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독서 - 안나 카레니나에서 버지니아 울프까지, 문학의 빛나는 장면들
시로군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막한 독서 모임’의 진행자인 시로군 님이 책을 냈다. 15년간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읽었던 책 중에서 스물한 권을 골라 글로 풀어낸 것이다. 『돈키호테』부터 『죄와 벌』, 『목로주점』까지. 메리 셸리부터 샬럿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까지. 제목만 들어도 읽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세계문학의 고전들, 옆집 사는 언니만큼이나 익숙한 이름의 여성 작가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스물세 편이 『막막한 독서』에 실려 있다.


편마다 제목이 붙어있는데, 제목만 봐도 읽고 싶어질 만큼 흥미롭다. 몇 개만 골라 보자.


『죄와 벌』을 소개하는 글의 제목은 <누구라도 어디든 갈 곳이 한 군데는 있어야 한다>다. 내가 주목했던 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가 한 말인데, 주인공 라스콜리코프 역시 마찬가지임을 그가 살고 있는 ‘공간’을 통해 작가는 소개하고 있다.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에 붙인 제목은 <어느 계약직 직장인의 선언, “일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다. “계약직 직장인”이란 표현에서 현대의 독자는 이미 마음이 철렁한데, 거기에 ‘선언’을 붙이니 묘하게 비장해진다. 바틀비는 무기력한 게 아니었어! 적어도 “일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선언할 줄 알았던 거야. 뭐, 이런 식으로 막다른 길에서 출구를 찾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을 소개하는 글의 제목은 <극한 알바>. 제목만으로 감이 오지 않는가.


뭐니 뭐니 해도 눈에 띄는 제목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붙인 제목 <독서하는 괴물>이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은 독자라면 괴물의 매력에 빠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사랑스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데. 이웃한 가정의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산속에 버려진 가방 속에서 발견한 책들을 통해. 그는 스스로 언어를 배운다. 이 얼마나 대단한 괴물인가. 그를 창조해놓고 겁에 질려 도망친 프랑켄슈타인에게 괴물이 던지는 말을 듣고 있으면 독자 스스로 무릎을 꿇게 된다. 괴물에게. 아니, 괴물 같은 작품을 써낸 메리 셸리에게.


기차 안에서 책 읽는 안나의 모습이나 같은 페이지를 펴 놓고 멍 때리는 산시로나 말테의 독서 장면을 포착하여 <책 읽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세계문학을 오래 읽어온 독자로서의 애정이 묻어 있어 그런 걸까. 아, 시로군 작가님은 문학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이런 느낌이 들어버린다.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을 『막막한 독서』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세계문학, 고전으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시로군 작가의 『막막한 독서』를 추천한다. 작가님이 자신의 책에서 소개한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길만큼 재밌는 독서록이기에. 믿음직스러운 ‘가이드’ 시로군님을 따라 천천히 문학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시길! ‘함께 읽기의 즐거움’은 작가님이 지향하는 막막한 독서 모임의 모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