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요코 - 마녀에서 예술가로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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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 대한 반감은 적어도 세 종류입니다. 반아시아, 반페미니즘, 반자본주의적 반감이지요. 다들 이렇게 말해요. 저 늙은 여자를 봐라. 저 돈 많은 과부를 봐라.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 오노 오쿄

“오노 요코 어땠어? 마녀 맞지?” 지난 6월 20일 오노 요코 기자회견에 다녀왔다는 나에게 어느 여자 선배가 물어본 말이다. 음악지 기자 출신인 그 사람이, 그것도 여자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한국 사람 대부분은 ‘오노 요코는 마녀다’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꼭 요코가 말한 반감은 아닐 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오노 요코를 비틀즈 해체의 주범으로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은 그녀를 하나의 개인으로,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비틀즈 멤버 존 레논 아내로만 여기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흔히 ‘마녀’라고 생각될 만큼 오노 요코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부분들이 많다. 우선 그녀는 레논을 만나기 이전에 이미 영화 제작, 설치 미술, 행위 예술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던 당대의 아티스트였다. 독일 저술가 클라우스 휘브너가 쓴 이 책은 그러한 전위 예술가로서 오코 요코의 복권(復權)을 꾀하고 있다. 존 레논과의 애정관계 보다는 예술집단 플럭서스(Fluxus) 등 현대 미술 운동의 태동을 함께 한, 관습과 금기에 저항했던 독자적인 한 예술가로서 오노 요코의 면모와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1933년 2월 18일 일본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바다의 아이’ 요코(洋子)는 음악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일찍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하며 순탄하게 성장했다. 보수적인 가정환경에 숨막혔던 그녀에게 미국으로의 이주는 탈출구였다. 일본의 가부장적 문화에 벗어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뉴욕으로 건너간 요코는 전위에술계에 투신한 뒤 존 케이지, 마르셀 뒤상, 백남준 등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플럭서스의 일원으로서 활발한 작품과 퍼포먼스 활동을 벌여나갔다. 특히 플럭서스 그룹의 초기 예술활동은 상당 부분 오노 요코에 빚을 지고 있었다. 그렇게 뉴욕 예술계의 거물이 덕분에 존 레논을 만나는 결정적인 순간도 가질 수 있었다.


퍼포먼스와 오브제 미술을 거쳐 오노 요코는 1966년 엉덩이를 노출한 영화 [궁둥이]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노의 예술활동 중 가장 인상적인 이벤트는 영국 트라팔가 광장의 석조 사자상을 흰 천으로 휘감아버린 사건. 넬슨 제독이 프랑스 함대를 물리친 ‘위대한 전승 기념비’였던 웅장한 사자상을, 한 일본 여자 오노가 흰 천으로 모두 덮어버린 것이었다. 오노는 어리석은 전쟁을 벌이고 그 승리를 기념하기까지 하는 남성들의 세계를 조롱하기 위해 그것을 휘감아 가린 것이었지만, 이는 영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불경죄에 가까운 행동이었고 영국인들로부터 ‘미친 여자, 전 세계인이 가장 혐오하는 여자, 마녀’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밖에도 오노 요코는 ‘당신이 원한다면, 전쟁은 끝난다(WAR IS OVER, if you want it)’이란 문구로 유명한 평화운동가, 부부 역할 바꾸기를 실현한 여성운동가 등으로 지금까지 활약해왔다. 런던의 한 평론가는 오노가 시도했던 아방가르드와 팝의 역사적인 충돌에 대해 “패티 스미스, 피제이 하비, 코트니 러브 외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 이들에게서도 오노의 호기심 가득한 괴성이 들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의 음악적 성과를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한 글 외에도 책에 실린 오노 요코의 작품•공연 사진 50여장은 아주 혁신적이었던 그녀의 예술세계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의 첫 만남에 대한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자.

“[못 박기 회화]가 인디카 갤러리에서 전시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다가와 못을 박아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그가 5실링을 낸다면 못을 그림에 박아도 괜찮다고 했죠. 5실링을 내는 대신에 그는 상상의 못을 박아도 되는지 물었어요. 그가 바로 존 레논입니다. 나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 1967년 10월, 오노 요코

“그때가 바로 우리가 진짜로 만난 때였죠. 우리의 눈이 서로에게 멈추었는데, 그녀도 그걸 느끼고, 나도 그걸 느낀 겁니다.” – 존 레논, 벤 퐁 토레스의 책 [A Chronology The Ballad Of John And Y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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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현실보다 깊은 소리
성기완 지음 / 한나래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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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과 음악은 어떤 관계일까. 영화 음악은 단순히 극의 전개나 내러티브, 인물의 심리상태를 전달해주는 배경음악으로만 쓰이는 것인가. 그러나 그 정도로만 한정한다면 많은 걸 놓치게 된다. 영화 역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기존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은 영상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하는 시간의 연결이나 단절 같은 부분들을 표현하는 등 영화를 보완해주는 상당한 역할을 한다.


