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건 은행 강도, 아파트 오픈하우스, 인질극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보다는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닐 수도 있다.


<오베라는 남자>로 1300만 독자를 사로잡은 브레드릭 배크만의 최신작
전작을 워낙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었던 터라 기대감이 어느 정도 있었고 읽으면서 역시나 싶었다.
무릎을 치도록 유쾌한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 속에 서글픔이 섞이고,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는 등장 인물들의 몸부림이 처음엔 답답하다가 못내 측은해졌다.
불안한 인간들이 어른인 척 살아가는 너,나, 우리의 이야기가 브레드릭 배크만 특유의 블랙유머로 담겨 따뜻한 위로를 준다.


자전거 도둑도 없는 작은 도시에 허술했던 은행 강도 미수 사건이 순식간에 대형 인질극으로 바뀌었다.
권총을 든 마음 약한 강도는 항복을 선언하고 더럽게 말 안 듣는 인질들을 풀어주었다.
잠시 후 경찰들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할 때 한 발의 총성이 들리고 강도는 총과 핏자국을 남긴 채 사라진다.
부자 관계인 경찰 짐과 야크는 한마디도 지지 않는 인질들과 한사람씩 취조를 이어나간다.


소설은 말장난 같은 취조 장면에서 독자를 막 웃기다가 각장의 마지막에 슬쩍슬쩍 새로운 단서 하나씩을 던져 스릴감을 높인다.
단돈 6천 5백 크로나가 필요하여 은행을 털어야 했던 겁 많은 강도를 비롯하여 하나같이 너무나 독특하고 엉뚱해서 바보같은 인질들의 사연을 따라가다보면 나름의 걱정과 고민을 안고 불안한 어른으로 살고 있다.
저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들의 일상 이야기를 결코 무겁지 않게 담아냈다.


그녀는 발코니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그 정도 높이면 충분한지 알 수 없었다. 반드시 살고 싶은 사람과 반드시 죽고 싶은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이 그거다.
뛰어내리려는 곳의 높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사라는 자신이 둘 중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삶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 반대를 원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164쪽)


* 이 책은 다산북스에서 제공받은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도서협찬

이제 나는 먹는다.
이 말 자체는 승리의 진술이지만,
음식과의 더 평화로운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빙빙 둘러가는 기나긴 길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좋았겠지만)
동행자들로 가득한 길이었다.

캐럴라인 냅이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서평단에 신청했다.
명랑한 은둔자를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캐럴라인 냅의 마지막 에세이라고 하여 꼭 읽어보고 싶었다.
역시나 물 흐르듯 유려한 그녀의 글솜씨 실력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제본으로 받은 이 책은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 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 문화적 압박에 대해 써나간 생애 마지막 책으로, 암 진단을 받기 2개월 전에 탈고했으며 그가 죽은 다음 해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37킬로그램까지 내려가면서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던 그녀는 왜 굶기를 선택했는지.
식욕이란 것이 왜 그토록 복잡한 문제가 되었는지에 대해 여성의 욕구로 연결된 고단한 성찰의 과정을 통찰력있게 담아냈다.

굶고 사들이고 훔치고, 자신을 해치는 사랑에 빠지고.. 
거식증의 한때를 회상하며 냅은 깨닫는다.
'그 모든 욕구는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욕구에 대한 욕구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욕구를 충족하는 일이 아니라 욕구를 억누르려 애쓰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많은 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감정은, 갈망은 그 자체로 어쩐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릴 권리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스스로 노력해 얻어내만 한다는 생각, 욕구를 채우려면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많이 원하거나, 너무 섹스나 야망이나 갈망에 따라 행동하면 분명 그 청구서가 날아들고, 거기에는 대개 분노에 찬 자기비난의 야유가 달라붙는다.
넌 돼지야, 게으름뱅이야, 형편없는 인간이야.​

식사장애에 관한 책들이 꽂힌 자기계발서 서가는 연애 관계 문제를 다룬 책들과 따로 떨어져 있고, 강박적 쇼핑에 관한 책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다룬 책들과 따로 있으며, 문화와 미디어를 다룬 책들은 여성의 심리를 다룬 책들과 따로 떨어져 있다.
사실 세 진영은 서로 그리 다른 곳들이 아니다.
욕구의 문제-구체적으로 말해 너무 깊이 파묻혀 있던 여성의 욕구가 새로운 경로의 출구를 찾을 때 일어나는 일에 관한 문제-라는 가닥이 모든 진영을 하나로 묶는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진정으로 원하는 욕구에 대해 나 자신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용기를 얻었다.
더불어 두 딸이 여성으로서 감추는 것만이 더이상 미덕이 아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와 "왜?"라는 질문을 통해 욕구를 만족시킬 자격과 힘을 갖추기를 바란다.


