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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위고는 프랑스 하층민의 삶을 그린 작품 <레미제라블>을 통해 " 단테가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로써 지옥을 만들려 했다." 고 한다. 에밀아자르의 이 작품 역시 아이의 눈을 통해 그와 같은 현실을 그렸다. 아이의 이야기는 현실의 무게를 현실보다 가볍게 느끼게 하지만 글로 전해지는 애잔함은 묵직하게 몸을 감싼다.
3살 때 부모로부터 떨어져 엉덩이로 먹고 살았던 적이 있는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진 모모는 10살의 나이에 비해 몸이 이상히게 조숙했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누군지 궁금해하기 시작했으나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이 그저 엘리베이터 없는 7층 벨빌에서 창녀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수익으로 살아가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로자의 몸은 갈수록 육중해진다. 사실 3층 정도의 계단이야 누구든지 가뿐하게 오르내리지만 5층도 아니고 7층 정도 되면 육중한 로자가 아니더라도 오르내리기 힘들 듯하다. 누구에게나 가장 아늑한 장소가 되어야 하는 보금자리가 들고 나기 힘든 7층이라면 거의 감금된 상태라 보는 게 좋겠다. 바깥과 격리된 곳에서 쾌적함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곳은 외로움 가득한 유배지가 아닐까.
하지만 로자에게는 모모가 있다. 자신이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10년을 키우고 함께 했기에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녀가 임종을 앞두고 다른 주민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모가 있어서 가능했다. 그녀는 모모를 돈을 받고 데리고 있었지만 15살이 되면 그녀를 떠나 버릴 모모를 나이를 속여가면서까지 데리고 있고자 한다. 그녀에게도 아름다웠던 청춘이 있었겠지만 창녀로서 자신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던 때를 전성기로 기억하는 그녀가 누구보다 안됐다.
모모는 어린 친구답게 스스럼 없이 사람을 사귄다.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는 하밀 할아버지는 "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 자신뿐이란다." 라는 멋진 말로 자신의 출생을 궁금해 하는 모모를 위로해 주고, 주치의 카츠 선생님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이처럼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를 둘런싼 마을 공동체가 함께 참여함으로써 더욱 풍성해진다. 마을 공동체 없이 가족 양육만으로 이루어지는 현대의 아이들은 얼마나 삭막하고 외롭고 크고 있는 걸까. 모모에게 어른 친구가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모모는 외롭다. 죽음을 향해 가는 로자 아줌마를 보는 모모는 두렵다. 슬쩍 도적질도 하고 진지하지는 않지만 테러리스트를 꿈꾸기도 한다. 모모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독자로서 잘자람의 몫을 모모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다. 어른들은 모두 아이들의 외로움에 책임이 있다. 모모와 로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둘만의 의식으로 맞이하였다. 이제야 제 나이을 찾은 열네 살 모모 앞의 생은 얼마만큼의 외로움이 들어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