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 말야, 왜 코모리로 되돌아왔어?
난... 네가 말한 '학교'는 여길 빠져나가기 위한 구실이라고 생각했어."

"물론 그럴 작정이었지. 그래서 그쪽에서 취직도 했었고.
왠지 코모리와 거기서 하는 말은 달라서 말야.
사투리라든가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으로 말야.
직접 체험해 보고, 그 중에서 자신이 느낀 것과 생각한 것.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잖아?
그런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을 존경해. 신용도 하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척이나 하는,
타인이 만든 것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기만 하는 인간일수록 잘난 척만 하지.
천박한 인간의 멍청한 말을 듣는 게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졌어.

난 말야,
타인에게 죽여 달라고 하고는 죽이는 법에 불평하는 그런 인생 보내기가 싫어졌어.

여길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코모리 사람들... 그리고 부모님도 존경할 수 있게 됐어.
내용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오셨구나라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rcolepsy 2014-06-1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 10월
 
우주 만화 Mr. Know 세계문학 10
이탈로 칼비노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접경 지역들, 지구의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옮겨 가는 통로에서 그녀는 현기증으로 느꼈지요. 우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 지구는 마치 거대한 양파 껍질처럼, 겹쳐진 지붕들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각각의 지붕은 다른 지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시에 모든 지붕은 최종적인 마지막 지붕을 예고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바로 그 마지막 지붕이 있는 곳에서 지구는 끝나며, 그곳에서 보자면 지구의 모든 내부는 이쪽에 있고, 그너머에서 단지 바깥세상이 있을 뿐이지요. 당신들은 그 지구의 경계선을 바로 지구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그 전체 덩어리가 아니라 단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이 바로 지구라고 믿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언제나 지극히 평면적인 차원에서만 살아왔으며,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경계선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구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는 그것을 절대로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지요. 우리에게 그것은 지극히 두렵고 또 터무니없는 전망으로 여겨졌답니다. 바로 그곳으로, 지구는 자신의 내장에서 배설하는 모든 것을 바로 그곳으로 분출하고 끈적거리며 내뿜고 토해낸 것입니다. 그것은 가스, 잡동사니 액체, 휘발성 물질, 보잘것없는 광물 등 온갖 종류의 쓰레기였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부정적인 측면이었고,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으며, 언뜻 떠올리기만 해도 우리는 역겨운 전율을 느꼈습니다. 아니 그것은 고뇌의 전율, 또는 정확히 말하자면 일종의 당혹스러움, 바로 일종의 현기증이었으며(그렇습니다, 우리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복잡했지요. 특히 르딕스의 반응이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약간의 매력도 깃들어 있었습니다. 마치 공허감, 또는 두 갈래의 길, 막다른 길의 유혹처럼 말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rcolepsy 2014-06-1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 8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설명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먼저, 반대로 우주가 무한하다고 가정해보자. 그 무한한 우주에는 K라는 존재가 살고 있다. K는 이 우주가 무한하다는 사실을,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 안에는 무수히 많은 ‘또다른’ K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록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K조차도 이백 광년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날 수는 없지만, 빛보다 빠른 텔레파시를 통해 무한한 우주에서 무한한 K들이 보내는 메시지로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K도 알 수 있다. 예컨대 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K는 밤늦은 시간에 술집을 나서다가 길에 쌓인 눈무지에 발을 헛디뎌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때 텔레파시를 수신하는 K의 휴대장치로는 다른 은하에서 살고 있는 K들의 메시지가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눈 위에 주저앉은 채 K가 메시지를 보니 어떤 K는 춥다고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어떤 K는 아직도 술집에 앉아 있었다. 한편으로 우리 지구의 K처럼 술집을 나서다가 쌓인 눈에 미끄러진 K도 무수히 많았다. 아픈 엉덩이를 매만지며 우리 지구의 K는 이 무한한 우주에는 넘어지지 않은 ‘나’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넘어진 ‘나’도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할 수 있는, 무수한 K에게서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한, K는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지구의 K가 일어서다가 맞은편에 서서 넘어진 그를 바라보며 깔깔대고 웃는 한 여자를 보게 됐다는 것이었다. 추위로 빨갛게 된 그 여자의 양 볼을 보는 순간, K는 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 예쁘게 웃는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K는 젊은 남자였으니, 그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 또 그런 여자를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렬하게 K의 마음을 두들겼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K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깨를 펴고 그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게 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렇다면 K는 그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아무리 진부하다고 해도 “시간이 괜찮으시면 차라도 한잔 하실까요?” 같은 말을 해야 한다. K의 인생에서 다시는 그런 여자를 만날 수 없을 테니까. 제일 좋은 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여자 쪽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한번 미끄러지는 것이다. 당연히 여자는 넘어지려는 K를 붙잡으려 할 것이고, 그러면 여자를 안고 넘어질 수 있으니까. 같이 넘어질 수만 있다면 한번 더 만날 수 있다. 그럴 때는 “어릴 때부터 미녀를 보면 넘어지는 습관이 있어서”라고 말하며 끝을 흐려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그 여자를 잡기 위해서 K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그건 바로 마구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는 휴대장치를 꺼내 보여주며 “다른 은하에서는 제가 이렇게 멍청하게 넘어지지 않았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여자를 사랑하는 K는 이 세상에 우리 지구의 K 혼자뿐이어야 하므로. 실제로 우주가 무한하든 유한하든 그건 알 필요조차 없다. 그녀를 사랑하는 한 K는 이 우주에 혼자뿐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 K는 휴대장치를 믿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그게 연인이든 가족이든 이웃이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인류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고, 또 그러므로 이 우주는 유한할 수밖에 없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rcolepsy 2014-06-1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 7월
 
