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였나. 예전에 얼핏 들었던 "럭키 댄스" 어쩌구 하는 일본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서 유튜브를 뒤지다가 80-90년대 일본 음악에 흥미가 생겨서 여러 곡이며 가수를 접하게 되었다.(알고 보니 내가 찾던 노래는 밴드 C-C-B의 "럭키 찬스를 다시 한 번"이었다. 영어 가사도 가끔은 유용한 듯).
그렇게 알게 된 노래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이 블랙비스킷츠라는 혼성 그룹의 "타이밍"이었는데, 검색해 보니 1990년대 중반에 무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일본인 남성 코미디언 두 명과 대만인 여성 가수 한 명이 재미 삼아 결성해서 단기간만 활동하고 사라진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한다.
그런데 더 자세히 알아 보니... 귀여운 외모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그 대만인 가수가 바로 비비안 수였다! 엉뚱하게도 나귀님은 이 가수를 "뷰티풀 데이"라는 또 다른 노래로 처음 접해서 기억하고 있다. 피아노 소리가 인상적인 이 곡이 애니메이션 <쿠루네코>의 주제가로 나왔었기 때문이다.
<쿠루네코>는 저자 쿠루네코 야마토가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며 겪는 일상을 20년째 그리는 만화 시리즈인데, 번역본은 중앙북스에서 6권까지 나왔다가 절판되었고, 미우에서 재발매해 전20권으로 완간했으며, 1세대 고양이들이 모두 퇴장한 이후의 이야기는 <해피해피 쿠루네코>로 연재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여섯 권에 등장한 1세대 고양이들이 가장 개성적이라 기억에 남았던 반면, 저자가 본격적으로 냥줍과 임보를 담당하는 이후의 권들에서는 워낙 많은 고양이가 (심지어 남편까지) 등장해서 이름도 외우기 힘든 데다 각각의 특징이나 활약에 대한 묘사는 오히려 적어 재미도 덜했다.
<쿠루네코> 시리즈와는 무관한 내용으로, 작은 정사각형 판형으로 나온 고양이 의인화 사극 만화도 세 권 있는데, 이미 일상 묘사 중에 저자가 여러 번 드러냈던 역사 소설 및 드라마 애호 취향을 본격적으로 발휘한 작품이라 할 만하며, 세 권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서로 연결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애니메이션은 1세대 고양이들만 등장하는 처음 몇 권만 각색한 것으로 보이는데,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 짧은 분량이라고 기억한다. 한때 전편이 (러시아 오덕의 소행인지 러시아어 자막이 달린 상태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비비안 수의 노래는 애니메이션이 시작해서 제목이 뜨기까지의 몇 초 사이에 특유의 피아노 소리와 함께 "유라유라와라우요니..." 하면서 딱 두 소절만 나오고 끝나는데, 고양이의 나긋한 움직임이며 나른한 울음소리와 제법 잘 어울렸기 때문인지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지금도 가끔씩 찾아 듣는다.
만화에서 가사로만 나왔던 고양이 노래가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예 곡조까지 붙어 재등장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특히 "토메가 왔다" 노래는 가사도 짧고 쉬워서 지금까지 나귀님이 유일하게 외우는 일본어 노래이다.("토메네코 토메네코 가와유키 가와유키네코 토메네코 하 토메토메 (하 토메토메)").
주제가와 고양이 노래 말고도 "고라노스폰사노데이쿄오쿠리시마스" 어쩌구 하면서 매번 반복되어 외우다시피 한 해설도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애니메이션 제작 협찬사를 소개하는 말이라고 한다.(어쩐지 <열하일기>에서 "기상새설"이란 국수집 광고를 사자성어로 착각했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쿠루네코>는 고양이 애호 만화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냥줍이나 캣맘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는 않는다. 저자도 종종 냥줍하지만 무작정 집에 모아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입양을 주선해서 내보내고, 장애가 있거나 파양을 당했거나 해서 딱한 사연이 있는 녀석들만 패거리로 들인다.
캣맘에 대한 비판도 각별히 눈여겨 볼 부분이다. 나중 권에서 쿠루네코 보육원이 한창 운영되던 즈음, 한 독자가 '우리 동네에 마음씨 좋은 아줌마가 길고양이를 돌보셨는데, 그분이 이사를 가시고 나서 길고양이가 방치되고 있으니 도와주세요'라고 이메일을 보냈을 때 저자가 비판적 견해를 밝힌다.
저자의 입장은 '내가 직접 키울 생각이 없는 고양이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차라리 한 마리라도 구조해서 직접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 끝까지 돌볼 의향이나 능력조차 없으면서 급식을 하다 마는 행위야말로 사실상 길고양이를 또다시 유기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캣맘은 길고양이 급식을 선행으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지속불가능한 위선에 불과하게 마련이다. 세상 모든 불쌍한 고양이를 한 사람이 다 구제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한 마리라도 들이는 게 낫고, 여유가 있으면 두어 마리쯤 더 보살피되, 일단 들이고 나면 끝까지 책임질 각오까지도 하라는 뜻이다.
나귀님도 <쿠루네코>를 읽으면서 냥줍이나 입양에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저자도 갖가지 일화를 통해 설명했듯이 말도 통하지 않는 또 하나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내용의 <뽀짜툰> 연재분도 입양을 신중하게 결정해 달라는 경고문을 달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쿠루네코>나 <뽀짜툰> 같은 만화가 오히려 애완동물 입양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일종의 교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단적으로 자녀의 출산이나 입양만큼 신중하게 결정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유기 동물이 많아졌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기 때문이다.
마침 바깥양반 후배가 힘든 일 겪고 나서 새출발을 다짐하며 고양이를 입양했다기에, 이왕 데려왔으니 잘 기르라는 뜻에서 <쿠루네코> 완질과 사극 만화를 선물했다. 이후 둘째까지 들이더니만 지금은 두 마리의 각종 사건사고와 병치레로 정신 없다고 하니, 그 만화를 괜히 선물했나 후회가 되기도...
[*] 쿠루네코 야마토의 또 하나 호감인 부분은 고양이 못지않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 역사와 사극 소설을 각별히 좋아하는지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는데, 나중의 권에서는 쿠루네코 패거리 중 첫째인 몽상과의 한때를 떠올리며 비싼 사료를 못 사준 것을 자책하며 '책을 좋아하다 보니 주머니는 텅텅 비었다'고 떠올린 대목이 나오기에 슬쩍 공감이 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