#북하우스 의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서진 여름 - 이정명 장편소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가 사라졌다.
완벽한 성공에 이르는 그 공간에서 마흔네 살의 첫 아침에.
아내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절망했다.

이정명 작가님의 작품은 예전에 드라마로 먼저 접했던 기억이 난다.
<<바람의 화원>>은 당시 문근영, 박신양의 말해무엇 연기력과 김홍도 vs 신윤복 두 천재 화가의 그림대결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굉장히 오래전으로 기억하는데 2008년 드라마였다니..

이 소설은 성공의 절정에 있는 마흔네 살 유명 화가 한조와 그의 충실한 아내의 하루로 시작된다.
완벽했던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아내는 출간되지 않은 소설 한편을 남기고 사라졌다.
"열여덟 살 미성년자와 마흔 살 유명화가의 사랑 이야기"
누가 봐도 자신을 겨냥한 듯한 소설에 한조는 당황스럽기만 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소설이 출간되면 삶이 부서질 것이다.

이야기는 곧바로 여고생의 의문스러운 죽음이 있던 25년 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려한 하워드 주택과 볼품없는 맬컴 주택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웃이었지만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냉혹한 구조가 도사리고 있었다.
하워드 주택에 살던 큰딸 지수가 실종되고 며칠 후 시신으로 발견되던 날 이웃에서 살인자와 피해자가 되어버린 두 가족
하워드 주택 관리인이었던 진만과 그의 부인, 두 아들은 각자의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다.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살인을 인정했기 때문에 살인자가 된 진만과 서로를 지키기 위해 침묵하는 가족들,
그로 인해 얽히고 섥힌 오해들로 모두가 모두를 속였고 모두가 모두에게 속아 넘어간다.

현재와 25년 전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퍼즐이 맞춰져가는 듯한 느낌을 받다가 마지막은 의문문으로 남는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결말이지만 결국 서로를 지키려던 침묵이 상처와 얼룩으로 남았다.
서로에게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요며칠 더운 날씨로 여름이 왔구나 싶었는데 이 소설을 만나 더위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집중력 있게 읽었다.
처음부터 시선을 잡아두어 끝까지 직진하게 만드는 소설


* 은행나무 서포터즈3기로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주일의 학교 사계절 중학년문고 37
김혜진 지음, 윤지 그림 / 사계절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가 어린이책을 서평하면서 나랑 같은 책을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서 좋아"


아이의 독서습관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지만 읽기독립이 어느 정도 성공한 이후로 우리는 잠자리에서 각자의 책을 읽다가 잠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동화책 서평을 하면서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
동화에 담긴 무한한 상상력이 우리 모녀의 대화를 가끔은 외계인으로 가끔은 우주밖으로 또 가끔은 마법사로도 만들어 버린다.
어른들이 말하는 아이 키우는 재미라는게 이럴때 쓰는 말인것 같다. 
힘들지만 사랑스러우니 봐주겠어 ^^


<일주일의 학교>
책을 읽기 전에  어떤 스토리인지 대충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훨씬 신나고 상상력이 가득한 동화였다.

월,화,수,목,금 날마다 다른 일주일의 학교!

☔ 월요일의 학교에는 언제나 비가 와~ 우산이 필수!
🧗‍♀️ 화요일의 학교는 거대한 체육관 같지. 
교실마다 철봉과 미끄럼틀이 있고, 화장실까지는 방방 뛰어서 가야해.
🔑 수요일의 학교에서는 잠긴 것들을 열어야 해. 
교문과 현관은 물론이고 책상 서랍과 필통, 도시락마저 잠겨 있지.
🌆 목요일의 학교는 한밤중에 가는 학교야. 
다른 날이라면 잠옷을 입고 이를 닦고 누워야 할 시간에 학교로 출발~
🏰 마지막 금요일의 학교는 미완성, 우리가 직접 지어야 하는 학교야.


