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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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설명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먼저, 반대로 우주가 무한하다고 가정해보자. 그 무한한 우주에는 K라는 존재가 살고 있다. K는 이 우주가 무한하다는 사실을,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 안에는 무수히 많은 ‘또다른’ K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록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K조차도 이백 광년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날 수는 없지만, 빛보다 빠른 텔레파시를 통해 무한한 우주에서 무한한 K들이 보내는 메시지로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K도 알 수 있다. 예컨대 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K는 밤늦은 시간에 술집을 나서다가 길에 쌓인 눈무지에 발을 헛디뎌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때 텔레파시를 수신하는 K의 휴대장치로는 다른 은하에서 살고 있는 K들의 메시지가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눈 위에 주저앉은 채 K가 메시지를 보니 어떤 K는 춥다고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어떤 K는 아직도 술집에 앉아 있었다. 한편으로 우리 지구의 K처럼 술집을 나서다가 쌓인 눈에 미끄러진 K도 무수히 많았다. 아픈 엉덩이를 매만지며 우리 지구의 K는 이 무한한 우주에는 넘어지지 않은 ‘나’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넘어진 ‘나’도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할 수 있는, 무수한 K에게서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한, K는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지구의 K가 일어서다가 맞은편에 서서 넘어진 그를 바라보며 깔깔대고 웃는 한 여자를 보게 됐다는 것이었다. 추위로 빨갛게 된 그 여자의 양 볼을 보는 순간, K는 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 예쁘게 웃는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K는 젊은 남자였으니, 그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 또 그런 여자를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렬하게 K의 마음을 두들겼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K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깨를 펴고 그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게 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렇다면 K는 그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아무리 진부하다고 해도 “시간이 괜찮으시면 차라도 한잔 하실까요?” 같은 말을 해야 한다. K의 인생에서 다시는 그런 여자를 만날 수 없을 테니까. 제일 좋은 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여자 쪽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한번 미끄러지는 것이다. 당연히 여자는 넘어지려는 K를 붙잡으려 할 것이고, 그러면 여자를 안고 넘어질 수 있으니까. 같이 넘어질 수만 있다면 한번 더 만날 수 있다. 그럴 때는 “어릴 때부터 미녀를 보면 넘어지는 습관이 있어서”라고 말하며 끝을 흐려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그 여자를 잡기 위해서 K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그건 바로 마구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는 휴대장치를 꺼내 보여주며 “다른 은하에서는 제가 이렇게 멍청하게 넘어지지 않았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여자를 사랑하는 K는 이 세상에 우리 지구의 K 혼자뿐이어야 하므로. 실제로 우주가 무한하든 유한하든 그건 알 필요조차 없다. 그녀를 사랑하는 한 K는 이 우주에 혼자뿐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 K는 휴대장치를 믿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그게 연인이든 가족이든 이웃이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인류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고, 또 그러므로 이 우주는 유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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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colepsy 2014-06-1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