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체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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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아이가 뇌헤르니아라는 통보를 받고 방황하는 아이 아버지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아이 아버지는 아들이 정상이 아닌채 태어난 것을, 실패한 자신의 인생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아들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다. 아들을 수술시키자는 결정도, 아들을 바로 죽이겠다는 결정도. 그래서 그는 분유를 묽게 타서 아이에게 먹이면서, 아들이 저절로 기력이 쇄해주길 바란다. 이는 그동안 주인공이 삶을 살아온 방식일 것이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는 아들은, 주인공에게 남아있는 한줄기 끈질긴 삶의 의지가 아닐까.

정말 힘들때는 억지로 힘을 낼 필요는 없다. 다만 주인공처럼 살아지는대로 살아도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끈질기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끝까지 저버려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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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행성 환상문학전집 6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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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른 타인이기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낯선 타행성에 유배되어, 그 행성의 자연과 생명체들과 조화되지 못하고 격리되어 서서히 멸망해가는. 그 세기말적이고 허무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낯선 문명을 만났을 때 취하게 되는 자문화 우월주의는 어찌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미 기준을 적용하기 이전의 낯선 생김새, 자신들에게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 의도와 의미를 알 수없는 행동들.

낯선 문명을 자신의 문화와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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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의 도시 환상문학전집 7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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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찾아가는 팔크의 여행은 신화 속 영융의 여정을 닮았다. 모험은 혼자 겪어야 한다. 함정에 빠지거나 위험한 일들을 겪기도 해야 한다. 목적지인 에스토치에 도착하지만, 원래의 자신을 찾으려면 지금의 자신을 지워야 한다. 이것 역시 죽음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쟁취하는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닮았다. 그렇게 되찾은 자기 자신은 온전한 라마렌도, 온전한 팔크도 아닌 존재가 된다. 그리고 라마렌도 아니고 팔크도 아닌 존재로서의 자신을 새로 세우는 것이 영웅의 사명이기도 하다. 헤겔의 반증법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팔크로서의 기억을 지우려는 싱의 시도에 맞서서 자신을 지키려는 팔크의 시도가 인상깊었다. 자주 읽으며 사색했던 도덕경을 이용하는 것도, 그러한 시도가 성공했다는 것도 인상 깊었지만 이 방법이 성공할 수 있을까?
서양 작가가 도덕경을 중요한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흥미롭지만, 책이라고 하는 소재일 뿐 도가 사상이 작품과 잘 섞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서양인들은 도라던지, 무위자연 같은 관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싱이 왜 악한 존재인가? 지배하는 자이고 속이는 자이기 때문이다. 싱의 지배 때문에 더 이상의 분란과 다툼, 전쟁은 없지만, 고정된 평화와 안정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억압이고 강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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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2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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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복제로 인류가 존속할 경우 유전자 조작기술을 이용해 특정 분야에 적합한 사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여러 명씩 복제해서 함께 양육하고, 함께 생활하게 할지도 모른다. 일일이 유전자 조작을 다르게 할 때보다 비용이 적게 들것이고, 다수의 전문가를 한 분야 아래 서로다른 하위 분야를 각각 학습시킨 후 협동하여 일을 추진한다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이렇게 같은 유전자를 지닌 채 태어나 함께 자라난 이들은 우리가 친구나 가족에게서 느끼는 친밀감 이상의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낄 것이다. 비슷한 감정을 갖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유전 복제로 태어난 이들이 예술작품을 즐길 수도, 창조할 수도 없으며,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없으며,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도 없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들이 동일한 감정, 생각, 행동에만 익숙해 창의성이 개발되지 않았다 같은 설득력있는 설명이 없는 채로, 단지 유전자 복제를 반복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래서 클론들의 사회가 멸망하고 자연 생식을 통해 서로 다른 아이를 낳는 사회가 돌아온다는 소설의 결말이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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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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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일과표를 만들고, 규칙을 만들고, 법을 만들고, 벌을 만드는 로빈슨의 모습이 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로빈슨은 이러한 통제의 틀이 없으면 바로 진흙탕을 뒹구는 야만인이 될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자신을 옥죄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그렇게 통제하면 할수록 통제에서 벗어나 진흙탕으로 돌아가려는 욕구도 커져서 곧 한계에 이르고 만다. 순식간에 자신을 통제하는 힘은 사라지고, 진흙탕을 뒹구는 것이다. 그리곤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자신을 더욱더 강제한다. 그리고 강제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는 더욱더 커져 또 어느순간 폭발하게 된다.

방드르디는 로빈슨과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방드르디는 규칙과 일과표와 법을 만들지 않는다. 하루하루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대로 산다. 그러나 방드르디의 자유분방한 삶이 진흙탕을 뒹구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강제와 통제 없이도 야만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것, 로빈슨에게 분열되어 있는 이성과 야만성이 방드르디에겐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있는 듯하다.

나는 방드르디처럼 자연스런 본성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은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섬이 아니라 문명사회이다. 문명사회에서도 방드르디적인 삶의 방식이 허용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로빈슨이 섬에 도착했던 배에 오르지 않고 섬에 남는 이유일 것이다. 다시 섬을 떠나는 그 배에 탄 방드르디는 문명사회에서도 자신의 본성대로 살았을까? 내 대답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로빈슨처럼 분열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방드르디처럼 어떻게 통합시킬 것인가 잘 모르겠다.

로빈슨이 창고에 쌓아두기 위해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고, 자본주의를 떠올렸다. 로빈슨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노동하는 것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해 결과물을 확인해야만 했으며, 필요한 만큼만 일했을 때 생기는 여유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원작은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고, 자연을 통제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런 모습이라 이야기한다. 투르니에의 소설은 방드르디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한다. 인간의 본성이 어떤 모습인지는 실제로 무인도에 혼자 살아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한 모를 것이다. 아니면 인간 본성이란 건 애초에 없고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질 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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