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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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정교하고 치밀하고 복잡하다. 책을 덮은 지금도 정작 범인이 누군지 헷갈린다. 특히 핵심 결말 부분을 다시 한번 꼼꼼히 재독했지만 호텔에서 범인이 행한 마지막 엇갈린 행보는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다. 추리작가도 머리가 좋아야 하지만 그것을 따라가는 독자 역시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 순간이다.

『살인의 쌍곡선』은 '일본의 국민 추리작가'로 불리는 니시무라 교타로가 1971년에 발표한 본격 추리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 『종착역 살인사건』에 이어서 세 번째 만남이다. 쌍둥이 형제의 복수의 결의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도쿄 시내와 도호쿠 지방을 번갈아 오가며 숨가쁘게 진행된다. 도쿄에서는 쌍둥이 형제가 경찰을 대놓고 농락하며 연이은 강도 행각을 벌이고, 비슷한 시간대에 눈 내린 도호쿠의 고립된 호텔에서는 투숙객들이 연속해서 죽어나간다. 전자가 쌍둥이와 경찰 간의 쫓고 쫓기는 두뇌 싸움이 볼만하다면  연속 살인이 발생하는 후자는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의 연속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큰 수수께끼는 세 가지이다. 경찰의 추적을 받으면서까지 대범한 강도 행각을 벌이는 쌍둥이의 속셈은 무엇인가? 도호쿠 관설장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도쿄의 연속 강도 사건과 도호쿠 관설장의 연쇄 살인사건 사이에는 어떤 접점이 있을까?

사실 살인의 동기는 책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어슴푸레 눈에 들어온다. 그러한 이유가 아니고서는 딱히 피해자들 간에 뚜렷한 교집합이 보이질 않으니까. 유사한 동기로 복수를 실행하는 한국 스릴러 영화도 있고. 무엇보다도 감탄스러운 것은 독자의 눈을 속이는 핵심 트릭과 정교한 범행 과정이다. 작가는 첫 페이지부터 "이 책에는 쌍둥이를 활용한 메인 트릭이 등장한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것이 얼마나 대범하고 자신감에 찬 도발인지 책을 다 읽어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만큼 독자를 현혹시키는 정교하고 치밀한 플롯이 일품이다. 나도 깜빡 속았다.

굳이 논리적으로 따져들면, 단지 몇 마디의 감언이설로 생면부지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조정한다든지, 외부인이 아닌 내부인의 소행이라면 당연히 투숙객들을 한자리에 끌어모은 호텔 주인이 처음부터 용의선상에 올라야 한다든지 (물론 익명의 편지가 그 혐의를 희석시켜주지만서도)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이런 것들은 큰 틀에서 보면 찻잔 속의 미풍으로 치부할 만하다. 그나저나 한 명을 특정 짓기 어려운 쌍둥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이용한 범죄에 대한 완벽한 법적 제어 장치는 없을까.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쌍둥이 범죄자의 기고만장한 행태를 볼 때마다 구도 경부 대신 긴다이치 코스케 같은 천재적인 두뇌의 명탐정이 필요해진다.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페이지 넘어가는게 아까울 정도로 정말 집중해서 재밌게 읽었다. 도쿄와 도호쿠라는 두 지방을 넘나드는 이중 구조 속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설정을 차용한 긴장감 넘치는 전개, 독자를 현혹시키는 회심의 메인 트릭 등 본격 추리의 요소를 두루 갖춘 정통 클래식 미스터리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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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면
오사키 고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크로스로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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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이웃집 독거 노인의 심장발작 돌연사...평소 친분이 두터운 주인공이 노인의 집을 우연히 방문했다가 발견하지만, 다시 찾아갔을 때 시신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또다시 방문했을 때 시신은 어느새 제자리에...이 무슨 기묘한 조화인가? 홀로 사는 소심한 50대 남자 주인공은 머리가 총명한 이웃집 꽃미남 고등학생과 콤비를 이루어 이 수상한 미스터리에 도전한다.   

