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프라하>라는 책이 나온다고 광고하기에 결국 카프카 100주기를 맞이해 재출간되는 건가 싶어 클릭해 보니, 제목과 내용과 판형까지 유사해 보이는데 저자가 한국인으로 완전히 다른 책의 북펀드 페이지로 연결된다.


내가 생각한 <카프카의 프라하>는 독일 작가 겸 출판인 클라우스 바겐바흐의 책으로, 2004년에 열린책들에서 간행되었다가 절판되었다. 제목 그대로 프라하의 카프카 관련 유적지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이다.


알라딘 책 소개를 보면 저자가 직접 설립해 운영한 바겐바흐 출판사에서 작가와 도시라는 주제로 간행한 시리즈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열린책들에서는 <카사노바의 베네치아>라는 책까지 달랑 두 권만 간행하고 중단했다.


작가와 도시라는 주제라면 과거 효형출판에서도 시리즈를 출간했지만 세 권만 내놓고 중도작파해 버렸다. 그린비에서도 비슷한 시리즈를 간행했지만, 여기는 유명 작가의 기행문에서 해당 도시에 관한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


나귀님은 클라우스 바겐바흐를 카프카 전문가로 기억하고 있는데, 과거 홍성신서에 포함된 카프카 서적 가운데 하나가 그의 저서 <카프카>였기 때문이다.(나머지 한 권은 엘리아스 카네티의 <카프카의 고독한 방황>이었다).


바겐바흐의 <카프카>는 전영애 선생 번역이어서 나중에 개정판이 나왔다가 절판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카프카 100주기에도 재간행되지는 못한 듯하다. 하긴, 기껏 나온 막스 브로트의 카프카 전기도 하필 올해 와서 절판이니.


북펀드로 광고하는 국내 저자의 <카프카의 프라하>와 바겐바흐의 <카프카의 프라하>의 목차를 비교해 보니, 지명이나 건물명 같은 고유명사 가운데 일부는 표기법이 다른데, 아마도 독일어와 체코어의 차이가 반영된 듯 싶다.


<카프카의 프라하>가 포함된 바겐바흐 출판사의 "살토" 시리즈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100종 이상 간행된 모양인데, 표지를 나란히 모아 놓은 사진을 보면 상당히 예쁘다. 이게 재간행되는 줄 알고 반가웠던 것도 그래서였는데...






[*] 실물 사진을 올리려고 찍어 놓았다가 깜박하고 잊어버렸다. 뒤늦게야 기억해서 첨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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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글 중에 여자 귀신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쳤던 경험을 회고한 것이 있다. 출소 후 대학 교수로 재직할 때의 일인데, 하루는 밤늦게 혼자 연구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올라갑니다' 하는 여자 목소리가 나와서 소름이 쫙 돋았다는 것이다.


십중팔구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이라 착각한 까닭이었겠지만, 자신의 의도와 정반대인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귀신은 없다던 평소의 지론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아닐까 싶어 겁이 났다는 것이다. 그만큼 버튼을 누른 자기 행동에 대해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워낙 자주 해서 손에 익은 행동이라도 어느 날인가는 실수를 범할 수가 있다. 나귀님도 음식을 하면서 맛술 대신 식초를 넣는다든지, 간장과 물의 비율을 거꾸로 잡는다든지 해서 음식을 망친 적이 간혹 있는데, 평소에 자주 하던 행동이다 보니 실수할 리 없다는 확신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처럼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때에 '귀신에 홀렸나' 하는 표현을 쓰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평소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을 천연덕스럽게 했으니,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 역시도 뭔가 초자연적인 원인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감안할 수밖에 없는 셈이랄까.


