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 - 당신의 몸과 마음이 아플 때,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것들
김준혁 지음 / 계단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준혁의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는 의학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스무 명이 넘는 인물들이 현대 의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세심하게 짚어준다. 소독의 개념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견되었는지, 레지던트라는 의사 교육 과정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도입되었는지. 의과학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에겐 이런 점에 먼저 관심이 가겠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의학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문제점을 짚고 질문을 던진다. 산욕열의 원인을 발견하고도 왜 환자들을 구하지 못했는지. 레지던트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한정된 의료 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등등. 제멜바이스와 할스테드, 밴팅의 사례를 읽으며 사적 감정으로 치부해왔던 의료 현장(병원)에서의 소통 문제나 남의 일로 여겨왔던 레지던트 제도의 문제점, 한정된 의료 자원의 분배 문제를 인지하게 되었다.

 

남자 의사와 여자 의사는 무엇이 다른지,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성을 바꾸려는 시도는 정당한지, 강제 불임 시술에 우생학적 관점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저자는 사례를 통해 문제점을 짚고 질문을 던지는데, 사안에 대한 관찰이 얼마나 꼼꼼하고 문제의식은 또 얼마나 세밀한지 과학자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남자 의사와 여자 의사는 무엇이 다를까’라는 꼭지에서 던지는 질문만 해도 그렇다. “돌봄에 있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여러 성격적 특질, 세심함, 부드러움, 예민함, 날카로움, 심미성, 심지어 공감 능력은 주로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왜 우리는 의사가 ‘남성’이어야 한다고 무심코 생각하는 걸까요?” 질문을 받고서야 그러게, 왜 그럴까 궁금해질 정도로 너무나 익숙해서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못했던 것에 물음표를 던져보게 하는 책이었다.

 

‘의사는 왜 웃지 않을까’ 꼭지에서 윌리엄 오슬러의 연설을 소개하는데, 평소 냉담하다 여기던 의사들의 태도를 다소 이해하게 되었다. 오슬러는 1889년 연설에서 의료인에게 ‘평정’이 지니는 가치를 연설했단다. 환자와 거리를 둬 의료인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급박한 의료 현장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리려면 고통을 마주했을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해, 실의에 빠진 환자에게 지지대 역할을 하기 위해 눈앞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이 책은, 의료정보의 소유권 문제, 직업병의 사회적 책임 문제, 감염병 환자의 사생활 보호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을 담고 있다. 의료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들이어서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보면 좋을 영화나 문학 작품들을 소개한 점 역시 좋았다. 의학은 딱딱할 거라는 편견을 영화와 문학 작품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깨주었다. 덕분에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서사 의학’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덧) 개봉 때 기회를 놓치고 내내 아쉬워했던 영화 <패터슨>을 뒤늦게 집에서 봤다. 의사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에서 출발한 영화란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윌리엄스와 관련된 부분을 옮겨 두자.

 

“윌리엄스는 (…) 자신이 의사였기에 시를 쓸 수 있었다고 답합니다. 자신이 시로 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인데, 진료 과정의 만남이 자신을 일깨운다고 말합니다. 환자가 자신에게 단어를 부여하고, 여기에서 자신이 시를 쓸 수 있다는 감각. 철학에서는 이를 ‘촉발’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마주친 것이 나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그 변화는 나로 하여금 움직이게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주위의 촉발에 반응하는 일입니다. 사실, 모든 예술이 그렇지요.”(76쪽)

 

“(…) 의료에는 깊은 소통의 단절이 있으며, 그것은 기술만으로 넘을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환자의 말에 집중하는 의료인과 의료인의 말에 반응하는 환자 그리고 두 사람이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을 서로 최대한 정확하게 이해할 소통 방법입니다. 윌리엄스에게 그것은 시 쓰기였습니다. 서사 의학은 소설(시, 논픽션 등의 글과, 영화나 미술 등의 예술 작품도 포함하여) 읽는 힘을 길러 이에 접근하려 합니다.”(8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