이웃집에서 벌어진 기묘한 사건을 이웃집 탐정들이 해결하는 코지 미스터리이다. 처음에는 시체가 등장했다 사라지고 해서 다소 진지한 본격물로 흐르는게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니고... 이 작품의 주무대는 맨션 즉 아파트라는 공동 공간이고, 주요 등장인물은 당연히 이웃들이다.

돌연사한 노인의 시체 이동 미스터리와 연관해서 다양한 수수께끼가 파생된다. 차 한 잔을 나눈 마지막 방문자의 정체, 주인공이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고를 미룬 이유, 시신을 최초로 발견한 자와 그 시신을 옮기게 된 경위 그리고 맨션 젊은 엄마들을 통해 들려오는 평소 자상했던 고인에 대한 수상쩍은 소문들...

주인공이 발로 뛰며 정보를 수집해 오면 홈즈역의 총명한 고등학생은 뛰어난 추리로 사태를 분석한다. 그렇게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를 종합해 보면...돌연사한 노인의 시신과 대면한 이는 여러 명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신고를 안했다. 물론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있겠지만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해 몸사리는 현대인의 극단의 이기주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고인이 연루되었을지도 모를 인근 초등학교 여자 아이의 행방불명 사건이 두 콤비의 전방위적 활약으로 무사히 해결되고 덩달아 고인의 명예도 회복되었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함은 이웃의 소중함 아닐까? 백수의 처지로 미래를 고민하는 주인공이나 학교에서 밀고자로 오인받아 왕따 신세로 전락한 고등학생이 유일하게 삶의 위로를 받는 곳이 이웃이요, 그들간의 따스한 정이다. 일상에서 벌어진 소동을 경쾌한 추리와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서 따스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건 그러한 이유에서 일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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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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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등단한 찬호께이 작가가 작가 생활 10년 동안 틈틈이 발표 또는 미발표한 단편들을 한데 묶은 단편 소설집이다. 열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기획자의 요구나 지면의 성격, 집필 의도 등에 따라 발표 시기, 분량, 소재, 장르가 다양하다. 

남녀 간의 애틋한 로맨스가 사이코 스릴러로 변질되고 <올해 제야는 참 춥다>, 본격 추리에 훈훈한 휴머니티가 더해지는가 하면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 영미권 도메스틱 스릴러를 보는 듯한 단편들도 있다 <내 사랑 엘리>, <자매>. 이토 준지의 호러물을 보는 듯한 오싹한 작품도 있고 <정수리>, 우스꽝스러운 배경의 본격 코믹 추리물도 있다 <악마당 괴인 살해 사건>. 그중에서 특히 재미나게 읽은 다섯 개의 단편을 소개하면...

사이코패스의 스토킹 범행 시점으로 전개되는 <파랑을 엿보는 파랑>은 독자를 잘못된 방향으로 미스리딩 시키며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철저하게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면서도, 한편으론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는 현대인의 모순된 양면성을 스릴러물로 잘 그려냈다.

시간을 파는 자와 시간을 사는 자 간의 운명적인 대립과 선택의 결과를 다룬 <시간은 곧 금>은 SF적 상상력에 삶을 돌아보는 교훈적인 윤리관까지 더해져 재밌게 읽었다. 근데, 시간을 사고파는 '시간 거래 센터'는 어떤 이윤으로 운영되는지 자세한 언급이 없어서 그게 더 궁금하기도 하다. ㅎ

추리작가로 등단하려면 실제 살인을 하고 오라니...본격 추리물인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 완전범죄를 꿈꾸는 회심의 밀실 트릭부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마지막 반전까지 더해져 무척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베스트 단편으로 꼽고 싶다.

<가라 행성 제9호 사건>은 새로운 행성 개척 도중 발생한 탐사선 추락 사망 사고를 파헤치는 본격 SF 미스터리이다. 보수파와 발전파의 팽팽한 대립과 견제 속에 지도부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파헤쳐 탐정은 냉철한 논리로 범인을 추적해 간다. 소설 속 탐정은 상황 논리상 독자와의 공정한 대결이 어렵다는 '후기 퀸 문제'를 다룬 실험성 짙은 단편이다.