하지만 애초부터 실수의 원인은 사람이고, 다만 자기가 틀렸을 리 없다는 확신인지 고집 때문에 선뜻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이치에 닿지 않는 귀신 타령 역시 어디까지나 사람의 실수를 본인과 주위 모두에서 에둘러 표현하고 인정하는 방법일 뿐, 정말로 귀신 탓인 것까지는 아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지난 달 초에 벌어져서 무려 9명을 사망하게 만든 시청역 역주행 사건의 가해자가 결국 구속 기소되었다고 나온다. 그간 언론에 조금씩 흘러나왔던 이야기처럼, 차량 결함이 아니라 운전자의 과실로 인해 벌어진 참사라는 주장이 이제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이 사건이 더욱 공분을 일으킨 까닭은 운전자가 사건 직후부터 줄곧 급발진을 주장하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40년 이상의 운전 경력을 가진 버스 기사라는 신분이 그 발언에 무게를 더해 주었고, 급기야 의견이 엇갈리는 사건에서 늘 그랬듯 '진실 요구' 여론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각종 영상 증거와 목격자 증언, 차량 내부 기록이며 심지어 운전자의 신발 밑창에 남은 가속 페달 흔적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단서를 조합한 결과 운전자의 과실로 판명되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어째서 자신이 실수했을 가능성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일까.


운전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건 확신이 필요하게 마련이지만, 여차 하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행위에서는 좀 더 신중해야 맞지 않았을까. 일각의 지적처럼 자동차가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움직인다면, 일단 브레이크라고 생각한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이 올바른 대처 아니었을까.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애초 의도와는 다른 결과에 직면했을 때 선뜻 '내가 틀렸나?' 하고 의심하기는 어려울 터이니, 이번 사건에서도 운전자만 비난하고 넘어가기는 찜찜하다. 비슷한 경우에 나귀님도 맛술 대신 식초를 무심코 넣었고, 신영복도 버튼 잘못 누르고 귀신을 탓했으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고령 운전자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진 듯 보이는데, 어찌 보면 그간의 사회 전반적인 노년 부정 풍조의 허울이 벗겨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노인이니 늙은이니 하는 명칭이야 회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정신과 신체의 쇠퇴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


최근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의 재선 출마 포기 선언에서도 드러났듯이, 제아무리 길고 다양한 경험을 지닌 강대국의 최고결정권자라 하더라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백세 시대가 되어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구호가 난무한다 하더라도, 단순한 수사를 사실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여하간 이제 서서히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나귀님이다 보니,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무슨 일이든 신중하고 조심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반성을 해 보게 된다. 물론 그런 일이야 40년 경력의 버스 기사에게도, 20년 경력의 무기징역수 출신 대학 교수에게도 쉽지는 않았던 듯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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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을 맞아 올해도 바닷가에 해파리가 들끓어서 어민과 상인 모두 울상이라는 뉴스가 나오기에, 오래 전에 사다 놓은 '해파리 책'이 생각나서 책장을 뒤져 보았더니 일본의 해양생물학자 야스다 도루(安田徹)가 저술한 <해파리의 경고>가 나온다.


비록 일본의 사례에만 한정된 논의이지만, 어차피 중국과 한국과 일본에 걸쳐 있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으니 우리와도 충분히 관련이 있는 내용이고, 특히 일부 논의에 대해서는 번역자가 추가 견해를 내놓아서 시의성도 확보한 듯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해파리의 구조와 생태와 분포와 문제 등을 일목요연하게 다룬 일반 교양서까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비교적 쉽게 쓴 책인 것은 맞지만 원제가 "큰덤불해파리와 보름달물해파리: 그 정체와 대책"인 까닭에 주로 그 두 가지를 다룬다.


더 종합적인 논의는 같은 저자의 또 다른 책인 <바다의 UFO 해파리>를 봐야 할 것 같은데, <해파리의 경고> 역자의 후기에 따르면 원래 <바다의 UFO 해파리>를 번역하던 중에 저자의 권유로 최신작인 <해파리의 경고>를 대신 번역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 책에서 묘사된 해파리는 예상 밖으로 재미도 없고 대책도 없는 생물이다. 그냥 물살에 떠다니며 살아가는 무사태평한 생애에, 수온 상승과 영양 과다로 번식에 유리해지자 개체수가 급증하며 마치 큰빗이끼벌레처럼 인간에게 민폐를 끼칠 뿐이다.


