치인 마이크로칩이 이식된 죄수가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에서 탈출한 경로는?
3. 퇴임 사흘을 남기고 죽은 감사관의 진상은?
4. 묘지기가 죽어서 묻힌 죄수를 다시 파내어 시신을 훼손한 이유는?
5. 남녀 접촉이 불가능한 감옥에서 여죄수가 아기를 잉태한 사연은?
6. 사형이 확정된 청년 앨런의 운명과 놀라운 가족사는? 

무척 독특한 배경과 독창적인 스토리의 본격 미스터리이다. 각 단편마다 이해불가한, 또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사고가 등장하고, 죄수인 슐츠 노인과 청년 앨런이 홈즈 - 왓슨 콤비가 되어 사건을 풀어나간다.

일단 첫 번째와 두 번째 단편은 무척 재밌다. 죄수의 배경도 흥미롭고 작가가 구사하는 트릭이나 사건의 진상이 본격 추리물로서 완성도가 높다. 역시 "제16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다운데...하고 기대감이 상승하는데...그  이후부터가 문제다. 트릭의 개발이 여의치 않아서일까. 세 번째 단편부터는 트릭이 약해지며 동기와 스토리텔링 쪽으로 무게추가 쏠린다. 그러면서 본격 추리물로서의 재미가 빛을 잃는다.

단편이 이어질수록 이야기의 깊이가 더욱 심도 있게 전문적으로 흐를 뿐, 트릭은 허술하고 반전은 작위적이다. <죽음과 모래시계> 같은 고차원적인 제목 말고 그냥 "종말 감옥의 미스터리 (또는 수수께끼)"라고 대중적으로 표현하면 너무 단순한 걸까. 초반부가 너무 재밌어서 기대가 컸는데 아쉽다. 비록 용두사미 격의 절반의 재미에 만족했지만 작가의 필력이나 식견만큼은 우수하다.

이 작품을 쓴 도리카이 히우라는 작가는 생소한데 작가의 작품이 좀 더 소개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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