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2009년에 등단한 찬호께이 작가가 작가 생활 10년 동안 틈틈이 발표 또는 미발표한 단편들을 한데 묶은 단편 소설집이다. 열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기획자의 요구나 지면의 성격, 집필 의도 등에 따라 발표 시기, 분량, 소재, 장르가 다양하다. 

남녀 간의 애틋한 로맨스가 사이코 스릴러로 변질되고 <올해 제야는 참 춥다>, 본격 추리에 훈훈한 휴머니티가 더해지는가 하면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 영미권 도메스틱 스릴러를 보는 듯한 단편들도 있다 <내 사랑 엘리>, <자매>. 이토 준지의 호러물을 보는 듯한 오싹한 작품도 있고 <정수리>, 우스꽝스러운 배경의 본격 코믹 추리물도 있다 <악마당 괴인 살해 사건>. 그중에서 특히 재미나게 읽은 다섯 개의 단편을 소개하면...

사이코패스의 스토킹 범행 시점으로 전개되는 <파랑을 엿보는 파랑>은 독자를 잘못된 방향으로 미스리딩 시키며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철저하게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면서도, 한편으론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는 현대인의 모순된 양면성을 스릴러물로 잘 그려냈다.

시간을 파는 자와 시간을 사는 자 간의 운명적인 대립과 선택의 결과를 다룬 <시간은 곧 금>은 SF적 상상력에 삶을 돌아보는 교훈적인 윤리관까지 더해져 재밌게 읽었다. 근데, 시간을 사고파는 '시간 거래 센터'는 어떤 이윤으로 운영되는지 자세한 언급이 없어서 그게 더 궁금하기도 하다. ㅎ

추리작가로 등단하려면 실제 살인을 하고 오라니...본격 추리물인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 완전범죄를 꿈꾸는 회심의 밀실 트릭부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마지막 반전까지 더해져 무척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베스트 단편으로 꼽고 싶다.

<가라 행성 제9호 사건>은 새로운 행성 개척 도중 발생한 탐사선 추락 사망 사고를 파헤치는 본격 SF 미스터리이다. 보수파와 발전파의 팽팽한 대립과 견제 속에 지도부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파헤쳐 탐정은 냉철한 논리로 범인을 추적해 간다. 소설 속 탐정은 상황 논리상 독자와의 공정한 대결이 어렵다는 '후기 퀸 문제'를 다룬 실험성 짙은 단편이다.

강의실 여덟 명 학생 중에 조교가 한 명 숨어 있다. 그 조교를 찾아내는 <숨어 있는 X>는 지적 추리게임이다. 학생들이 논리적인 추론을 통한 소거법으로 용의자를 한 명씩 제거해 나가는 치열한 두뇌 공방이 볼만하다. 독자의 눈을 속이고 트릭을 완성하기 위해 약간의 무리수가 보이긴 하지만 클리셰한 '후더닛의 변주'로써 제법 특색있는 단편이다.

수록된 열네 편의 단편들을 곶감 빼먹듯이 천천히 야금야금 음미하면서 읽었다. 모든 단편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줘서 매우 만족스럽다. 책 말미에는 작가가 각 단편들의 탄생 배경과 뒷이야기를 친절하게 들려주는데 이게 또 쏠쏠한 재미를 준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걸작 <13.67>을 시작으로 단편집 <디오게네스 변주곡>까지 작가의 작품들을 여러 권 읽어보니 정말 찬호께이 작가의 다재다능한 재능은 우주 저 너머에 미칠 정도로 무한대인 것 같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