원제에도 나오고 본문에도 자세히 다룬 큰덤불해파리가 바로 뉴스에 종종 나오는 노무라입깃해파리인데 딱히 포식자도 없고, 영양가나 맛도 없으며, 흐물거리는 몸뚱이며 독침으로 인해 각종 사고를 일으키니 이래저래 반갑잖은 손님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저서가 무려 두 권이나 우리말로 번역되었을 만큼 이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듯한 저자의 이름 표기가 인터넷 서점마다 제각각이어서, 어떤 곳은 잘못 나와 있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곳은 아예 빠져버리기도 했다는 점이다.


알라딘의 경우, <해파리의 경고>의 저자는 "전파과학사 편집부"로 나오고 <바다의 UFO 해파리>의 저자는 "야스다 도 루"로 나온다. 양쪽 모두 표지에 安田徹이라고 한자로만 적어 놓아서 혼란이 생긴 모양인데, "야스다 도루"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서점이라 해서 사정이 더 낫지는 않은 듯하다. 예를 들어 Yes24에는 각각 "야수다 토루"와 "야스다 도 루"로 잘못 나왔고, 교보문고에는 "야스다 토루"와 "야스다 도 루"로 잘못 나왔으며, 동일인인데도 연동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두 권 모두 출간 당시의 보도자료 작성 단계부터 저자명 표기에 오류가 들어 있지는 않았나 의심스럽다. 특히 <해파리의 경고>는 저자명을 安田徹로 쓰고 로마자 표기를 병기하며 Yasuda Toru와 Yasuda Torou를 혼용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야스다 도루"라고 일관되게 한글로 표기했다면 오히려 오류가 덜했을 터이니 출판사/편집자의 실수를 탓할 수밖에 없다. <해파리의 경고>에서 "페르세우스"를 "펠리세우스"로 적는 등 오역과 오타가 종종 눈에 띈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처음 한 번만 제대로 표기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지금은 잘못된 인명 표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말았으니 한심한 일이다. 이제 와서 일일이 바로잡으려는 것조차 해파리 구제만큼이나 기약 없는 일이 되지는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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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출판사와 물류센터 전산망이 해킹을 당해 일부 서점에서는 출고가 중단되었다는 뉴스가 있기에, 혹시 알라딘에서도 영향이 있나 궁금해서 오랜만에 들어와 공지사항을 살펴보니, 정작 관련 소식은 찾지 못한 대신 알라디너TV라는 서비스의 일시 중단 소식은 발견했다. 이거... 뭔가 유튜브 비슷하게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결국 중단이라니 살짝 기묘하다.


지난번에 무슨 알라딘마켓인가 하는 중고 물품 거래 서비스도 런칭한다며 사방팔방 광고했던 것 같은데, 머지않아 슬그머니 중단되어서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알라딘도 늘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은근히 이것저것 새로 시도했다가 결국 접어버리기를 거듭하는 모양이다. 물론 나귀님이야 알라디너TV고 알라딘마켓이고 간에 써본 적이 없고, 북플인가도 써본 적이 없다.


한동안 알라딘 서재 끊었다가 돌아와 보니 서재의 글쓰기 기능에서 들여쓰기/내어쓰기 기능 같은 것이 죄다 사라져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북플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방식의 디스플레이가 주류가 된 까닭인 모양이다. 즉 이제는 만사가 스마트폰의 단조로운 폰트로만 표시되니, 아메리카노와 라떼와 에스프레소를 따로 시켜도 결국 "다방 커피 세 잔"이 나오는 격이다.


TTB2 광고인가 뭔가 하는 것도 애초에 실시되던 시절에는 뭔지 몰라서 하지도 못하다가, 막상 종료 공지가 나오기에 그게 도대체 뭔가 궁금해서 클릭하다가 뒤늦게야 나귀님도 그 신청자가 되고 말았다. 서재 관리 메뉴에 관련 내용이 있기에, 이게 종료되었다는데 정확히 뭔가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별다른 신청 절차도 없이 다짜고짜 TTB2 광고 서비스 신청자가 되었다고 나온다.