저자 성기완은 이 책에서 영화 음악의 바로 그런 기능, 음악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내는 지 설명하고 있다. 영화 음악이 영화에 미치는 역할과 기능, 방식은 물론 관객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방식 등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저자가 영화 주간지 [씨네 21]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놓은 이 책은 일단 영화사의 고전인 [시민 케인]에서 최근 개봉작 [그녀에게]까지 매우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고 있어 영화 마니아들을 만족시킨다. 약 90여 편의 영화 음악들을 ‘영화 음악의 문법’, ‘장르의 음악적 컨벤션’, ‘음악이 만드는 영화적 맥락’, ‘영화 음악의 심리학’, ‘한국 영화’, ‘영화 음악의 걸작’이란 범주로 나누어 다루면서 당대의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 내고 있다.


제1장인 ‘영화 음악의 문법’에서는 [시민 케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모베터 블루스] 등의 영화 음악을 예로 들어 영화 음악이 영화에 미치는 역할과 그 방식을 살피고, 2장 ‘장르와 음악적 컨벤션’에서는 [링], [미션 임파서블 2], [시카고] 같은 장르 영화에서 영화 음악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보는 식으로 이어나간다.


그 중 가장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은 [글루미 선데이],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빌리 엘리어트] 등을 묶은 3장 ‘음악이 만드는 영화적 맥락’이다. 영화가 그 자체만으로는 논리성이나 시간적 연결 혹은 단절을 모두 표현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내러티브나 배우들의 분장이나 카메라 조작으로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시공을 초월한 이해를 음악은 표현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스크린이 다 보여줄 수 없는 부분까지 관객에게 전달하는... 음악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닌가.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시인이자 대중 음악 평론가 그리고 그룹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로 문화 쪽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해오고 있는 저자 특유의 개성적인 시각과 문장력이 돋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영화 관련, 혹은 대중 음악 관련 책에 비해 에세이처럼 훨씬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읽는 맛도 더 있다. 5장에서 한국 영화의 영화 음악의 발전은 영화 음악계의 발전뿐 아니라 국내 대중 음악 발전, 영화와 음악의 자연스러운 결합이 모두 충족되어야 할 조건임을 역설하고 있는 부분도 그가 바로 음악인이기 때문에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책을 읽고 느낌이 좋았다면 성기완이 쓰거나 번역한 다른 음악 책들, 가령 평론집 [재즈를 찾아서]와 번역서 [록의 시대], 마일즈 데이비스의 평전 [마일즈] 등을 찾아 보길 권한다. 그리고 좀더 여유가 된다면 그의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까지 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책 읽기’ 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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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박영욱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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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는 과연 천박하고 보수적이며, 그래서 고급 문화와 구분 지을 수 있는가? 또 대중문화는 이데올로기적이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이러한 편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들과 한판 ‘맞장’을 뜬다. 기성 정치와 엘리트 사회에 도전한 섹스 피스톨스부터 복제를 통해 순수(고급)예술의 우월감을 전복해버린 앤디 워홀 등까지 여러 문화를 예로 들면서 대중문화가 어떻게 기존 문화의 틀을 깨고 있는지 보여준다.


