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나기를 위한 시원한 책읽기!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7월. 뜨거운 햇볕으로 대지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나무와 들풀들이 한껏 푸르러지는 본격적인 여름. 풍덩 빠져들고 싶을만큼 새파란 하늘에 두둥실 흰구름이 피어오르면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사람이란 모두 어슷비슷한 겐지 오랜만에 반디앤루니스에 들렀더니 여행기 코너가 평소와 달리 북적댄다. 세계 각지의 여행 안내서부터 여행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엮은 여행기까지 여름은 바캉스의 계절이 아니라 여행기의 계절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출판된지 한참되었지만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여전히 잘 팔리는 여행기부터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갓출간된 신간까지 눈길을 끌어 당긴다. 여비나 시간이 없어 떠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여행기를 읽으면서 그 아쉬움을 달래보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서가의 한자리를 차지할만큼 우리나라에도 꽤 많은 여행기들이 출판되어 있다. 

몇 년 전 한비야 시리즈를 읽으면서 한껏 고무되었던 뒤로는 한동안 특별히 여행기를 읽은 기억은 없다. 그러다가 작년 늦여름부터 우연찮은 계기로 여행기를 몇 권 읽었고 여행을 테마로 한 컴필레이션 음반 몇 장을 듣기도 했다. 여행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여행기나 음악을 통해서도 감정이 한껏 고양된다는 사실을 그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 올 여름 또다시 여행기에 눈길이 가는 것은 지난 여름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 찌든 심신을 잠시나마 달래 주었던 고마운 순간들 말이다. 
 
지리산을 꿈꾸게 해준 유성용의 <여행 생활자>, 언제부터인가 왠지 모를 거리감이 생겨버린 김영하의 <김영하의 여행자> 등 신간들을 일별하고 작가들의 신작 산문집까지 드르륵 넘겨보고 난 뒤에 서점을 나왔다. 인터넷 서점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점에서 책을 사는 일은 드물어졌다. 

서점에서 둘러보고 찍어둔 책들은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 대신 일전에 한비야와 함께 비교 소개된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라기에 마음이 끌렸으리라. 

<걷기 여행 1>에는 땅끝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29일간의 국토 종단기와 숨어 있는 흙길 열 곳을 다녀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토 종단기는 일기장을 보는 듯 정제되지 않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솔하고 생생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고, 뒤에 실린 흙길 열 곳에 관한 도보기행은 차분한 여행기와 친절한 안내서가 짜임새 있게 엮여 있다.  

국토 종단기가 풋풋한 느낌이라면 흙길 여행기들은 어쩐지 추억을 더듬는 듯한 아스라함이 느껴진다. 국토 종단기를 읽을 때는 풋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는데 흙길 이야기를 읽을 때는 코끝이 찡해질만큼 왠지 모를 아련함이 느껴졌다. 국토 종단은 어렵겠지만 흙길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내어 가볼만 하겠다. 정찬의 소설집 <베니스에서 죽다>에서 신비롭게 다가오기도 했던 영월 동강의 어라연과 월정사만 들렀다 서둘러 돌아왔던 오대산의 상원사를 찍어 둔다. 

사진 보는 재미도 있고, 현지 주민들이 들려준 이야기들도 흥미롭지만 중간중간 그리고 글꼭지마다 앞 쪽에 인용된 시나 글을 읽는 맛도 쏠쏠하다. 국토 종단기 부분에 인용된 한광구의 <꿈꾸는 식물>을 읽다가 숨이 멎는 순간에 맞닥드리기도 했다. 꿈이 마르는 나이라니 대체 꿈이 마르는 느낌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길바닥에 앉아 엉엉 울었다는 김남희처럼. 

비 오시는 소리 들린다.
꿈이 마르는 나이라서 잠귀도 엷어진다.
아, 푸욱 잠들고 싶다.
한 사나흘 푸욱 젖어 살고 싶다.
 

꿈이 마르기 전에 잠귀가 엷어지기 전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할 것인가. 좋은 여행기들은 자꾸 자기를 돌아보게 만든다. 잘 살고 있느냐고. 잘 살아 가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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