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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마을에서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를 잃는 것이라 한다. 사람이 한 평생을 통해 얻은 경험은 젊은이에게 한 분량의 책을 읽는 것에 맞먹는다는 뜻이겠지. 요새는 뜰 앞의 진짜 민들레, 개나리를 두고도 박제화된 책을 통해서만 그것을 배운다고도 한다. 진리는 책을 통해서도 읽히지만 사람과 자연을 통해서도 읽힌다. 오늘 내리는 비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시집 한 권을 읽었다. 이제 나는 누구를 읽어 볼까.
독서치료사는 책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전문가다. 웃음치료사, 미술치료사, 음악치료사등 복잡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각종 치료전문가가 필요한다. 몸에 병이 깊이 들면 치료하기 힘들듯이, 마음의 병을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평형대 위에서의 우리의 삶은 더이상 불가능하다.따지고 보면 독서, 미술, 음악 등은 문화 교양 영역에 속하는데 생존 경쟁이 격화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영역이 이 분야이지 않을까 싶다.
귀에 달팽이관이 고장 나면 평형감각이 마비되어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귀속에 가만히 있는 달팽이관은 왜 고장나기도 하는 걸까? 위장과 대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모형은 많이 보았지만 귀속을 들여다 본 적은 없다. 그리고 마음의 달팽이관은?
김경욱의 이번 소설집은 나에게 '평형감각 고수하기'로 읽힌다. 독서를 통해 환자를 치료하던 사람이 오히려 환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 대자본과 제3세계의 인권 사각지대에서 생계를 유지하기에 불투명한 자신을 깨닫는 것 ,평범한 아내가 시골로 이사하고 보니 이미 알아왔던 아내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나는 것 등.. 이제 그들은 나를 읽으라 하고, 아내를 쓰려 한다.
생활 속에서 평형,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힘든 만큼, 그것이 흔들렸을 때, 우리의 삶이 송두리채 뽑히거나 바뀔 수가 있다. 김경욱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꿈과 실재 사이에서 팔을 나란히 뻗고 한 걸음씩 내딛다가 삐끗거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만, 공자의 도 ' 중용'을 떠올린다.
김경욱의 글은 메마른 듯 보이면서도 속알맹이가 부드럽다. 들키고 싶고, 누군가가 읽어 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속내가 안타깝게 드러난다. 김춘수의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를 불러 다오' 라는 싯귀도 어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