궁금해서 계속 눌러 보니 일종의 개발자 메뉴 비슷한 것도 우르르 나오던데, 사용자 매뉴얼을 보니 몇 가지 연산자를 이용하면 알라딘 본사와 중고매장의 실시간 재고를 좀 더 정밀하게 검색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회원 가운데 일부의 생각을 조종해 나귀님에게 꼭 필요한 절판본을 가까운 중고 매장에 매각하고 싶은 갑작스러운 충동을 느끼게도 만들 수 있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알라딘에서 제시한 사용자 매뉴얼의 예제대로 입력해서 실제로 누군가가 절판본을 가까운 중고 매장에 매각했다 치더라도, 그 책이 온전히 나귀님 손에 원활히 들어오게 되리라는 보장까지는 없어 보인다. 마침 중고 매장에 와 있던 다른 사람이 먼저 사갈 수도 있고, 나중에 온라인 판매로 전환되더라도 역시나 다른 사람이 먼저 사갈 수도 있어서 너무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귀님은 자신이 필요한 절판본을 가진 회원을 알라딘 개발자 메뉴로 조종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회원이 똑같은 메뉴를 이용해 나귀님을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 다른 회원 역시 중고 매장의 재고 수급을 담당한 알라딘 측 개발자가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어쩐지 알라딘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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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였나. 예전에 얼핏 들었던 "럭키 댄스" 어쩌구 하는 일본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서 유튜브를 뒤지다가 80-90년대 일본 음악에 흥미가 생겨서 여러 곡이며 가수를 접하게 되었다.(알고 보니 내가 찾던 노래는 밴드 C-C-B의 "럭키 찬스를 다시 한 번"이었다. 영어 가사도 가끔은 유용한 듯).


그렇게 알게 된 노래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이 블랙비스킷츠라는 혼성 그룹의 "타이밍"이었는데, 검색해 보니 1990년대 중반에 무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일본인 남성 코미디언 두 명과 대만인 여성 가수 한 명이 재미 삼아 결성해서 단기간만 활동하고 사라진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한다.


그런데 더 자세히 알아 보니... 귀여운 외모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그 대만인 가수가 바로 비비안 수였다! 엉뚱하게도 나귀님은 이 가수를 "뷰티풀 데이"라는 또 다른 노래로 처음 접해서 기억하고 있다. 피아노 소리가 인상적인 이 곡이 애니메이션 <쿠루네코>의 주제가로 나왔었기 때문이다.


<쿠루네코>는 저자 쿠루네코 야마토가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며 겪는 일상을 20년째 그리는 만화 시리즈인데, 번역본은 중앙북스에서 6권까지 나왔다가 절판되었고, 미우에서 재발매해 전20권으로 완간했으며, 1세대 고양이들이 모두 퇴장한 이후의 이야기는 <해피해피 쿠루네코>로 연재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여섯 권에 등장한 1세대 고양이들이 가장 개성적이라 기억에 남았던 반면, 저자가 본격적으로 냥줍과 임보를 담당하는 이후의 권들에서는 워낙 많은 고양이가 (심지어 남편까지) 등장해서 이름도 외우기 힘든 데다 각각의 특징이나 활약에 대한 묘사는 오히려 적어 재미도 덜했다.


<쿠루네코> 시리즈와는 무관한 내용으로, 작은 정사각형 판형으로 나온 고양이 의인화 사극 만화도 세 권 있는데, 이미 일상 묘사 중에 저자가 여러 번 드러냈던 역사 소설 및 드라마 애호 취향을 본격적으로 발휘한 작품이라 할 만하며, 세 권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서로 연결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애니메이션은 1세대 고양이들만 등장하는 처음 몇 권만 각색한 것으로 보이는데,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 짧은 분량이라고 기억한다. 한때 전편이 (러시아 오덕의 소행인지 러시아어 자막이 달린 상태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비비안 수의 노래는 애니메이션이 시작해서 제목이 뜨기까지의 몇 초 사이에 특유의 피아노 소리와 함께 "유라유라와라우요니..." 하면서 딱 두 소절만 나오고 끝나는데, 고양이의 나긋한 움직임이며 나른한 울음소리와 제법 잘 어울렸기 때문인지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지금도 가끔씩 찾아 듣는다.


