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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책 읽기 - 그 시절 만난 책 한 권이 내 인생의 시계를 바꿔놓았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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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조금은 삐뚤어져 볼걸. 교과서 밖의 것에 마음을 줘 볼걸. 철저히 혼자여 볼걸. 그 때는 그것만이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질까 봐, 대학에 가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시간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부모님께 좋은 자식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매일 독서실에 갔다. 문제집을 풀었다. 정리 노트를 채웠다. 그러면서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막연한 꿈이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서 시를 썼고 논술을 했다. 도무지 그 글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글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강의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학점을 쫓았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하는 사람 없이 스스로 훈련해야 하는 대학생활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동경하는 작가의 소설과 시 만을 읽었다. 고르지 못한 독서는 식탐과 다르지 않았고 내 안에서 허상과 탐욕의 씨앗이 되었다. 노력과 희망이 아닌, 나도 그들과 같아지고픈 헛된 욕심뿐이었다. 고등학생인 나에게 누군가 고전 한 권을, 세계문학 한 권을 권해왔더라면. 교과서 밖의 책들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대학시절 다양한 책을 읽었더라면. 겸손했더라면. 혼자 무언가와 치열히 싸우려 시도해보았다면. 나는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그 시간을 열렬히 그리워하게 될 줄은 나를 반성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에 들어감과 동시에 고등학교 시절은 잊고 싶었고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와 그 시간이 영영 사라진 것이 너무나 슬프고 아플 때가 있다. 혼자일 수 있었던, 자유로웠던 그 때. 그 때의 가치를 너무나 몰랐다. 그리고 살아버렸다. '이 책에 등장한 서른여섯 권의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낯모르는 젊은이'가 나는 이 순간 진심으로 부럽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지나간 그날들을 떠올렸고 지독한 후회를 앓았다. 지금, 그 순간을 살아갈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저자는 책의 제목처럼 자신을 바꿔 놓은 책들에 대해 이제 막 입시를 벗어 난 젊은이들, 사회 초년생들에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저자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어느덧 스물 셋부터 서른한 살이 된 그들을 떠올려 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은 진실하고 애틋하며 열렬하다. 저자가 지나 온 시간이며, 스스로 열심히 싸우고 앓아 넘긴 시간 끝에 맺은 열매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20대를 휘두르는 단어들 - 비주얼, 자존심, 스펙, 야심 등. 자신을 취업으로 이끌어 줄 요소들을 채우는 데에 급급해져 버렸다. 독서보단 외국어 점수를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데에 진솔한 이야기와 성실성보다 자격증과 토익성적이 필요한 것 현실. 우리는 사람을 '이해'가 아닌 '평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20대 만의 현실이라 할 수도 없다. 직장에 적응한 30대도, 40대도 , 퇴직을 앞둔 50대 퇴직한 60대도 자신을 감싸고 있던 사회적 위치와 주변 시선으로부터 늘 불안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남이 바라봐 줄 자신의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며 산다.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기를, 그들이 나를 높이기를, 그들보다 내가 더 갖기를 열망하고 집착하면서 삶을 삶답게 살아가지 못한다. 피투성이로 싸우며 끌려간다. 그리고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야, 라고 자포자기 한다.

 

 

지금 내 마음의 한가운데를 채운 것은 무엇인가. 남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필요했던 '그럴듯한 비주얼'에 대한 집착,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이런저런 물건들, 잘난 척하고 싶어 몸이 달아 해댔던 온갖 짓거리들로는 결국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물거품처럼 반짝하다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내 마음을 조금씩 채워 나를 허깨비가 아닌 나 자신일 수 있게 만들고 동시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든 것은 바로 문장들이었다. -p.35, <내 마음을 채운 것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중에서

 

 

학창 시절엔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로 보였다. 성적을 올리고 시험에 합격하는 일만큼 중차대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의 성취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처럼 가볍고 변덕스러운 것을 잡으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보다 백배 천배 어려운 일이 있음을. 그것은 바로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 임을.

-p.146, <내 마음의 주인으로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진솔하게 책과 연결하여 펼쳐낸다. 학창시절 겪었던 갈등과 후회의 시간들. 그것은 내가 앓고 있지만 문장화할 수 없었던 감정과 이미 지나온 이의 담담한 깨달음이었다.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웠다. 살면서 늘 바깥만 바라보고 지냈다. 날 인정해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싶었고, 그러지 못할 때마다 괴롭고 쓸쓸했다.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나는 나답게 피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말에 휘둘려 삐뚜름하게 자라났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 이름을 단, 누군가에게 필요를 원하는 사물이었다. 어떤 불행을 직시한 느낌. 내가 정말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에 대한 저자의 글을 통해 왕따란 누가 만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는 인문학 공부의 중요성과 가난은 무지로 인해 스스로 껴안을 수밖에 없는 고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에 관한 글을 통해서는 엄마에 대한 추억과 지금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많은 책들이 저자의 깊이 있는 생각과 어우러져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그것은 자기반성이 아닌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추억과 상념에 젖는 일. 식구가 모두 잠든 방을 나와 작은 방에서 홀로 되어 생각에 잠기는 일. 내 안에 무언가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 이었다. 그 마음이 지금 이 글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그 증거가 있다.

 

나의 독서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비단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는 아니었는지. 무의미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언제나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처럼 읽었던 책들의 목록을 잠시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후회는 깨달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깨달았기 때문에 그것의 잘못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후회를 거듭하며 자신의 삶을 좀 더 곧게, 좀 더 바른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을 꾸리고 살다보니 알게 되는 주옥같은 깨달음도 있다. 마음의 가난이 몸을, 내 삶을 빈곤하게 함을. 삶에서 중요한 것이 부와 명예보다 평범한 삶에 있음을.

 

저자의 '인생의 시계'를 바꿔놓은 독서 기록들을 읽으며 내가 걸어갈 시간의 틈에서 청춘을 어루만질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행동은 결코 늦지 않는다, 는 말처럼 나는 지금이라도 무엇이 되어보고 싶은, 될 수 있다는 설렘을 느낀다. 책을 덮으며 부끄럽게도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많아 꼭 숙제를 받은 기분이기도 하지만, 이런 숙제라면 두고두고 해도 좋겠다. 이제 나는 바깥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의 '안'에 더 넓은 삶과 기쁜 내일이 있으므로. 나는 그곳에 더 열중하기로 한다. 나의 기준은, 나다.

 

 

생각해보면 비주얼이나 스펙, 야심이나 자존심의 공통점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그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비교'가 필수적인 개념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비주얼과 스펙을 갖추었다해도 나와 비교해서 월등한 비주얼과 스펙을 갖춘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나의 자존심을 세우고 꺾는 주체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며, 나의 야심이란 것도 알고 보면 남과의 상대적 비교 우위일 때가 많다. 이에 반해 스토리와 자존감, 진심과 통찰은 절대적이며 자기 충족적이다. 그것은 굳이 남과의 비교를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성장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해가며 성공이라는 것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작 내면이 성장이 멈춘 채로 황폐해져 있다면 그것을 진정한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p.6~7, 들어가는 말 부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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