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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번역가로 가는 길 - 번역입문강의
이종인 지음 / 예사모(구 을파소)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아는 사람이 번역일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고른 책이다. 알라딘, 교보문고 등을 뒤져서 잘 팔리는 책과 독자서평이 좋은 책을 세 권 샀는데, 그중에 하나는 60-70년대에 쓰여진 독해책이고 나머지 두 권이 내가 고르려고 했던 번역관련 책이었다. 이 책이 그 중 한 권이다.
누가 어떤 책에서 말하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책 종류 중에 방법을 익히는 책이 있다고 하였다. 마치 전자제품 매뉴얼처럼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 방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동을 느끼기 위해 읽는 소설류와 전혀 다른 성격의 책이라는 것이다. 이 문구 때문이었을까? 언제부턴가 나도 이 의견에 동감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운전을 하려면 운전법을 배워야 하듯이, 논문을 쓰려면 논문 쓰는 법을 배워야 하고, 지도자가 되려면 지도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방법을 배우는 가장 편한 방법은 바로 책이다. 책을 보면 의외로 많은 일들이 쉽게 해결된다.
전자제품을 쓰다보면 종종 이상한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분명히 이 버튼을 누르면 되어야 하는데 안 되는 것이다. 전에는 이럴 때마다 버튼을 계속 누르면서 해결하려고 하였는데, 이제는 그냥 설명서를 먼저 본다. 그리고 이경우에 대부분 설명서에 잘 나와있다. 논리학 교양강좌에서 배웠듯이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서울인구가 1000만이 넘는지, 아닌지는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것이므로 논쟁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런 규칙을 배웠지만, 그동안 나는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번역을 하려면 적어도 번역에 대한 책 한두권을 봐야하고, 글을 쓰려면 글 쓰는 책을 봐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마치 물리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것을 잘 가르친다고 할 수 없듯이, 연구가 되었다고 해서 논문을 잘 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너무나 이 중간과정을 업신 여긴다. 그리고 이 부분을 그냥 행위자의 상식적인 판단에 맡겨버린다. 전문가를 무시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렇게 전문가가 무시되어 왔던가! 이것은 이미 사회적인 인식 수준에서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얼마전 환경 안전 교육을 받는 중에 한 공대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대학원에 막 입학한 석사과정생에게 안전 교육도 하지 않고 실험을 하라고 하는 것은 자동차 운전을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명문대에 들어왔으니 키 주면서 운전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맞는 말이다. 혹시 나는 그렇지 않았나? 직역과 의역이라는 말만 겨우 아는 수준에서 번역을 하지 않았나? 우리말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 해서 그냥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나? 조금 배웠다고 해서 어디나 이런 원리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이 책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역시 지은이도 그런 말을 하고 있다. 번역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지만,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냥 대학나온 사람들이 가난해서, 또는 직장이 없어서 푼돈을 벌기 위하여 하는 일로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미 80여권을 번역한 경력이 있으며 이 책은 번역작가 양성과정에서 사용한 강의록이다. 이 책은 전체가 2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문에 나온 예들이 뒤에 2부와 3부로 엮어져 있다. 실제 본문은 약 250쪽인데, 여기에 150쪽은 본문에서 나온 예와 그것의 번역(첨삭 비교를 위한 필자의 번역 이라고 제목붙임)이 있어 번역가 지망생이 연습을 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책이 조금 두꺼운 편이라서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적어도 이런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번역을 하였으면 한다. 이 다음에 만약 번역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번역하는 일을 시킬 때 꼭 참고해야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