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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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를 오랜만에 읽었다. 올해 초 드디어 마지막 15권이 나왔기에, 나머지 네 권을 샀다. 그리고 12권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제는 멸망으로 가는 길목이다.

 

'남이 망하는 꼴을 구경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나면서 내게 던진 첫 질문이기도 하다. 아직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다.

일단 책 내용으로 가보자.

무엇보다 이 시기에서 특이한 것은 평균 재위 기간이 너무나 짧다는 것이다. 본문을 서술하기 전에 가장 먼저 제시되는 것이 재위기간 비교표다. 1, 2, 3세기 황제들의 재위 기간을 비교해 보면, 3세기의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국의 혼란. 이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다. 최근에 부동산 문제가 잘 해결이 안 되는 것을 부동산 정책의 혼란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당시 로마는 꾸준히 일관성있게 정치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은이가 본문의 제일 처음에 배치한 것이겠지만...

지은이는 16쪽에서 3세기에 일어난 위기의 원인을 지도층의 수준 저하, 야만족의 침입 격화, 경제력 쇠퇴, 기독교의 대두 등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대부분 이미 로마 역사에서 일어났던 위기였다. 하지만 3세기부터는 왜 극복하지 못하였을까? 지은이는 정국 불안정을 가장 주된 요인으로 보았다. 물론 그러면서 아까 말했던 평균 재위기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재위 기간이 짧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도 가만히 보면 서로 맞물려 있다. 안정이 안 되니, 제위 기간도 짧고, 그러니 더욱 불안정하고. 하지만 누군가는 언젠가 이런 불안정을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아마도 그 당시 황제들은 재위 시절에 한번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13권을 빨리 읽어보고 싶은 동기를 유발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 혼란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단 마무리가 되는지 궁금했다. 그만큼 전체적으로 볼 때 12권은 짜증나는(?) 편이었다. 이제는 나도 어느덧 시오노 나나미의 눈으로 로마를 보게 되어서일까? 

좀 다른 이야기지만, 73년간 22명의 황제가 등장한 것을 보면 평균 3년 정도 된다. 그런데 가만히 우리 경우를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는 5년 담임제다. 정책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5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오현제 시대를 보자면 네르바를 제외하면 평균 20년 정도를 황제로 근무했고, 이것은 정책의 일관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사실 어떤 정책이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특히 좋은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오랜 동안 일관성을 지니는 것이 필수조건인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기 독재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만 남겨두고자 한다.

p. 29 (내 정리) 오늘날과 달리, 고대에는 시민권이란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다 -> 아테네조차도 ‘피’가 같지 않으면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로마는 ‘공동체’에 공헌하면 인종과 민족의 구별 없이 시민권을 주었다.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그러나 ‘안토니누스 칙령’은 로마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로마 시민권을 준다. -> 로마 시민과 속주민의 차별 철폐 -> 많은 연구자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으나, 저자는 이것을 로마 폐망의 한 원인으로 지목함. -> 기득권과 취득권, 세금, 군대...

p. 42 인간은 공짜로 얻은 권리는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다. (현대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은 이유도 그때문일 듯이라고 말함).

p. 42 카라칼라 황제의 안토니누스 칙령의 부정적 의미 : 로마 시민권자의 긍지를 잃어버림, 속주민에게 향상심이나 경쟁심이 없어짐, 속주민은 제국에 대한 기개를 보이지 않음, 세금이 오히려 임시세 위주로 가버리고 국가 재정 위기, 유동성이 없어져 사회의 경직화 (상류층인 호네스타스와 하류층인 후밀리우스로 나눠지고 상승기회마저 차단)

p. 131 대관식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한 누군가가 권력을 주어야만 의미가 있는데,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인간을 초월한 누군가는 불사신밖에 없다. 신, 구체적으로는 신의 뜻을 나타내는 제사장이나 사제나 성직자가 권력을 수여해야만 비로소 권력자도 통치의 정당성을 공인받게 된다.

따라서 대관은 신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의 대관식이 ‘서방’이 아니라 ‘동방’에서 주요하게 여겨진 사실과, 모든 일신교가 ‘동방’에서 태어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유럽에서는 기독교 시대 이후에나 대관식을 하였다는 뜻.

p. 143 역사는 현상으로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현상에 즈음하여 드러나는 인간 심리는 되풀이된다. 따라서 인간 심리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력,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상상력과 감수성, 이 가운데 하나라도 모자라면 과거에 성공했던 선례를 그대로 따른다 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에피소드는 가르쳐주고 있다. (카이사르와 알렉산데르가 군대에게 한 연설의 차이 / p. 139 문장은 어휘 선택으로 결정된다)

p. 172 인기도 실력에 포함되지만, 실력만으로는 지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 지위를 정당화하려면 실력만이 아니라 정통성도 필요하다. 세습제가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직 실력은 알 수 없지만 정통성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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