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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문인기행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이문구 지음 / 에르디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 <이문구의 문인기행>의 첫장을 펼칠 즈음 제가 기대했던 것은 아주 소박했습니다.
그저 당대에 내노라 하는 문인들과 입담좋으신 마당발 이문구님의 인터뷰나 좌담정도로
생각했었으니까요. 근데 그럴수 밖에요. 이책에는 어디에도 서문이나 배경, 재편집되어 다시
발행하게 된 사연이 친절하게 나와있지 않거든요. 그러니 이 책에서 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어디에서는 인물평, 어디에서는 발문, 그리고 실명소설, 마지막에는 조문등의
형식으로 다채롭게 펼쳐질때 독자들은 저처럼 약간은 혼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문구님이 사용하신 그 다양한 사투리와 표현, 한학적인 소양이 없이는 알기 어려운
어구들에 대한 각주 또한 어디에서도 꼼꼼하게 보이지않으니 정말로 인터넷검색창이나
옥편을 펼쳐놓고 읽는 게 속 편할만큼 까칠합니다. 정말 불친절한 책이죠?
하지만 저는 근래에 아주 오랜만에 이 책 <이문구의 문인기행>에 별 다섯개를 바칩니다.
내가 <이문구의 문인기행>에 별 다섯개를 헌사하는 이유
그러니까 이 책, <이문구의 문인기행>은 1970년대 유신정권에서 5공치하때까지 한국의
문학동네에서 햇빛과 그림자와 같았던 문인들, 그리고 비중있게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분들과
폄하당한게 억울한 분들에 대한 인간적인 품성과 가치관, 그리고 그 당시의 문학계의 절절한
상황을 한꺼번에 버무려서 시트콤을 보듯이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게다가 어린시절 방학때
할아버지품에서 귀 쫑긋 세우고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그렇게 고소하고 찰진 표현으로
진행되니 문장하나하나를 지날때마다 그 비유와 풍자에 웃음이 절로 나는 우리말미학표현의
예시집같다고나 할까요?.
우선 이문구님에 대해 제가 아는 거라곤 <관촌수필>하나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 당시의
풍습과 고풍스러운 말투가 많았지만 표현하나하나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거든요.
하지만 작품안쪽에 있는 이문구님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당시가 순수와 참여문학으로 갈라져
어지러웠을 시절인데도)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김동리 선생의 제자로 30년 넘게 세배를
꼬박꼬박 갔으며, 한편으론 참여문학의 핵심이자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문인들의 단체인
'실천문학'의 발행인으로 '친일문학작품선집'을 펴냈습니다. 그런데도 박쥐소리가 아니라
좌우 문단계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니 이 얼마나 미스테리한가요^^
이 책<이문구의 문인기행>은 김동리, 신경림, 고은, 한승원, 염재만의 인물평을 1부에,
박용래, 송기숙, 조태일, 임강빈, 강순식 작가의 단행본에 쓴 발문을 모아 2부에 실었고
3부에서는 황석영,박상륭,김주영,조선작,박용수,이정환에 대한 형식을 알수 없는 인물평과
4부에서는 이호철,윤흥길,박태순,성기조에 대한 실명소설과 서정주의 조문을 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줄곧 인터넷 검색으로 국어사전을 뒤지곤 했는데 그 첫번째 단어가 바로
김동리가 노년에도 제자들에게 반드시 계란 프라이를 두 개 이상 인 다음에 술잔을 건네던 일화가
나오는 첫장에서부터였습니다.
그러므로 김동리선생과 나는 처음부터 오사바사하게 지낸 사이가 아니었다
여러분은 혹시 ' 오사바사하다'는 말뜻을 아시나요? 한때 성경책보듯이 국어대백과사전을
읽어내려갔던 저의 메모리는 벌써 휘발성이 되었더군요. 그외에도 신경림편에서는...