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앨리스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입에서는 대뜸 '몽상가'란 말이 나왔다. 문명과 그에 따른 회의주의란 외피 아래에서, 그녀의 눈빛은 꿈꾸는 듯, 현실에서 벗어나 영원히 다른 세상으로 빠져든 사람처럼 초점을 잃었다. 옅은 초록 눈동자에는 상실감과 불완전한 갈망이 섞인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어색하고 조금은 수줍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진부한 존재에 의미를 불어넣을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아마 시대 탓이겠지만, 이런 자기초월에 대한 갈망은 [신학적으로 말해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같은 것으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앨리스는 ‘관계’라는, 의사 불소통의 우스운 연속을 익히 잘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살아왔다. 식품점 통로에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망설일 때, 통근 열차에서 신문 부고 난을 훑어보는 순간, 청구서 봉투에 붙이려고 달착지근하면서도 쌉싸래한 우표에 침을 바를 때와 같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자신의 반쪽을 만나리라는 생각을 유치하지만 고집스럽게 잃지 않았다.


냉소도 지겹고 본인과 타인의 결점만 찾아내는 것도 지겨워진 그녀는, 다른 사람을 향한 감정에 휩싸이고 싶었다. 선택의 여지 따위가 없는, 한숨지으며 “하지만 그이와 내가 정말 어울릴까?” 하고 물을 새도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를 바랐다. 분석이나 해석 따위가 불필요하고, 물을 필요도 없이, 상대가 자연스레 존재하는 상황을.


상대의 짙은 눈빛이나 세련된 정신세계 때문이 아니라 저녁 내내 혼자 일기수첩이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연애를 하려고 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 개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자기 문제를 홀로 직시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혐오스런 일이 있을까? 하지만 보람도 없이 지치도록 탐색한 끝에, 상상력을 길러주는 존재와 주택 대출금 부담을 함께 짊어지기로 한다면 그것은 용서[적어도 이해]받을 만한 일이다. 그 사람은 우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버리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굽은 등과 특이한 정치적 견해, 새된 웃음소리는 무시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는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


앨리스는 사랑을 이런 실용적인 의미로 생각하기 싫었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인물과 사귀는 것은 마뜩지 않았다. 그건 생리적, 심리적 필요라는 미명하게 사교계의 불량품들과 비겁하게 타협하는 거니까. 일상생활에 미묘한 농담(濃淡)이 필요하긴 해도, 어른의 세계에는 초월이란 개념이 끼어들기 어려워도, 그녀는 시인들과 영화인들이 미학의 마법 공간에서 아름답게 그려낸 영혼의 결합 같은 관계가 아니면 타협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rcolepsy 2014-06-10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 5월
 
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돈이 감촉을 가지고 있다는 건 기가 막힐 일이다. 호주머니 속에 별의별게 다 들어있는 경우에도 손은 콧종이와 오랫동안 넣고 다니어서 해진 종잇조각과 돈을 잘 구별해낸다. 그건 손의 신경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분명히 돈에 감촉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손을 만져본다. 그러면 손은 부끄러운 듯이 홍당무가 되면서 가늘게 떤다. 돈이 슬그머니 손을 집적거려본다. 손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우선 옷깃을 여미고 도사려 보인다. 싫으면 관둬라, 돈이 배짱을 내민다. 손이 주춤거린다. 그러다가 발작적으로 부들부들 떨며 돈을 부둥켜안아버린다. 돈은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슬슬 쓰다듬어준다. 그러다가 앗차, 하는 사이에 돈은 사라지고 손은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쥐고 쩔쩔 매고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rcolepsy 2014-06-1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