우선 저자는 ‘대중음악에 대한 편견’에 대해 반박한다. 그를 위해 클래식 작곡가 쇤베르크와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너바나를 예로 들어 비교한다. 쇤베르크는 기존 클래식음악의 관습적인 7음계를 부정하고 12음기법과 무조음악을 만들어 현대음악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서양음악의 체계를 전복시킨 셈이다. 섹스 피스톨스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그들도 펑크 음악을 통해 체계를 전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복의 결정판이 너바나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너바나는 반음 혹은 한 음을 낮게 조율한 새로운 음색을 만들어냈으며, 조화에서 긴장으로 그리고 다시 조화로 이어지는 화성적 체계가 파괴되고도 음악이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 단조와 장조가 뒤섞인 혼동성 등을 갖춘 새로운 록 음악을 선보였다. 그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수천만 장의 앨범이 판매되고 수억 명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코베인의 영향력은 쇤베르크보다 훨씬 크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서양 클래식음악의 혁명가로 불리는 20세기 작곡가 쇤베르크에 필적하는 대중음악 혁명가 너바나 같은 음악가가 있으니 대중문화가 결코 결코 천박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중 가요 또한 1970년대의 포크송과 1990년대 서태지의 등장처럼 기존 문화에 대한 도전이자 진보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과연 대중문화를 고급 문화와 구별 짓는 것이 가능한가?,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고급예술의 존재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칸딘스키의 추상화와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분석하며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현대미술은 화가 자신의 내부로만 그 시선을 둠으로써 대중은 배제했다. 그들의 회화는 상징을 가진 도상들의 나열일 뿐, 그 상징은 화가만이 읽을 수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회화는 욕망을 지나치게 은폐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고립된 것이다. 그러나 팝아트는 그런 고립된 회화를 복제나 소재의 다양화(만화, 미스미디어 등의 이용)로 다시 대중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중이라는 존립근거를 떠난 고급문화가 생명력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


칸트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도가 지은 책답게 철학적인 방법론과 그것을 구체적인 대중문화에 적용한 것, 그리고 대중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 등은 다른 대중문화 연구서가 하지 못한 이 책만의 장점이다. 하지만 음표나 화성학 등 다소 생소한 내용들은 라캉, 부르디외 등 철학 및 사회과학 이론에 대한 설명이 많아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전반부처럼 읽기가 쉽지 않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 자체가 가진 쟁점들이 표출되게 한다는 점에서 많은 가치를 지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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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 1 - 집사재 논픽션 총서 2
마일스 데이비스 외 지음, 성기완 옮김 / 집사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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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지 기자나 음악 평론가(혹은 비평가)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음악가가 발표한 음악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풀어주는 것이다. 그런 기사나 평론을 쓸 때 그들은 대개 아티스트 개인, 음악 자체, 시대적 상황 같은 여러 가지 제반 사항들을 고려한다. 그러한 비평 방법 중 하나는 주관이나 가치 평가를 배제한 채 작품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있다. 섣불리 가치 판단을 했다가는 원작자의 의도가 완전히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독자가 음악을 듣고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나 평론가가 그렇게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음악가가 자신에 대해, 음악에 대해 직접 한 말이다.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해 어찌 당하랴. 간혹 저널리스트들이 애써 써놓은 글이나 생각들을 아주 간단하게 반박해버리는 뮤지션을 볼 수 있다. 인터뷰 글이 중요한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가가 직접 구술한 자서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음악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물론 음악을 들은 다음에 해당되는 얘기다.


얼마 전 절판됐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이 다시 출간됐다. ’40년대 이후 재즈의 새 지평을 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1989년에 남긴 구술을 작가인 퀸시 트루프가 기록해놓은 책이다. 재즈의 진보를 주도해온 개척자로서의 모습과 마약, 금단의 고통, 1975~80년 공백의 절망 등 그의 일생을 3권의 책에 담아냈다. 재즈사의 이면을 보여주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거친 입담(때론 욕설도 마구 튀어나온다)이 실감나는 구어체로 옮겨진 것이 특색이다. 이는 역자 성기완의 노력이며, 그래서 더 재미있고 읽는 맛이 난다.


특히 책 속 화보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비롯한 함께 동시대를 활약했던 여러 뮤지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진 아래에는 마일스가 직접 사진 설명을 해놓아 당시의 상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이며, 웬만큼 음악에 관심 있는 분들도 20세기의 거대한 음악 지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책이다. 그가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재즈사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 책에는 또 한때 마약과 섹스에 빠졌던 시절, 백인 정치가들에 대해 분노했던 일 등을 솔직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재즈 트럼펫 주자이자 밴드 리더였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뿐 아니라 20세기 대중음악계를 통틀어서도 가장 중요한 음악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뛰어난 연주력을 갖춘 재즈 음악가 이전에 다양한 장르를 개척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활동을 시작한 1940년대부터 199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결코 어느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1926년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치과의사인 아버지를 둔 중산층에서 자라난 데이비스는 1945년부터 찰리 파커 밑에서 트럼펫 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드 밥을 거쳐 모던 재즈의 걸작 [Kind Of Blue](1959)를 탄생시킨 그는 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지미 헨드릭스의 일렉트릭 록 사운드에 충격을 받아 재즈를 일렉트릭화하는 대담한 실험을 해나가는 등 항상 재즈의 방향을 이끌면서 방대한 앨범을 남겼다. 1975년에 일단 은퇴했다가 1981년 극적으로 부활한 마일스 데이비스는 1991년 7월 몬터레이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 그 해 9월 28일 사망하기 직전까지 트럼펫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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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의 미학 - 레코딩, 리듬, 그리고 노이즈
테오도어 그래칙 지음, 장호연 옮김 / 이론과실천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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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록 음악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관련 저작물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던 차에 얼터너티브 록의 물결이 국내에도 수용되고 또 국내 인디 록 진영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록은 하나의 문화적 담론으로 위상이 올라갔다. 록에 대해 연구하는 평론가들이 하나 둘씩 등장했고, 얼마 안 되지만 대중 음악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기 시작했으며, 관련 논문들도 발표되었다. 그 대부분의 저작들에서 록을 상징하는 데 있어 쓰인 키워드는 젊음, 저항, 이상, 하위문화와 같은 낱말들이었다. 그것들은 록이 서구 대중 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음악으로 급부상하게 된 1960년대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반영한 데 따른 언급이었다.


