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 1 - 집사재 논픽션 총서 2
마일스 데이비스 외 지음, 성기완 옮김 / 집사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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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음악지 기자나 음악 평론가(혹은 비평가)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음악가가 발표한 음악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풀어주는 것이다. 그런 기사나 평론을 쓸 때 그들은 대개 아티스트 개인, 음악 자체, 시대적 상황 같은 여러 가지 제반 사항들을 고려한다. 그러한 비평 방법 중 하나는 주관이나 가치 평가를 배제한 채 작품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있다. 섣불리 가치 판단을 했다가는 원작자의 의도가 완전히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독자가 음악을 듣고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나 평론가가 그렇게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음악가가 자신에 대해, 음악에 대해 직접 한 말이다.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해 어찌 당하랴. 간혹 저널리스트들이 애써 써놓은 글이나 생각들을 아주 간단하게 반박해버리는 뮤지션을 볼 수 있다. 인터뷰 글이 중요한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가가 직접 구술한 자서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음악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물론 음악을 들은 다음에 해당되는 얘기다.


얼마 전 절판됐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이 다시 출간됐다. ’40년대 이후 재즈의 새 지평을 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1989년에 남긴 구술을 작가인 퀸시 트루프가 기록해놓은 책이다. 재즈의 진보를 주도해온 개척자로서의 모습과 마약, 금단의 고통, 1975~80년 공백의 절망 등 그의 일생을 3권의 책에 담아냈다. 재즈사의 이면을 보여주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거친 입담(때론 욕설도 마구 튀어나온다)이 실감나는 구어체로 옮겨진 것이 특색이다. 이는 역자 성기완의 노력이며, 그래서 더 재미있고 읽는 맛이 난다.


특히 책 속 화보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비롯한 함께 동시대를 활약했던 여러 뮤지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진 아래에는 마일스가 직접 사진 설명을 해놓아 당시의 상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이며, 웬만큼 음악에 관심 있는 분들도 20세기의 거대한 음악 지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책이다. 그가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재즈사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 책에는 또 한때 마약과 섹스에 빠졌던 시절, 백인 정치가들에 대해 분노했던 일 등을 솔직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재즈 트럼펫 주자이자 밴드 리더였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뿐 아니라 20세기 대중음악계를 통틀어서도 가장 중요한 음악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뛰어난 연주력을 갖춘 재즈 음악가 이전에 다양한 장르를 개척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활동을 시작한 1940년대부터 199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결코 어느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1926년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치과의사인 아버지를 둔 중산층에서 자라난 데이비스는 1945년부터 찰리 파커 밑에서 트럼펫 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드 밥을 거쳐 모던 재즈의 걸작 [Kind Of Blue](1959)를 탄생시킨 그는 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지미 헨드릭스의 일렉트릭 록 사운드에 충격을 받아 재즈를 일렉트릭화하는 대담한 실험을 해나가는 등 항상 재즈의 방향을 이끌면서 방대한 앨범을 남겼다. 1975년에 일단 은퇴했다가 1981년 극적으로 부활한 마일스 데이비스는 1991년 7월 몬터레이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 그 해 9월 28일 사망하기 직전까지 트럼펫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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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의 미학 - 레코딩, 리듬, 그리고 노이즈
테오도어 그래칙 지음, 장호연 옮김 / 이론과실천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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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록 음악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관련 저작물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던 차에 얼터너티브 록의 물결이 국내에도 수용되고 또 국내 인디 록 진영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록은 하나의 문화적 담론으로 위상이 올라갔다. 록에 대해 연구하는 평론가들이 하나 둘씩 등장했고, 얼마 안 되지만 대중 음악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기 시작했으며, 관련 논문들도 발표되었다. 그 대부분의 저작들에서 록을 상징하는 데 있어 쓰인 키워드는 젊음, 저항, 이상, 하위문화와 같은 낱말들이었다. 그것들은 록이 서구 대중 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음악으로 급부상하게 된 1960년대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반영한 데 따른 언급이었다.