월요일의 학교를 매일 간다면, 비가 아무리 좋아도 곧 지겨워질 거다.
화요일 학교를 죽 다녀야 한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다.
비를 싫어하는 록이도 체육관이 조금 귀찮은 주인공도 밤이 무서운 전학생에게도..
오늘이 어땠든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의 학교가 기다리고 있어서 견딜만 하다.


책 속에 나온 일주일의 학교도 흥미로웠지만 다 읽고 난 후 아이가 가고 싶은 내일의 학교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아이가 만들어 낸 학교는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놀이터학교, 간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간식학교 등 유쾌한 상상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말하고 싶다.
어른들에게도 이런 재미있는 회사를 만들어 주세요~ 🤣


초등 저학년, 중학년이 보면 재미있을 동화


사계절어린이 출판사 도서협찬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 아르테 오리지널 9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 아이가 일곱살때 가족여행 중에 열감기가 심해서 대학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왜 대학병원까지 가게 되었는지 자세한 상황은 8년 전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우는 아이에게 다짜고짜 건넸던 여의사의 말투는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야! 왜 울어? 내가 너를 혼을 내길 했니? 주사를 놓았니? 왜 우니?"
우는 딸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어 의사한테 한마디 말도 못하고 병원을 나온게 내내 분했다.
그때 속상했던 마음에 썼던 글이 아직도 카카오스토리에 남아있다.
그 뒤로 대학병원에서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만날때도 있었고 아닐때도 있었지만 <신의 카르테>를 읽으면서 그때 일이 떠올랐고 엉뚱하게도 주인공 구리하라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나쓰카와 소스케 작가는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를 통해 처음 만났다.
읽으면서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작가의 필체에 좋은 느낌을 받았었다.

출판사에서 이전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았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말에 <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을 먼저 만났다.
소설 속에서 믿음직스런 주인공 탓인지 작가의 영향인지 이번 작품 역시 500쪽이 넘는 책이 편안히 읽혔다.
<신의 카르테>는 현직 의사인 작가가 쓴 글이라 현실감이 넘친다쳐도 이전 작품들까지 종합해보면 그저 작가의 능력이 존경스럽다.

환자를 끌어당기는 마성의 구리하라 이치토
그는 인사의 정점에 군림하고 있는 거대한 조직 시나노대학 부속병원에 근무하는 9년차 의사이다.
소화기 내과 3팀의 구성원이지만 지도의인 호조 선생님의 신출귀몰로 인해 구리하라 팀이라 불릴만큼 실세로 일하고 있다.
모순투성이의 대학병원이라는 조직에서 나름대로 순응하려 하지만, 29세의 췌장암 환자 후타쓰기 씨의 치료법을 둘러싸고 의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우사미 준교수와 격하게 부딪히고 만다.


"동이 트지 않는 밤은 없다. 멈추지 않는 비도 없다." (131쪽)​

"대학병원이 지내기 편하다고는 하지 않겠어. 하지만 뛰어난 의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췌장 전문가인 가키자키 선생님이나 응급센터의 이마카와 선생님 등은 그 대표 격이지.
그런 선생님들이 계시는 곳이 그저 숨 막히고 불합리하기만 한 곳이라고는 할 수 없어.
이곳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며 답을 찾는 중이야." (171쪽)

"기적이 일어날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의사여도 알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아무리 의료 기술이 발전했다 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294쪽)

"그 앞에 놓인 것이 희망인지 절망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유쾌인지 고뇌인지도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내팽개친다는 것은 얄팍한 생각이고, 알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삶'이라는 것이다" (530쪽)


맞은 줄 알았던 게 틀리기도 하고 부조리하다 생각했던 것에 그럴싸한 논리가 붙기도 하는 복잡한 구조의 대학병원!
생과 사의 현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구리하라같은 의료인이 있기에 이 소설을 읽고 나서도 긴 여운과 따뜻함이 남는 소설이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이 책은 아르테에서 제공받은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