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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메일
이시자키 히로시 지음, 김수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운전 학원 차를 타고 학원까지 가는 시간은 30분 남짓. 그 시간이 내게는 달콤한 독서시간이다. 멀미라면 달고 사는 내가 왠일인지 이제는 멀미는 하지도 않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보란듯이 책 삼매경에 빠져든다. (책의 힘은 위대하다!)
오늘따라 가방에 든 책을 보며 차를 기다리는 곳으로 가는 발걸음이 신이 나는 건 노란색 책 표지가 마음을 설레이게 하기 때문일까? 그 설레이는 마음이 몸을 감싸기 전에 오늘도 마주치고 만다. 버스 속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그 아이들의 표정을 보지 말자고 하면서도 버스에서 시선이 고정되고 그 무표정함에 버스가 스쳐지날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을까? 란 생각, 그 아이들의 표정은 다 가방에 들어있는 걸까? 란 생각,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어느 새 그랬냐는 듯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돌겠지 란 생각을 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저 아이들처럼 학교 다닐 때 날 웃게 한 건 친구들이었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런 시절이 있다. 부모님보다 친구가 더 고맙게 느껴지고, 부모님보다 친구가 날 더 잘 이해하고 마음을 들어 준다는 생각이 드는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이처럼 친구가 절대적이던 시절 마음을 터 놓을 친구가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집에서도 부모님께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세상 누구하나 나를 이해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나는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이 책은 현실 세상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소녀들이 핸드폰과 인터넷이라는 것을 사용하여 가상 공간을 만들어 릴레이 소설을 써내려가는 이야기이다. 현실세계에서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현실세계를 거부해 버리겠다는 중학생 소녀들의 손길이 핸드폰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아이들은 굶주려 있다. 손에서 무언가를 놓지 못한다는 것은 움켜 잡고 싶다는 것. 아이들이 잡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가상세계, 허구, 자신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 그리고......
#손에서 잡는 순간, 놓을 수 없다.
운전 연습을 하는 내내 머리는 책 속을, 아니 아이들이 진행하는 릴레이 소설 속으로 들어가 있다. 이 책의 묘미는 아무래도 손에서 책을 놓기 힘들만큼의 몰입력이라고 해야겠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그 두 세계에서 어느 한 쪽 마음 놓고 볼 수 없게 만드는 건 작가가 의도한 긴장감일까?
현실세계에 환멸 혹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소녀들은 가상세계에서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흥미와 재미를 찾아가지만 가상세계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대로 변화 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면, 삶을 주인공으로 살아가려면 노력을 해야 함을 소녀들은 알아간다. 그 알아감은 섬뜩하기도 하고, 손에 땀이 날만큼 긴장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들도 나도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 삶이란 허구든 실제든 덮는다고 멈춰지는 것이 아니기에.
# 조금만, 조금만 더 마음을 열어주렴.
십대의 이야기를, 생각을 읽을 때면 가슴이 뜨끔해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십대의 마음을 잘 이해하던 이십대는 어느 덧 스쳐지나가고 이제 십대의 이야기에 그들의 아픔을 조장하는 어른이 되어 있음에 스스로 놀라는 나이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중학생 소녀들의 마음을, 자신과의 대화(?)를 훔쳐보며 그 나이 때의 내가 나타나 지금의 나를 나무란다. '잊은거야? 십대 일때의 네 고민, 삶을 송두리째 흔들 것 같았던 무기력, 세상에서 점점 고립 되어가는 외로움, 모두 다 잊은 거야?' 잊고 말았다. 학창시절 절대 되지 말자고 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제 멋대로 해석하고, 아이의 생각과는 상관 없이 최선의 선택이라며 결론을 내리고 따르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되지 말자고 한 어른이 되어서 나는 아이들에게 배척 당하고 아이들의 말은 화살이 되어 온 몸을 찌른다. 사과도 할 수 없는 아픔을 아이들에게서 본다.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단다. 아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단다. 걱정이 되서 그렇단다. 너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싶단다.
왜 이 말을 우리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믿지 않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말했어야 했다. 내가 너보다 너의 인생을 더 잘 알아 라는 말보다는 너의 고민, 아픔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알려고 노력은 해 보겠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아이들은 핸드폰을 손에 잡고 놓지 않는 대신 우리의 손을 잡았을 것이다. 뜨겁게 꽉!
책은 끝도 없는 긴장감으로 나를 몰고 간 후 책을 덮은 후에 아픔을 느끼게 한다. 신나게 읽어 놓게 한 후 이건 무슨 조화인가! 작가자 전하고자 했던 것은 긴장과 재미였을까? 아니면 소녀들의 마음을 이해해 하지 못한 어른들에 대한 경고, 친구의 아픔을 모른 척 하는 친구들에게 하는 경고였을까? 아니, 둘 다였다 하더라도 작가는 성공한 것이다.
현실이든, 가상의 세계든 만드는 것은 사람. 그 사람에게서 희망을 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 말이 틀린 것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확인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