앞서 말한 논의들은 주로 사회적, 문화적 접근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것들은 록을 문화의 산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해주었지만 예술 일반으로 보게끔 하는 데는 아직 미비한 부분이 있다. 록에 대한 여러 사회적 의미만을 부여해주는 데 그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록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이 있거나 록을 본격적인 학문으로 연구하고 싶은 이들에겐 ‘과연 록이 그런 컨텍스트적인 연구만으로 제대로 해석될 수 있는가’, ‘록 자체로서의 미학은 없는 건가’, 라는 물음이 생긴다. 록의 본고장 영국과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대부분 그런 시각과 틀로 록을 연구해왔던 게 사실이다. 가령 록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 중 한 명인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 [록 음악의 사회학: 사운드의 힘]의 저자)조차도 사회학적 관점에서 록의 미학에 접근해왔다.


테오도어 그래칙(Theodore Gracyk)의 이 책은 록을 독창적인 예술로 분석하려는 최초의 저작물로 꼽힌다. [록 음악의 미학: 레코딩, 리듬 그리고 노이즈(Rhythm And Noise)]이란 제목 그대로 록 음악 자체의 음악적 가치를 평가해놓은 미학책으로, 앞서 말한 사회적, 문화적 접근이 아닌 미학적, 음악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의 틀을 따르면서 ‘레코딩이 일차적 매체’라는 점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재즈와 클래식 같은 다른 음악과 구별된다는 점을 내세우며 레코딩이 록의 제작 방식뿐 아니라 미학적 특징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밝힌다. 특히 그는 볼륨과 노이즈의 음향학적 속성에 주목하며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의 가치를 적극 평가한다. 계속해서 그는 록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도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 중 하나로 재즈를 상업적 일용품으로 폄하한 아도르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진지한 예술과 상업적 오락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자리에 길을 모색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록과 미학의 만남을 조망한다.


록을 설명하기 위해 음악뿐 아니라 미술, 영화, 철학, 미학까지 동원한 저자는 그러나 록 노래의 가사를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문에서 “가사를 인용하기보다는 록 음악가와의 인터뷰와, 이보다 빈도는 덜하지만 록 비평에서 인용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 “록을 음악 예술로 취급하면서 만약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 말대로 이 책에는 비틀즈, 도어스, 마일스 데이비스, 너바나, 유투 등 수많은 음악가들에 대한 다양한 일화와 인터뷰, 기사 등이 인용되는 점이 최대의 장점이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단점이기도 하다. 후기에 써놓은 번역자의 말대로 너무 많은 아티스트들과 음반, 사건들이 등장해 록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 팬으로서 한번 상대하고 싶은 흥미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결코 딱딱한 책이 아니며 읽는 재미도 있다. 관련 전공자와 연주자, 비평가,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 팬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전달할 책이다.


현재 영국 뉴캐슬 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공부하며 웹진 웨이브 등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역자 장호연은 깔끔하고 정확한 번역을 해놓았다. 또 그가 달아 놓은 역주와 마지막에 덧붙인 몇 권의 책도 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저자 테오도어 그래칙은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의 철학과 교수로서 예술과 철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는 학자다. 특히 대중음악에 관해 활발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두 번째 저서 [I Wanna Be Me: Rock Music And The Politics Of Identify](2001)를 내놓은 바 있다. 더 궁금한 점은 그의 홈페이지(http://www.mnstate.edu/gracyk/)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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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 - 음반으로 본 서구 대중음악의 역사, 대중예술산책 02
임진모 지음 / 어진소리(민미디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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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반이란 어떤 걸까” 음악 감상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이다. 그래서 남들이 뭐라 해도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좋은 음반이란 대체적인 기준이 있다. 나 혼자만 듣는 게 아니라 남들도 함께 좋아하는 음악일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음반을 들을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명반이란 뭘까, 라는 호기심을 갖기 마련이다.

여러 지면과 방송을 통해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팝 칼럼니스트 임진모가 쓴 [세계를 뒤흔든 대중음악의 명반]은 일반인들의 그런 궁금증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평적 관점에 입각해 먼저 좋은 음반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 내린 후, 그야말로 전 세계 팬들과 비평가들을 사로잡았던 팝 명반 116장을 하나하나 소개해나간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책은 단순히 명반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명반을 통해 서구 대중 음악의 역사를 풀어나간다.