강의실 여덟 명 학생 중에 조교가 한 명 숨어 있다. 그 조교를 찾아내는 <숨어 있는 X>는 지적 추리게임이다. 학생들이 논리적인 추론을 통한 소거법으로 용의자를 한 명씩 제거해 나가는 치열한 두뇌 공방이 볼만하다. 독자의 눈을 속이고 트릭을 완성하기 위해 약간의 무리수가 보이긴 하지만 클리셰한 '후더닛의 변주'로써 제법 특색있는 단편이다.

수록된 열네 편의 단편들을 곶감 빼먹듯이 천천히 야금야금 음미하면서 읽었다. 모든 단편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줘서 매우 만족스럽다. 책 말미에는 작가가 각 단편들의 탄생 배경과 뒷이야기를 친절하게 들려주는데 이게 또 쏠쏠한 재미를 준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걸작 <13.67>을 시작으로 단편집 <디오게네스 변주곡>까지 작가의 작품들을 여러 권 읽어보니 정말 찬호께이 작가의 다재다능한 재능은 우주 저 너머에 미칠 정도로 무한대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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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 합본 개정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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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은 최고의 범죄소설중 한 권인 <속삭이는 자>가 드디어 합본 개정판으로 나오는군요. 역시 분권보다는 단권인게 묵직하니 보기 좋네요. 그때의 전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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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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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방을 위해 달려가는 소설이다. 그 한 방은 마지막 장에 몰려 있다. 중간 과정은 그 마지막 한 방을 위한 초석이나 디딤돌 정도라고 해야 할까. 야구로 치면, 주자를 야금야금 한 명씩 베이스로 출루시킨 뒤 커다란 한 방으로 일순간에 대량 득점에 성공하는 식이다. 그 정도의 통쾌함과 청량감이 있다.

장안을 공포에 떨게하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고 수사는 답보 상태. 시간이 흘러 그 희생자 중 한 명이 될뻔한 젊은 여성이 아마추어 추리 클럽인 '연미회'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왜 자신이 연쇄살인범의 타깃이 되었는지, 죽다 살아난 자신을 습격한 범인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범인은 왜 잡히지 않는지...

미스터리 작가, 전직 경찰, 범죄심리분석가 등으로 구성된 연미회 멤버들은 한 장소에 모여 열띤 추리 대결을 펼친다. 그 광경이 마치 앤서니 버클리의 고전 명작 <독 초콜릿 사건>을 보는 듯 하다. 일부 멤버들의 추리와 가설은 명확한 증거에 의한 합리적인 추론으로 제법 설득력이 있으나,  또  다른 일부 멤버들의 가설은 빈약한 증거와 허술한 추리로 인해 마치 망상이나 공상 수준의 뜬구름 잡는 식인 것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전작으로 재미있게 읽은, 맥주를 마시며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음주 추리 대결을 펼치는 <맥주 별장의 모험>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렇게 별 커다란 소득없이 연미회 멤버들의 추리 모임은 마무리되고 여성 의뢰인은 낙담한 심정으로 쓸쓸히 귀갓길에 오른다. 하지만...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여기서 대단한 반전이 일어난다. 마지막 한 방이 제대로 터진다. 물론 스포일러라서 말은 못하지만...사건의 숨겨진 진상, 연쇄살인범의 정체 등 온갖 의문점들이 마지막 장에서 안개가 걷히듯 시원스레 밝혀진다. 드러나는 사건의 전모는 경악 그 자체이다.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다. 그런 비밀스러운 뒷 배경에 가공할 음모와 계략이 숨어있다니...<끝없는 살인>라는 제목의 의미가 이제서야 와닿는 순간이다. 띠지에 나와있는 것처럼 참으로 기상천외한 범죄 소설이다. 니시자와 야스히코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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