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7년 3월
평점 :
절판


 

세간에 말이 많았던 책이다. 이 책의 내용 때문에, 작가 이문열은 페미니스트들에게서 몰매를 맞다시피 했다. 이문열이 쓴 많은 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이 책에 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물론 이 책을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친구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교과서보다도 작은 크기에, 선물하기 딱 좋은 200여 쪽 분량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정부인 안동 장씨는 문화관광부에서 1999년 11월 문화인물로 선정한 사람이다. 서기1598-1680년까지 이 세상에 살았던 조선 중기 문학자, 서예가, 화가로 자녀교육에 귀감이며, 재주가 많았다고 한다. 비록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영남지방에는 널리 알려져 있단다.


 이 정부인 장씨의 넋이 말하는 형식으로 책을 엮었는데, 다른 소설과는 달리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서술하기보다는 작가가 생각하는 주제별로 기술하고 있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한 부분이 시작되는 첫머리마다 지은이는 어머니, 아내의 역할에 대하여 조선 후기와 지금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정부인 안동 장씨의 넋이 말하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부분이 이문열이라는 작가가 페미니스트에게 비난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마치 장씨 부인의 생각인 것 같지만, 이것은 곧 이문열의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말마따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성문화, 가족제도의 붕괴를 비판한 것은 그리 무리가 없지만, 고리타분한 어른의 훈계란 느낌도 든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고어체를 번역한 어투와 작가 특유의 현학적 언어 사용은 독자들에게 호소력있게 다가서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읽어볼만 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지은이의 생각과 다르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스트의 생각과 같은 것도 아니다. 현실과 괴리된 이상적 사회에서 살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측면을 무시할수록 그것은 말장난,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향점은 현실과 다르기 때문에 지향점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언제나 변화만이 좋은 것처럼 말하던 우리 50년은 결과적으로 절름발이 성공이었다.

 

 캐나다에서 영어공부할 때 나를 가르쳐준 아넬리스가 기억난다. 캐나다에서 명문인 퀸즈대학을 나온 그녀는 여자가 모두 직업을 가져야하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적이 있다. 십여년전 우리 나라에서 청장년층이 생각한 것과 정확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점도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여자, 자아실현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만 확실한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마치 집에서 있으면 능력이 없는 여자처럼 취급받고, 또 실제로 남편만의 봉급으로는 생활하기 힘들게 만든 것은 결국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결국 현대사회는 모든 여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안락한 가정과 사랑을 통한 자녀교육을 앗아가 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때 우리 한국 남자들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여자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비난을 덜 받는 길이라고 배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들의 영어를 듣고 있던 그녀의 반박에 우리는 그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시간순으로 사건을 나열하면서 작가의 생각을 덧붙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도덕 교과서 같은 앞부분이 너무 무거운 것보다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좋았을 것이다. 수필이 아니라 소설로 장르를 정했다면 선택이라는 제목처럼 조선 중기 한 여인의 선택을 중점적으로 부각시켰더라면, 적어도 지금보다 읽고 느끼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부러운 것은 안동이라는 지방이다. 역시 양반의 고장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이인화는 ‘영원한 제국’에서 정조와 관련하여 어려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다고 했다. 이문열도 장씨 부인은 자신의 조상이라고 한다. 이렇게 유서깊은 고장이기 때문에, 고집과 아집도 세지만 그만큼 문화적으로 풍부한 삶은 누리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이런 고장의 장점이 때로는 보수적인 배타성으로 드러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지만(특히 정치적으로...), 그것도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이 소설에는 퇴계의 영남학파와 기호학파간의 견해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난 과연 국사시간에 무엇을 배웠던가? 단지 ‘사림간의 갈등’이라고 외우기보다는 이런 책 한권을 읽는 것이 그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제대로 된 지식을 얻기가 이리도 힘이 든단 말인지. 어쩌면 지금 깨우치는 것도 제대로 된 지식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단순한 암기보다는 많은 것을 느낀다. 문화란 역시 단순한 정보의 집합 이상인 것이다.


 남과 여. 이들간의 역할과 책임에 대하여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도 안된다. 내가 여자가 될 수 없는 한, 여자도 남자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서로를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둘 모두 옳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것을 바탕으로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리를 다져감이 어떨까? 유행이 아닌, 현실을 보는 것이 두 인간집단의 불화를 건설적인 논쟁으로 바꾸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 이 서평은 좀 오래된 것인데, 이문열이라는 작가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하였고, 남여와 부부에 대한 가치관도 많이 변하였기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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