책 소개에 앞선 머리말에서 임진모는 음악을 이해하는 접근법으로 작품론을 으뜸으로 꼽으면서 “앨범은 음악가가 발휘하는 예술성의 결정체이자 미학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앨범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음악 작가들의 감각 시각 사상 등 '시대정신'이 투영되어있는 결과물”이라고 정의한다. 그와 함께 “예술성과 시대성을 축으로 음악대중과 음악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들을 선별했다.”라고 명반 선정의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고 있다. 벡의  [Odelay]나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등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음반은 그런 근거에 의해 선별되었다.

하지만 그는 “예술성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면 그 시대상황을 읽기에 부적합하고, 반대로 시대성에 역점을 두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좋은 음반'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라고 한계를 지적하고 “대중들에게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환영받은 작품은 설령 명반이라 말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중요한 작품’”이라며 대중성을 강조하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의 [Daydream]이나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Millennium] 같은 경우 그런 관점에서 선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대중적으로는 소외 받았지만 모든 뮤지션에게 영감을 준 전설적인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Velvet Underground & Nico]처럼 커다란 파급력을 지닌 앨범 역시 이 책에 포함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줄기는 ‘50년대 고전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Elvis' Golden Records]부터 2000년도 앨범인 에미넴의 [The Marshall Mathers LP]까지 고른 116장의 명반 소개지만 중간중간에 비록 명반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앨범들을 추가해놓은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가령 스톤 로지스의 [Stone Roses] 편에서는 해피 먼데이스, 인스파이럴 카페트 같은 동시대 매드체스터 앨범들을, 소닉 유스의 [Daydream Nation]에서는 미국의 80년대 인디 음악들을 조망할 수 있으며, 프로디지의 [The Fat Of The Land]의 경우 다른 주요 테크노 앨범들도 덧붙여 놓았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단순히 앨범 하나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앨범의 컨텍스트나 당시의 역사까지 개괄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꾸며 놓았다. 마찬가지로 사이사이에 배치된 ‘국내 평론가와 음악인들이 선정한 베스트 팝 앨범’이나 [스핀], [NME], [모조], [Q] 등 해외 유수의 음악 잡지들이 선정한 명반 100선 같은 리스트도 음악 애호가들에게 보다 폭 넓은 준거를 제시한다. 

방송 도중 저자와 종종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여 듣는 이를 긴장시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진행자 배철수는 소개 글을 통해 “저자와 오랜 기간 방송을 함께 하면서 저는 저자의 음악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순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어느 순간에는 저자와 비교하여 심한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보석을 골라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그런 우리들의 수고를 덜어준 임진모씨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라며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만 너무 영미 팝과 록에만 치중되어 있는 점, 그래서 제3세계 월드뮤직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앨범이 있긴 하지만) 점 등 일말의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뒤흔든 대중음악의 명반]은 다른 여러 미덕들이 담겼으며, 이번에 재 발간된 그의 또 다른 저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와 더불어 독자들의 팝 음악 듣기를 더욱 윤택하게 해줄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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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의 재즈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와다 마카코 그림, 김난주 옮김 / 까치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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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외국 소설가 중 한 사람이 무라카미 하루키다. 나름대로 진보적이며 쿨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가장 먼저 하루키의 책들을 꼽곤 한다. 초판이 나온 이래 10년 이상 줄곧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내놓지 않은 ‘젊은이들의 필독서적’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필두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을 둘러싼 모험] 같은 중편들과 여러 단편집, 그리고 소소한 수필집까지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그가 그토록 사랑 받는 이유는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 속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취향과 외국에 대한 동경 같은 부분들이 끌렸다. 하루키의 주인공은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친구가 되고([상실의 시대]), 여름 내내 제이스 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오락기계의 아우라를 찾아 인생을 건다([1973년의 핀볼]).

 

그런데 하루키 소설을 읽다 보면 유난히 음악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중에서도 1960년대 록과 재즈가 주를 이룬다. 왜냐하면 소설가 이전에 그는 음악 마니아였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서구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던 1960년대에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록과 재즈 애호가가 되었다. 때문에 음악의 매혹을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의 소설에 그 소재를 적절히 이용한 것이다. 일례로 [상실의 시대] 같은 경우는 아예 그가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반복해서 듣고 그것에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그는 특히 재즈 카페를 경영했을 정도로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JBL의 낡고 커다란 백 로드 혼 유니트 스피커와 LP로 25년 동안 재즈를 듣고 있다.

