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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하우스 - 드론 택배 제국의 비밀 ㅣ 스토리콜렉터 92
롭 하트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고 무선전파의 유도에 의해 비행과 조종이 가능한 무인기 '드론'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드론은 애초에 군사용으로 탄생했지만 이제는 고공 영상 사진 촬영과 배달, 기상정보 수집과 농약 살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물류 분야에서는 드론의 사용이 단순히 배송 확대가 아니라 기존 물류시장의 구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드론을 활용한 배송의 신속, 정확, 효율성은 기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더 나아가 대형 마트의 매출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다.
'클라우드'는 그런 드론 택배의 정점에 서있는 세계적인 슈퍼 기업이다. 백 개가 넘는 마더클라우드 지점은 전 세계에 방사선처럼 뻗어있고 고용된 종사자는 수천만 명이 넘는다. 클라우드는 높은 급여 외에도 직원 아파트,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완벽한 복지를 제공한다. 일과 휴식 공간 등 완벽한 삶이 안전하게 보장되는 꿈의 기업 클라우드.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 속에서 인간은 궁극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초울트라 슈퍼 기업 클라우드에서의 삶을 심오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한 SF 첩보 스릴러이다.
책은 세 명의 시선으로 교차 서술된다. 먼저 클라우드 회사의 창시자이자 췌장암으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CEO 깁슨 웰스가 블로그 형식으로 기업 클라우드에 대해 설명한다. 창업 배경과 급여 체계, 사회에 끼친 공헌도 등 인구 감소와 먹거리 부족으로 인간의 삶이 황폐화되는 불안전한 외부 세계로부터 중추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클라우드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경영 철학을 피력한다.
그러고는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때는 잘나가는 회사 대표였지만 클라우드의 저가 공세에 밀려 파산한 전직 교도관 출신 팩스턴. 그는 자신을 나락으로 빠트린 클라우드에 입사해, 제2의 삶을 꿈꾼다. 그곳에서 전직 여교사 출신의 지니아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는 지니아의 교묘한 술책. 지니아는 노련한 기업 스파이이다. 그녀의 임무는 정부로부터 거액의 세금을 감면받는 클라우드의 녹색 에너지 정책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 그녀는 시설 출입이 자유로운 보안요원 팩스턴의 신분을 십분 이용한다.
빨간색 셔츠의 피커로 선택된 지니아의 하루 일과를 좇다 보면 '현대판' 조지 오웰의 <1984>가 따로 없다. 손목에 차는 클라우드 시계는 현대판 족쇄이자 감시용 cctv이다. 출입 코드와 크레딧은 기본이고 등급 상태 등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시계에 의해 명령되고 감시된다. 화장실 가는 시간 15분, 식사 시간 30분도 허투루 쓸 수 없다. 물품을 찾아 지정된 컨테이너에 올려놓는 시간이 조금만 지체돼도 클라우드 시계의 등급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며 경고등이 켜진다. 단 1초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지옥 같은 업무의 연속이다.
팩스턴은 전직 교도관 출신이라는 경력으로 인해 파란색 셔츠의 보안요원이 된다. 오블리비언이라는 금지 약물 밀반입에 대한 전담반으로 투입되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자 동료와 상사로부터 신임은 두터워지고... 깁슨에게 항의하며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하는 최초 목표에서 조금씩 현실에 안주하는 타협점을 찾게 된다.
에너지 처리 시설로 잠입해 가는 지니아의 작전과 동선을 기준으로,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임무를 부여한 고객의 정체, 클라우드 기업의 사회적,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어두운 비밀들, 무한한 청정에너지 개발로 세계의 중심에 서려는 야심찬 계획, 깁슨을 암살하려는 음모와 금지 약물 밀반입 루트의 실체 등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보안요원으로서 승승장구하며 클라우드의 삶에 만족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팩스턴, 그런 팩스턴을 교묘히 이용하는 기업 스파이 지니아,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통제하는 클라우드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체제 전복을 노리는 저항군, 그 중심에서 자신의 경영 철학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굳건히 존재감을 과시하는 창업자 깁슨 웰스. 과연 그가 창조한 클라우드는 미래의 장밋빛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암울한 디스토피아인가. 황무지에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것인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공되는 공간에서의 통제된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에서의 팩스턴의 결의에 찬 행동은 묘한 울림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