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글 중에 여자 귀신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쳤던 경험을 회고한 것이 있다. 출소 후 대학 교수로 재직할 때의 일인데, 하루는 밤늦게 혼자 연구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올라갑니다' 하는 여자 목소리가 나와서 소름이 쫙 돋았다는 것이다.
십중팔구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이라 착각한 까닭이었겠지만, 자신의 의도와 정반대인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귀신은 없다던 평소의 지론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아닐까 싶어 겁이 났다는 것이다. 그만큼 버튼을 누른 자기 행동에 대해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워낙 자주 해서 손에 익은 행동이라도 어느 날인가는 실수를 범할 수가 있다. 나귀님도 음식을 하면서 맛술 대신 식초를 넣는다든지, 간장과 물의 비율을 거꾸로 잡는다든지 해서 음식을 망친 적이 간혹 있는데, 평소에 자주 하던 행동이다 보니 실수할 리 없다는 확신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처럼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때에 '귀신에 홀렸나' 하는 표현을 쓰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평소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을 천연덕스럽게 했으니,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 역시도 뭔가 초자연적인 원인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감안할 수밖에 없는 셈이랄까.
하지만 애초부터 실수의 원인은 사람이고, 다만 자기가 틀렸을 리 없다는 확신인지 고집 때문에 선뜻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이치에 닿지 않는 귀신 타령 역시 어디까지나 사람의 실수를 본인과 주위 모두에서 에둘러 표현하고 인정하는 방법일 뿐, 정말로 귀신 탓인 것까지는 아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지난 달 초에 벌어져서 무려 9명을 사망하게 만든 시청역 역주행 사건의 가해자가 결국 구속 기소되었다고 나온다. 그간 언론에 조금씩 흘러나왔던 이야기처럼, 차량 결함이 아니라 운전자의 과실로 인해 벌어진 참사라는 주장이 이제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이 사건이 더욱 공분을 일으킨 까닭은 운전자가 사건 직후부터 줄곧 급발진을 주장하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40년 이상의 운전 경력을 가진 버스 기사라는 신분이 그 발언에 무게를 더해 주었고, 급기야 의견이 엇갈리는 사건에서 늘 그랬듯 '진실 요구' 여론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각종 영상 증거와 목격자 증언, 차량 내부 기록이며 심지어 운전자의 신발 밑창에 남은 가속 페달 흔적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단서를 조합한 결과 운전자의 과실로 판명되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어째서 자신이 실수했을 가능성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일까.
운전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건 확신이 필요하게 마련이지만, 여차 하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행위에서는 좀 더 신중해야 맞지 않았을까. 일각의 지적처럼 자동차가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움직인다면, 일단 브레이크라고 생각한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이 올바른 대처 아니었을까.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애초 의도와는 다른 결과에 직면했을 때 선뜻 '내가 틀렸나?' 하고 의심하기는 어려울 터이니, 이번 사건에서도 운전자만 비난하고 넘어가기는 찜찜하다. 비슷한 경우에 나귀님도 맛술 대신 식초를 무심코 넣었고, 신영복도 버튼 잘못 누르고 귀신을 탓했으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고령 운전자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진 듯 보이는데, 어찌 보면 그간의 사회 전반적인 노년 부정 풍조의 허울이 벗겨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노인이니 늙은이니 하는 명칭이야 회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정신과 신체의 쇠퇴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
최근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의 재선 출마 포기 선언에서도 드러났듯이, 제아무리 길고 다양한 경험을 지닌 강대국의 최고결정권자라 하더라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백세 시대가 되어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구호가 난무한다 하더라도, 단순한 수사를 사실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여하간 이제 서서히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나귀님이다 보니,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무슨 일이든 신중하고 조심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반성을 해 보게 된다. 물론 그런 일이야 40년 경력의 버스 기사에게도, 20년 경력의 무기징역수 출신 대학 교수에게도 쉽지는 않았던 듯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