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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회관 밀실 살인사건 ㅣ 한국추리문학선 3
윤자영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꽤 독특한 스타일의 한국 추리소설과의 만남이다. 작가는 현직 고등학교 과학 교사로 재직 중인 윤자영 작가.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생물, 화학 같은 과학을 베이스로 한 트릭이 많이 등장한다. 책은 1,2,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는 2015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한 등단작 1부 <습작소설>을 장편화해서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야기의 시작점은 강원도 정선의 한 폐교에서 추리 마니아들이 모여 거금의 상금을 걸고 추리게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독살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이 밝혀지면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이야기가 거대한 배후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과연 거액이 들어간 이 추리 게임을 시행한 궁극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한 설계자는 누구인가?
책은 크게 정선 폐교에서 벌어지는 추리 게임과 재벌 2세의 갑질 구타 사건 이렇게 두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정선 폐교 사건 현장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주인공이 배후 세력의 존재를 눈치채고 개인적 복수와 사회 정의를 위해 뛰어난 추리와 대담한 행동력으로 배후의 실체를 밝혀내 복수에 성공하는 스토리는 재밌다. 즉 스릴러적 완성도는 제법 괜찮다.
하지만 추리소설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출판사 홍보 글을 보면 클로즈드 서클, 커피잔 트릭, 밀실 살인, 암호 풀이 등 추리 마니아를 솔깃하게 하는 다양한 추리 요소들이 등장하는데 읽어보니 시체를 완벽히 처리하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먼저, 책 제목의 밀실 살인사건. 도대체 밀실 살인사건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무릇 '밀실 살인'이란 출입이 불가능한 장소에서 피살자만 존재하고 범인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경우를 말하지 않는가. 이 책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밀실 살인은 없다. 작가는 3부의 폐쇄된 지하 대피소안에서의 살인 사건을 밀실 사건이라 칭하는 것 같지만...
두 번째, 커피잔 트릭. 동일한 여덟 개 커피잔중 하나만 독이 들어 있어 한 사람이 죽는다. 무릇 범인이 목표하는 사람이 죽어야 트릭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희생자가 누가 됐건 육안으로 구별이 어려운 동일한 잔에서 범인이 독이 든 커피를 피하는 방법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트릭의 실체 역시 뭔가 기발한 방법을 기대했는데 그런 트릭이라니 조금은 실망스럽다.
마지막 암호 풀이. 금고를 열기 위해 세 개의 암호가 제시되는데 이게 포커 전문가, 유전학 전공자, 불꽃놀이 기술자가 아니고서는 일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암호다. 당연히 암호 풀이에 동참도 어려울뿐더러 암호가 풀렸을 때 개인적으로 아무런 감흥도 발생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부분은 2부에서 참가자들이 시체를 완벽히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이다. 그런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들이 존재한다니... 추리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라면 어떻게 할까?"하고 공상의 나래를 펼친 적이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물론 참가자들이 각종 모의 살인 현장에서 주변 정황만 보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 범인을 특정하는 장면이라든지, 주인공이 1부 커피잔 트릭의 범인과 3부 지하 대피소에서의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장면 등 소소한 추리적 재미를 주는 부분은 셀 수 없이 많다.
책을 다 읽고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추리와 스릴러 사이에서 길을 잃다."이다. 재벌 2세 구타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대립을 시작으로 폐쇄된 지하 대피소에서의 숨막히는 생존 서바이벌 게임등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적 재미는 충만한 반면 (그것도 사실 국무총리 더 나아가 대통령까지 등장할 정도로 너무 나간 측면도 있다.), 트릭을 기반으로 하는 추리소설로서는 조금은 아쉽다. 앞으로도 작가가 전공을 살려 재미난 과학 추리물을 많이 써주길 바라며, 한편으론 스릴러물을 집필해도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