 

이 책 [또 하나의 재즈 에세이]는 1998년에 나왔던 [재즈 에세이](열림원 펴냄)의 속편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화가 와다 마코토가 호레이스 실버, 웨스 몽고메리, 장고 라인하르트 등 재즈 뮤지션 26명을 골라 그림을 그리고, 하루키가 그 그림에다가 글을 붙인 재즈 수필집이다. “재즈를 듣는 행위에도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면도칼에도 철학은 있는 것처럼”라고 말하는 하루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 가수의 음악을 틀어놓고 순전히 사적인 기억과 감흥을 이 책에 풀어놓고 있다. 그는 정말 음악의 빛깔과 분위기를 딱 맞아떨어지는 언어로 옮겨 놓는 놀라운 재능을 지녔다. 글 쓰는 이가 아니더라도 그 문장의 적확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키의 매력 중 하나가 이런 짧지만 명확한 문체일 것이다. 바로 이런 식이다.

 

“콜린스의 매력은 얼마든지 들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은 스탠더드 송을 연주할 때의 저 소름 끼치는 해상력이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노래의 품으로 파고들어 일단은 그 내용을 느슨하게 풀었다가 자기 마음껏 재구성하여 다시 나사를 꽉 조인다. 구조만 남기고 텍스트의 내부를 바꾸어놓는 것이다. 나는 그런 때의 그의 기민한 판단력에 늘 황홀감을 느낀다. ‘이과 계통’인 존 콜트레인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 6p. 소니 콜린스

 

“1960년대 후반의 ‘농밀했던’ 재즈계에서 ‘처녀 항해Maiden Voyage’의 스마트한 앨범 재킷과 미래 지향적이며 청신한 사운드는 젊은 재즈 팬들의 마음에 선명한 각인을 남겼다. 마치 오랫동안 꽉 닫혀 있었던 집의 창문을 누군가의 손이 활짝 열어젖힌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 82p. 허비 핸콕

 

게다가 그는 각각의 음악가에 대해서 웬만한 평론가보다 더 날카롭고 참신한 평을 내려놓는다. 가령 스윙 시대의 스타 글렌 밀러에 대해선 “밀러의 음악은 재즈라기보다는 ‘재즈의 이디엄을 뿌려놓은 댄스 뮤직’이라고 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평하고,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에 대해 “핸콕은 제로에서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음악가가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스타일로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유형의 음악가”라고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관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사적이다. 따라서 그의 견해와 꼭 맞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루키의 말대로 그저 음악을 즐기고 문장을 즐기면 된다. 재즈 입문용으로 읽어도 좋고 그의 글을 감식하기 위해서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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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 - Amnesiac
라디오헤드 (Radiohead) 노래 / 워너뮤직(팔로폰)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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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전자음악은 댄스 플로어용 테크노가 아니다. 말하자면 ‘감상용 테크노’이며 아방가르드적인 신시사이저 작업을 통해 윙윙대고 진동하며 최면을 걺으로써 환각적인 효과를 유도한다. 곡이나 음율, 메시지보다는 음원 또는 음원의 창조적 확장성에 각별한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포스트 록(Post-rock)’, 또 한참 거슬러 올라가 독일 ‘크라우트 록(Krout-rock)’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라디오헤드는 앰비언트 쪽에 더 친밀하며, 프리재즈, 아방가르드 등을 통해 실험적인 일렉트로니카 탐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Pyramid Song’, ‘I Might Be Wrong’, ‘Knives Out’ 등이 대표적인 트랙들. ‘Morning Bell/Amnesiac’은 전작의 ‘Morning Bell’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주되었다. 록 밴드였던 라디오헤드는 이제 오비틀, 오테크, 에이펙스 트윈, 오브 등의 ‘일렉트로니카 엘리트’ 대열에 끼어 들 채비다. 미필적 고의에 따른 '기타 록 기억상실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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