앞서 말한 논의들은 주로 사회적, 문화적 접근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것들은 록을 문화의 산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해주었지만 예술 일반으로 보게끔 하는 데는 아직 미비한 부분이 있다. 록에 대한 여러 사회적 의미만을 부여해주는 데 그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록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이 있거나 록을 본격적인 학문으로 연구하고 싶은 이들에겐 ‘과연 록이 그런 컨텍스트적인 연구만으로 제대로 해석될 수 있는가’, ‘록 자체로서의 미학은 없는 건가’, 라는 물음이 생긴다. 록의 본고장 영국과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대부분 그런 시각과 틀로 록을 연구해왔던 게 사실이다. 가령 록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 중 한 명인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 [록 음악의 사회학: 사운드의 힘]의 저자)조차도 사회학적 관점에서 록의 미학에 접근해왔다.


테오도어 그래칙(Theodore Gracyk)의 이 책은 록을 독창적인 예술로 분석하려는 최초의 저작물로 꼽힌다. [록 음악의 미학: 레코딩, 리듬 그리고 노이즈(Rhythm And Noise)]이란 제목 그대로 록 음악 자체의 음악적 가치를 평가해놓은 미학책으로, 앞서 말한 사회적, 문화적 접근이 아닌 미학적, 음악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의 틀을 따르면서 ‘레코딩이 일차적 매체’라는 점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재즈와 클래식 같은 다른 음악과 구별된다는 점을 내세우며 레코딩이 록의 제작 방식뿐 아니라 미학적 특징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밝힌다. 특히 그는 볼륨과 노이즈의 음향학적 속성에 주목하며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의 가치를 적극 평가한다. 계속해서 그는 록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도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 중 하나로 재즈를 상업적 일용품으로 폄하한 아도르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진지한 예술과 상업적 오락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자리에 길을 모색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록과 미학의 만남을 조망한다.


록을 설명하기 위해 음악뿐 아니라 미술, 영화, 철학, 미학까지 동원한 저자는 그러나 록 노래의 가사를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문에서 “가사를 인용하기보다는 록 음악가와의 인터뷰와, 이보다 빈도는 덜하지만 록 비평에서 인용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 “록을 음악 예술로 취급하면서 만약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 말대로 이 책에는 비틀즈, 도어스, 마일스 데이비스, 너바나, 유투 등 수많은 음악가들에 대한 다양한 일화와 인터뷰, 기사 등이 인용되는 점이 최대의 장점이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단점이기도 하다. 후기에 써놓은 번역자의 말대로 너무 많은 아티스트들과 음반, 사건들이 등장해 록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 팬으로서 한번 상대하고 싶은 흥미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결코 딱딱한 책이 아니며 읽는 재미도 있다. 관련 전공자와 연주자, 비평가,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 팬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전달할 책이다.


현재 영국 뉴캐슬 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공부하며 웹진 웨이브 등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역자 장호연은 깔끔하고 정확한 번역을 해놓았다. 또 그가 달아 놓은 역주와 마지막에 덧붙인 몇 권의 책도 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저자 테오도어 그래칙은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의 철학과 교수로서 예술과 철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는 학자다. 특히 대중음악에 관해 활발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두 번째 저서 [I Wanna Be Me: Rock Music And The Politics Of Identify](2001)를 내놓은 바 있다. 더 궁금한 점은 그의 홈페이지(http://www.mnstate.edu/gracyk/)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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