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서재]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마흔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 6시. 아직 어두운 창으로 추적추적 기척이 들려온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다. 매섭던 추위가풀리자 마음도 녹는다. 자연스레 가만히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된다. 어제 저녁엔 아이를 재우며 함께 잠들어 이른 새벽에 깨었다. 작은 쪽방에 아이 공부상을 펴고 쪼그려 앉아 이 책을 생각하고 있다. 장석주 『마흔의 서재』.  

'삶을 쉬어가게 하는 책읽기'란 무엇일까. 나는 아직 서른 하나고, 이 책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물음으로 책읽기를 시작했다. 그의 다독과 다작을 모르는 바 아니니 많은 자극이 되리라고도 생각했다. 스무 살에 시인이 되어 스물여섯에 자신의 출판사를 가지며 서른두 살에 베스트셀러를 펴낸, 젊은 시절을 열심히 살아낸 작가. 그는 서른여덟 살에 이 모든 생활을 접고 서울을 떠나 산자락 아래 집을 지으며 노모와 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을 독서와 산책, 원고를 쓰며 어느 새 열세 번의 해를 보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누구나 꿈꾸는 삶을 그는 살고 있다. 이제 쉰의 나이를 지나고 있는 그. 도시를 떠나 고요 속에 몸을 밀어 넣은 그는, 그의 마흔 살의 해는, 어떠했을까.

마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느껴지는 나이다. 젊음에서 중년으로 한 순간에 넘어가는 나이인 것 같기도 하고, 실수를 아끼고 아껴야 하는 나이인 것 같기도 하다.

 

마흔은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딱 중간쯤에 해당한다. 마흔은 지나간 삶을 돌아봐야 할 때, 마흔은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짜야 할 때, 마흔은 결단을 해야 할 때, 마흔은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할 때, 마흔은 인간관계에 대해 신중하게 점검을 해야 할 때, 마흔은 열정을 다시 지펴야 할 때, 마흔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때, 마흔은 이제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열어야 할 때이다.  -p.21, '늦지 않았다, 초조해하지 마라' 중에서

 

작가는 마흔을 인생 2막의 시작이라 일컬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책을 통해 삶의 여정을 꾸리길 권한다. 삶의 한편에 서재를 두는 일. 아름답다. 그 서재에 꽂힌 책들이 삶의 발자국이 된다면. 그곳에 지나온 내 삶이 그렇게 꽂힌다면. 돌아보며 자책하는 일보다 그 땐 저 책이 내 그림자였는데, 그렇게 힘을 냈었지, 하고 조금은 담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책의 특성은 '서재' 속에 길이 있다는 발견과, 독서와 관련해 삶을 풀어간다는 점일 것이다. 저자는 독서를 통해 딱딱한 삶을 부드럽게 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무수한 방식으로 풍요롭게 한다. 안락의자에 편히 앉은 채 세상을 거닐고,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과거로 날아갈 수도 있다. 독서란 자아 발견과 세계 탐험을 위한 나침반과도 같다."(《책과집》) 그는 많은 고전들을 응용해 우리가 삶에서 주시해야 할 덕목들을 설명하고 있다. 주로 공자의 이야기를 많이 응용하고, 노자와 맹자의 책도 등장한다. 그 책들과 함께 다양한 현대 책들의 지문이 어울어 지는데 시간과 공간을 떠난 다양한 책들이 모두 공통된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 바로 우리의 삶을 가리킨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많은 책들이 사람을, 삶을 담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도 나는 무언가 비밀을 알아버린 것처럼 그랬다. 그러니까 그의 책 『마흔의 서재』는 서재에서 그릴 수 있는 책과 인생의 지도, 그 일부분이었다.

그러나 어느 인생 지침서가 그렇듯, 작가의 말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마음을 비울 것. 욕심을 내려놓을 것. 가진 것을 나눌 것. 사람들과 어울려 그곳에서 나를 찾을 것. 적당히 게을러지고 여유를 가질 것. 책을 읽을 것. 오늘을 열심히 살아낼 것. 꿈을 가질 것…… 많은 책들이 가리키는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항목들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것은 스무 살의 항목에서 조금은 과감해질 것, 이 빠졌을 뿐 서른에도 마흔에도 쉰에도 그 이후의 어떤 나이에도 적용 될 만한 당연한 항목들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고자 꿈을 꾼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꿈은 2순위다. 생계를 꾸려 먹고 살아야 하는 게 1순위다. 그러다보니 마음을 들여다 볼 시간도 없고, 책을 볼 시간은 더더욱 없다. 자신의 태도를 바꿔 볼 계기를 갖지 못하고 똑같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꾸역꾸역 산다. 슬프지만, 나도 벌써 이만큼을 알아버렸다. 서른한 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내겐 작가가 제시한 그 많은 지침들을 행동으로 옮길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했고, 나 자신과도 많이 싸웠지만 어느 날은 따뜻했다가 어느 날은 괴롭도록 쓸쓸했다. 그러면서 내 몸에 옹이가 하나 둘 생겨났다. 그러면서 고통에 무뎌지고, 담담히 슬픔을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독서는 그런 자리가 생겨날 때마다 찾아오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묵묵히 싸우게 하는 힘이었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계기였고 토닥임이었다.

     

함부로 겨울이 되지 마라

매일 변해야 얼어붙지 않는다 

매일 변하되 쉽게 결정짓지 마라

겨울의 그늘 속에서 

쉽게 생을 단정 짓지 마라 -p.220, '함부로 겨울이 되지 마라' 중에서

 

책의 제목은 마흔의 서재이지만 누구나의 서재가 될 수 있는 책이다. 퍽퍽한 삶에 책이라는 매개를 사용해보고 싶다면, 어떤 책을 마음에 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면 이 책을 펼쳐봐도 좋겠다. 그러나 시적 문장을 기대하고, 감성적인 내용을 기대한다면 좀 딱딱한 책이 될 수도 있다. 책은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읽으면서 계속되는 명령조에 힘들었다. 그러나 드문드문 피할 수 없는 시인의 아름다운 표현들과 알지 못했던 책의 제목들을 독서목록에 넣으며 마음을 녹일 수 있었다.

 

어느 새 그렇게 되어버렸다. 친구들도 거의 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나를 귀여워 해주시던 친척 어른들은 모두 예순을 넘기셨고 힘이 넘치던 위엄 없이 고요해지셨다. 누군가의 병환과 한 번도 마음에 깊이 담지 않았던 죽음이란 단어가 쉽게 나를 찾아왔다 떠나갔다. 그 모든 일들이 찾아왔다 떠나가는 사이사이, 그 시간들 모두가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나고 나면 놓아야 하는, 홀가분하면서도 아쉬운 그 시간들.

열아홉에서 스물이 될 땐 뭔가 세상이 뒤바뀔 것처럼 큰 기대감이 있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될 땐 작가가 되고 싶던 꿈이 욕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홉에서 영이 된다고 하면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삶은 그 앞에 것의 연장이며 결코 리셋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는 일은 모든 것을 지고 또 앞으로 나아가며 끊임없는 싸움과 화해, 다침과 회복 속에서 두툼한 내 삶의 책등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나이는 결코 그냥, 쉽게 먹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삶은 깊어지고 더 익어가야 한다. 나이 먹는 일을 두려워했던 적이 있었던가, 부끄러워했던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내 나이가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무수한 책들이 끊임없이 다른 표현을 만들어내지만 결국 그것이 가리키는 모든 것은 '삶'이다. 그 한 글자가 내게, 살아내야 할 과제인지 내 안에 기록되고 있는 시간의 이름인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