만화에서 가사로만 나왔던 고양이 노래가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예 곡조까지 붙어 재등장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특히 "토메가 왔다" 노래는 가사도 짧고 쉬워서 지금까지 나귀님이 유일하게 외우는 일본어 노래이다.("토메네코 토메네코 가와유키 가와유키네코 토메네코 하 토메토메 (하 토메토메)").


주제가와 고양이 노래 말고도 "고라노스폰사노데이쿄오쿠리시마스" 어쩌구 하면서 매번 반복되어 외우다시피 한 해설도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애니메이션 제작 협찬사를 소개하는 말이라고 한다.(어쩐지 <열하일기>에서 "기상새설"이란 국수집 광고를 사자성어로 착각했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쿠루네코>는 고양이 애호 만화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냥줍이나 캣맘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는 않는다. 저자도 종종 냥줍하지만 무작정 집에 모아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입양을 주선해서 내보내고, 장애가 있거나 파양을 당했거나 해서 딱한 사연이 있는 녀석들만 패거리로 들인다.


캣맘에 대한 비판도 각별히 눈여겨 볼 부분이다. 나중 권에서 쿠루네코 보육원이 한창 운영되던 즈음, 한 독자가 '우리 동네에 마음씨 좋은 아줌마가 길고양이를 돌보셨는데, 그분이 이사를 가시고 나서 길고양이가 방치되고 있으니 도와주세요'라고 이메일을 보냈을 때 저자가 비판적 견해를 밝힌다.


저자의 입장은 '내가 직접 키울 생각이 없는 고양이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차라리 한 마리라도 구조해서 직접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 끝까지 돌볼 의향이나 능력조차 없으면서 급식을 하다 마는 행위야말로 사실상 길고양이를 또다시 유기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캣맘은 길고양이 급식을 선행으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지속불가능한 위선에 불과하게 마련이다. 세상 모든 불쌍한 고양이를 한 사람이 다 구제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한 마리라도 들이는 게 낫고, 여유가 있으면 두어 마리쯤 더 보살피되, 일단 들이고 나면 끝까지 책임질 각오까지도 하라는 뜻이다.


나귀님도 <쿠루네코>를 읽으면서 냥줍이나 입양에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저자도 갖가지 일화를 통해 설명했듯이 말도 통하지 않는 또 하나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내용의 <뽀짜툰> 연재분도 입양을 신중하게 결정해 달라는 경고문을 달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쿠루네코>나 <뽀짜툰> 같은 만화가 오히려 애완동물 입양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일종의 교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단적으로 자녀의 출산이나 입양만큼 신중하게 결정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유기 동물이 많아졌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기 때문이다.


마침 바깥양반 후배가 힘든 일 겪고 나서 새출발을 다짐하며 고양이를 입양했다기에, 이왕 데려왔으니 잘 기르라는 뜻에서 <쿠루네코> 완질과 사극 만화를 선물했다. 이후 둘째까지 들이더니만 지금은 두 마리의 각종 사건사고와 병치레로 정신 없다고 하니, 그 만화를 괜히 선물했나 후회가 되기도...



[*] 쿠루네코 야마토의 또 하나 호감인 부분은 고양이 못지않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 역사와 사극 소설을 각별히 좋아하는지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는데, 나중의 권에서는 쿠루네코 패거리 중 첫째인 몽상과의 한때를 떠올리며 비싼 사료를 못 사준 것을 자책하며 '책을 좋아하다 보니 주머니는 텅텅 비었다'고 떠올린 대목이 나오기에 슬쩍 공감이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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