민주화운동을 하거나 문학운동을 하거나 간에 툭하면 티를 내어 꼬이고 비끼고 곰피고 하지
않도록, 당신의 그 수더분하고 후더분한 품성한 여유작작한 풍신. 선생의 품은 천성으로 푼더분하다
고은의 생가를 방문하난 장면에서는 이런 표현으로 감탄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수돗가에는 눈만 흘겨도 초록물감이 뚝뚝 떨어지게 젋은 벽오동과 늙숙한 측백나무가 두 팔을
벌려 하늘을 가리키고,뜨락을 가로막은 탱자 울타리는 가지런히 손이 가서 노치닝 혼자 사는 집
같지가 않다. 노친과는 구면이다. 인사를 드리고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안성서도 자주
인사가 있지유?
안성은 고은의 작업실이 있는 곳이므로 아들과는 자주 연락하느냐는 질문으로 풀이됩니다. 무엇보다도 제게 가장 인상적인 평은 일찍이 배추씨처럼 사알짝 흙에 덮여 살고싶다던 시인 박용래의 삶을
그려낸 '내가 왜 울어야 하나'를 꼽을 수 있겠네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보고 줄곧 눈물을 흘리곤
하여 '눈물의 시인'이라 불렸다는 박용래 인생에 대해서 이문구님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조상 적 이름의 풀꽃을 사랑하여 풀잎처럼 가벼운 옷을 입었고, 그는 그보다 술을 더 사랑하여 해거름녘의 두 줄기 눈물을 석 잔 술의 안주로 삼았다.그는 그림을 사랑하여 밥상의 푸성귀를 그 날치의 꿈이 그려진 수채화로 알았고, 그는 그보다 시를 더 사랑하여 나날의 생활을 시편의 행간에 마련해 두고 살았다. 그는 나물밥 30년에 구차함을 느끼지않았고, 곁두리 30년 탁배기에도 아쉬움을 말하지않았다. 달팽이집이라도 머리만 디밀 수 있으면 뜨락에 풀포기를 길렀고, 저문 황톳길 오십 리에도 잘빛에 별발이 어리면 뒷덜미에 내리던 이슬조차도 눈물겹도록 고마워했다.
이렇게 연결되는 문장들을 읽다가 세월은 비정하였고, 서울은 매정하였고 여인은 무정한 박용래시인의 청춘시절을 한두 페이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배시시 웃다가 결국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구봉서,배삼룡이 줄행량을 놓게 될 정도로 코미디를 잘한다는 황석영님, 정신적인 귀족이라
한잔 술로 천하를 희롱하지만 절대 오입은 안한다는 박상륭님, 항상 나즈막하게 얼굴 구석구석을
밭이랑으로 개간하면서 웃는다는 조선작님, 스승이던 서정주시인을 친일작가로 낙인찍어
그 이후로는 세배를 드리지못했다는 회한의 서정주님 조문까지..이야기보따리는 흘러넘칩니다.
이 책속에 스며있는 척추를 더듬다보면 양성우시집이 긴급조치에 저촉되어 고은,조태일시인이
구속되고,문인협회의 '민족문학의 밤'행사때문에 백기완은 구속수사를 받고,수십명의 문인들이
단식농성을 하며, '문학인 선언'사건으로 연행되는 것은 다반사이며 잡지가 폐간조치당하는등
유신정권에서 5공치하까지 문학인들이 세상과 함께 호흡하려는 일련의 많은 일들을 접하게
됩니다.예술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정치적인 의생자가 되지않기 위해 정치현실에
격하게 저항하는 문학예술인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이문구님은 이 책을 통해 순수든 참여든 자기색깔대로 문학활동을 치열하게 한 사람들,
가난하지만 자기 길을 가기 위해 잉여적인 가장으로써의 열패감을 던져버리고 꿋꿋하게
걸었던 사람들을 모두 포용하면서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조만간에 이문구님의
작품을 다시 한번 읽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다시한번 포옥 빠져보고싶네요.
역사와 개인이, 정치화 문학이 화해를 할 수 없던 시절,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치열했던 모든 분들을 떠올리면서 저는 왜 부끄러워지는 걸까요? 시대가 요즘과 별로
다르지않아서 일까요? 하여간 그 뜨거운 심장으로 글을 쓰셨던 문인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기립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정말 너무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라 읽는 내내 가슴아프고 행복했습니다.
이 책을 출판해 준 에르디아 출판사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