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 재즈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와다 마카코 그림, 김난주 옮김 / 까치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외국 소설가 중 한 사람이 무라카미 하루키다. 나름대로 진보적이며 쿨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가장 먼저 하루키의 책들을 꼽곤 한다. 초판이 나온 이래 10년 이상 줄곧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내놓지 않은 ‘젊은이들의 필독서적’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필두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을 둘러싼 모험] 같은 중편들과 여러 단편집, 그리고 소소한 수필집까지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그가 그토록 사랑 받는 이유는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 속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취향과 외국에 대한 동경 같은 부분들이 끌렸다. 하루키의 주인공은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친구가 되고([상실의 시대]), 여름 내내 제이스 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오락기계의 아우라를 찾아 인생을 건다([1973년의 핀볼]).

 

그런데 하루키 소설을 읽다 보면 유난히 음악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중에서도 1960년대 록과 재즈가 주를 이룬다. 왜냐하면 소설가 이전에 그는 음악 마니아였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서구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던 1960년대에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록과 재즈 애호가가 되었다. 때문에 음악의 매혹을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의 소설에 그 소재를 적절히 이용한 것이다. 일례로 [상실의 시대] 같은 경우는 아예 그가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반복해서 듣고 그것에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그는 특히 재즈 카페를 경영했을 정도로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JBL의 낡고 커다란 백 로드 혼 유니트 스피커와 LP로 25년 동안 재즈를 듣고 있다.

 

이 책 [또 하나의 재즈 에세이]는 1998년에 나왔던 [재즈 에세이](열림원 펴냄)의 속편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화가 와다 마코토가 호레이스 실버, 웨스 몽고메리, 장고 라인하르트 등 재즈 뮤지션 26명을 골라 그림을 그리고, 하루키가 그 그림에다가 글을 붙인 재즈 수필집이다. “재즈를 듣는 행위에도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면도칼에도 철학은 있는 것처럼”라고 말하는 하루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 가수의 음악을 틀어놓고 순전히 사적인 기억과 감흥을 이 책에 풀어놓고 있다. 그는 정말 음악의 빛깔과 분위기를 딱 맞아떨어지는 언어로 옮겨 놓는 놀라운 재능을 지녔다. 글 쓰는 이가 아니더라도 그 문장의 적확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키의 매력 중 하나가 이런 짧지만 명확한 문체일 것이다. 바로 이런 식이다.

 

“콜린스의 매력은 얼마든지 들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은 스탠더드 송을 연주할 때의 저 소름 끼치는 해상력이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노래의 품으로 파고들어 일단은 그 내용을 느슨하게 풀었다가 자기 마음껏 재구성하여 다시 나사를 꽉 조인다. 구조만 남기고 텍스트의 내부를 바꾸어놓는 것이다. 나는 그런 때의 그의 기민한 판단력에 늘 황홀감을 느낀다. ‘이과 계통’인 존 콜트레인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 6p. 소니 콜린스

 

“1960년대 후반의 ‘농밀했던’ 재즈계에서 ‘처녀 항해Maiden Voyage’의 스마트한 앨범 재킷과 미래 지향적이며 청신한 사운드는 젊은 재즈 팬들의 마음에 선명한 각인을 남겼다. 마치 오랫동안 꽉 닫혀 있었던 집의 창문을 누군가의 손이 활짝 열어젖힌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 82p. 허비 핸콕

 

게다가 그는 각각의 음악가에 대해서 웬만한 평론가보다 더 날카롭고 참신한 평을 내려놓는다. 가령 스윙 시대의 스타 글렌 밀러에 대해선 “밀러의 음악은 재즈라기보다는 ‘재즈의 이디엄을 뿌려놓은 댄스 뮤직’이라고 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평하고,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에 대해 “핸콕은 제로에서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음악가가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스타일로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유형의 음악가”라고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관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사적이다. 따라서 그의 견해와 꼭 맞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루키의 말대로 그저 음악을 즐기고 문장을 즐기면 된다. 재즈 입문용으로 읽어도 좋고 그의 글을 감식하기 위해서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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