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3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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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세 번째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웬지 속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정도의 증거면 분명히 설득력이 있는데, 왜 정통 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틀린 것임을 알면서도 틀린 답을 정답으로 선택해야 하나? 물론 사학계의 판단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학문을 하면서 보면, 가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과정을 거쳐 어떤 잠정적 사실(또는 진리)가 만들어지고, 검증 없이 그냥 쭉 진리나 사실로 인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나 증거보다는 권위가 우선시되는 학문 분야에서 더욱 이런 경향이 있다. 아쉽다. 이럴때마다 정말 내가 배우는 역사라는 것을 되돌아보게 된다.

특히 이 책에서 관심있었던 부분은 남녀의 권리와 평등에 대한 부분이었다. 흔히 남녀차별이 조선시대의 유산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여러 문헌과 기록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그런 관점에서 조선시대 남여를 다루고 있다.

몇 가지를 요약해 보면,...

조선판 ‘사랑과 영혼’ - 400년 전의 편지

결혼과 동시에 처가살이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가문의 대를 잇는 장남도 처가살이를 했다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 - 경북 선산이 고향이나 그의 아버지는 결혼과 동시에 밀양에서 처가살이)

 

조선왕조실록에도 “우리나라의 풍속은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서 사는(장가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임란 직후까지 이어졌다. 결혼 후 처가에서 지내던 사위가 처가에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장대하면 친가로 돌아가는 것이 당시의 보편적인 가정 풍속이었고, 이는 조건 후기의 ‘처가살이’와는 그 개념이 전혀 달랐다.

또 임진왜란 전까지 부부가 모두 ‘자내(자네)’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대화에서 쓰는 하소체는 서로 대등한 관계로 보아야 한다. 게다가 남녀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재산을 물려 받았는데,  장남이 더 받는 건 문중을 수호하는 데 필요한 위전답 뿐이었다. 또 율곡 이이 가문의 분재기는 이같은 재산분배 원칙이 경국대전에 따른다고 기록되었다. 남녀 차별 상속제는 성리학이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하는 17세기부터 현재까지 250-300년에 이르는 사이에 고착된 것이다. 그리고 조선 중기까지 집안의 제사는 아들, 딸 구별없이 나누어 맡거나 번갈아 지냈으며, 장남이 도맡지 않고 순서대로 돌아가면 담당하였다

 그리고 백제와 일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심지어 "p. 92 혹자는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보려면 일본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란 표현조차 나온다. 고대 대국이었던 백제가 그냥 망하지는 않았을 터... 

언뜻 이해가 가지 않던 일들은 무언가 감춰진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을 알 때 드는 흥분감을 맛보고 싶다면 이런 책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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