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음악의 미학 - 레코딩, 리듬, 그리고 노이즈
테오도어 그래칙 지음, 장호연 옮김 / 이론과실천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록 음악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관련 저작물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던 차에 얼터너티브 록의 물결이 국내에도 수용되고 또 국내 인디 록 진영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록은 하나의 문화적 담론으로 위상이 올라갔다. 록에 대해 연구하는 평론가들이 하나 둘씩 등장했고, 얼마 안 되지만 대중 음악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기 시작했으며, 관련 논문들도 발표되었다. 그 대부분의 저작들에서 록을 상징하는 데 있어 쓰인 키워드는 젊음, 저항, 이상, 하위문화와 같은 낱말들이었다. 그것들은 록이 서구 대중 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음악으로 급부상하게 된 1960년대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반영한 데 따른 언급이었다.


앞서 말한 논의들은 주로 사회적, 문화적 접근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것들은 록을 문화의 산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해주었지만 예술 일반으로 보게끔 하는 데는 아직 미비한 부분이 있다. 록에 대한 여러 사회적 의미만을 부여해주는 데 그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록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이 있거나 록을 본격적인 학문으로 연구하고 싶은 이들에겐 ‘과연 록이 그런 컨텍스트적인 연구만으로 제대로 해석될 수 있는가’, ‘록 자체로서의 미학은 없는 건가’, 라는 물음이 생긴다. 록의 본고장 영국과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대부분 그런 시각과 틀로 록을 연구해왔던 게 사실이다. 가령 록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 중 한 명인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 [록 음악의 사회학: 사운드의 힘]의 저자)조차도 사회학적 관점에서 록의 미학에 접근해왔다.


테오도어 그래칙(Theodore Gracyk)의 이 책은 록을 독창적인 예술로 분석하려는 최초의 저작물로 꼽힌다. [록 음악의 미학: 레코딩, 리듬 그리고 노이즈(Rhythm And Noise)]이란 제목 그대로 록 음악 자체의 음악적 가치를 평가해놓은 미학책으로, 앞서 말한 사회적, 문화적 접근이 아닌 미학적, 음악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의 틀을 따르면서 ‘레코딩이 일차적 매체’라는 점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재즈와 클래식 같은 다른 음악과 구별된다는 점을 내세우며 레코딩이 록의 제작 방식뿐 아니라 미학적 특징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밝힌다. 특히 그는 볼륨과 노이즈의 음향학적 속성에 주목하며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의 가치를 적극 평가한다. 계속해서 그는 록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도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 중 하나로 재즈를 상업적 일용품으로 폄하한 아도르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진지한 예술과 상업적 오락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자리에 길을 모색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록과 미학의 만남을 조망한다.


록을 설명하기 위해 음악뿐 아니라 미술, 영화, 철학, 미학까지 동원한 저자는 그러나 록 노래의 가사를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문에서 “가사를 인용하기보다는 록 음악가와의 인터뷰와, 이보다 빈도는 덜하지만 록 비평에서 인용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 “록을 음악 예술로 취급하면서 만약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 말대로 이 책에는 비틀즈, 도어스, 마일스 데이비스, 너바나, 유투 등 수많은 음악가들에 대한 다양한 일화와 인터뷰, 기사 등이 인용되는 점이 최대의 장점이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단점이기도 하다. 후기에 써놓은 번역자의 말대로 너무 많은 아티스트들과 음반, 사건들이 등장해 록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 팬으로서 한번 상대하고 싶은 흥미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결코 딱딱한 책이 아니며 읽는 재미도 있다. 관련 전공자와 연주자, 비평가,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 팬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전달할 책이다.


현재 영국 뉴캐슬 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공부하며 웹진 웨이브 등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역자 장호연은 깔끔하고 정확한 번역을 해놓았다. 또 그가 달아 놓은 역주와 마지막에 덧붙인 몇 권의 책도 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저자 테오도어 그래칙은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의 철학과 교수로서 예술과 철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는 학자다. 특히 대중음악에 관해 활발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두 번째 저서 [I Wanna Be Me: Rock Music And The Politics Of Identify](2001)를 내놓은 바 있다. 더 궁금한 점은 그의 홈페이지(http://www.mnstate.edu/gracyk/)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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