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일곱살때 가족여행 중에 열감기가 심해서 대학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왜 대학병원까지 가게 되었는지 자세한 상황은 8년 전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우는 아이에게 다짜고짜 건넸던 여의사의 말투는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야! 왜 울어? 내가 너를 혼을 내길 했니? 주사를 놓았니? 왜 우니?" 우는 딸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어 의사한테 한마디 말도 못하고 병원을 나온게 내내 분했다.그때 속상했던 마음에 썼던 글이 아직도 카카오스토리에 남아있다.그 뒤로 대학병원에서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만날때도 있었고 아닐때도 있었지만 <신의 카르테>를 읽으면서 그때 일이 떠올랐고 엉뚱하게도 주인공 구리하라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다.나쓰카와 소스케 작가는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를 통해 처음 만났다.읽으면서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작가의 필체에 좋은 느낌을 받았었다.출판사에서 이전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았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말에 <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을 먼저 만났다.소설 속에서 믿음직스런 주인공 탓인지 작가의 영향인지 이번 작품 역시 500쪽이 넘는 책이 편안히 읽혔다.<신의 카르테>는 현직 의사인 작가가 쓴 글이라 현실감이 넘친다쳐도 이전 작품들까지 종합해보면 그저 작가의 능력이 존경스럽다.환자를 끌어당기는 마성의 구리하라 이치토그는 인사의 정점에 군림하고 있는 거대한 조직 시나노대학 부속병원에 근무하는 9년차 의사이다.소화기 내과 3팀의 구성원이지만 지도의인 호조 선생님의 신출귀몰로 인해 구리하라 팀이라 불릴만큼 실세로 일하고 있다.모순투성이의 대학병원이라는 조직에서 나름대로 순응하려 하지만, 29세의 췌장암 환자 후타쓰기 씨의 치료법을 둘러싸고 의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우사미 준교수와 격하게 부딪히고 만다."동이 트지 않는 밤은 없다. 멈추지 않는 비도 없다." (131쪽)"대학병원이 지내기 편하다고는 하지 않겠어. 하지만 뛰어난 의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췌장 전문가인 가키자키 선생님이나 응급센터의 이마카와 선생님 등은 그 대표 격이지. 그런 선생님들이 계시는 곳이 그저 숨 막히고 불합리하기만 한 곳이라고는 할 수 없어.이곳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며 답을 찾는 중이야." (171쪽)"기적이 일어날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의사여도 알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아무리 의료 기술이 발전했다 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294쪽)"그 앞에 놓인 것이 희망인지 절망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유쾌인지 고뇌인지도 알 수 없다.알 수 없으니 내팽개친다는 것은 얄팍한 생각이고, 알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삶'이라는 것이다" (530쪽)맞은 줄 알았던 게 틀리기도 하고 부조리하다 생각했던 것에 그럴싸한 논리가 붙기도 하는 복잡한 구조의 대학병원!생과 사의 현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구리하라같은 의료인이 있기에 이 소설을 읽고 나서도 긴 여운과 따뜻함이 남는 소설이었다.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은 아르테에서 제공받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