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을 재미있게 봤었다. 극중 송중기(진도준 역)는 미래에서 왔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다. 그는 칼기 폭파사건을 예상해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한 값으로 논만 휑한 분당땅을 받고, 그것은 10 몇 년 후 그가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든든한 씨드머니가 되어준다.
타이타닉에 투자하고, IMF를 예상하며 Y2K를 알고 바이코리아를 이끈다.이 모든 것은 그가 미래의 모습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안다면' 현재가 달라질까?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아느냐고? 우리가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를 아는 사람은 '신'밖에 없는데, 신은 인간이 아니니 결국 미래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신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화된 신은 아닐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범신론적 신을 믿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어쨌든 그렇게 미래와 현재를 따로 떼어놓고 보지만 사실, 세상을 바꾼 1%의 사람들은 미래를 아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원하는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하게 미래를 아는 법일 것이다.
"전념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술이다. 우리가 지금 무엇에 전념하고 있는지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결과가 전념의 증거다." (p.41)
그러니까 지금 현재의 나는 과거의 전념의 결과다. 그 생각을 하면 얼마나 소름끼치는지 모른다.
예전에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보다가 완전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바로 "무지는 노력의 소산"이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기회와 사건을 통해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일을 만난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지를 타파하겠다거나 나를 알아보겠다는 생각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가 바로 무지라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자연체같은 것이 아니라 목적과 의지를 가진 철저한 실행의 결과가 '무지'라는 말에 얼마나 충격적이던지. 여기서 '무지'라는 말에 '미래'를 넣으면 결과는 똑같다. 미래는 현재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불가항력의 무엇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철저한 목적과 의지와 실행의 결과가 미래다. 그러니 우리의 전념이 적극적 전념이건 소극적 전념이건 그 결과는 미래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거겠지.
한때, 미래만 보고 산 적이 있다. 내일의 나를 어때야 해. 3년 후, 5년 후의 나는 어때야해. 나는 그렇게 미래를 사는 사람이었다. 그것만을 보고 살았다. 그런데 그것때문에 나는 현재를 산 적이 없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아파도 괴로워도 그저 참았다. 미래를 위해. 그리고 나는 지금 거울을 바라본다.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 내가 원하던 미래가 에고로 가득찬 그저 그런 삶이었던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3년 후를 위해서. 3년 후에 지금처럼 똑같이 힘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3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보며 이 책을 읽는다.
"행동이 바뀌는 이유는 정체성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자신이 가장 전념하는 모습이다. 정체성의 바탕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전이 있다. 따라서 전념하는 비전이 다라질 때 정체성은 즉시 달라진다. 그러면 생각과 행동도 바로 달라진다. 맞다, 미래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p.41)
나는 이게 모든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정체성이 바뀌지 않는 한, 그리고 가끔 그 정체성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정체성이 과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이다. 정체성은 미래에서 온다.
우리가 다음날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오늘 술자리를 자제하듯이, 1달 후 발표할 일이 있으면 지금부터 틈틈이 준비하듯이, 3년후 미래를 위해 오늘 투자하듯이.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말하듯 시간차를 뛰어넘는 말이 평범한 말을 신의 계시처럼 들리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의 평범한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은 아닐까.
그게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이고 긍정확언의 본질이며, 네 안의 잠든 거인을 깨우고, 생각하면 부자가 되고, 잠재의식의 힘이고, 부의 시크릿이고 야망의 힘이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던 그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거머쥔다.
그리고 90%의 사람들이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그릴 때, 그 사람들은 미래를 먼저 그린다. 완성된 집의 형태를 먼저 보고 그것의 설계도를 그려나간다. 그리고 그 집을 짓기 위해 현재에 무엇을 할지 역산한다. 성공은 그렇게 비합리적으로 온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관심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기꺼이 희생한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나중에 미래의 내가 더 많은 돈을 쓸 수 잇또록 지금은 소비의 즐거움을 희생할 것이다. 일시적인 만족을 희생하고 교육과 건강, 인간관계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다. 미래의 나를 좋아하다가 그 감정이 커져 사랑하게 되면 현재의 보상을 희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래의 나를 위해 투자하게 된다.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때, 나는 그 일 혹은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투자한다." (p.83)
나는 미래의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가? 미래의 내가 진심으로 성공하기 원하는가? 이 책은 결국 그것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망설이지 말고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기꺼이 투자하기. 내가 아이한테 하듯이, 우리 회사에 하듯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미래의 나를 위해 기꺼이 투자하고 헌신해야겠다.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먼저 다른 사람이 목표를 이룰 수 잇게 도와라. 거기서 출발해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변혁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당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으로 갈 수 있다. 변혁적 관계를 탄탄하게 구축하면, 미래의 당신은 상상 이상으로 훌륭하고 탁월해질 것이다. 거래적 관계로는 지금 이 지점까지만 올 수 있었다. 거래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미래의 나는 더 멀리 갈 수 없다. - P80
누군가에게 진정한 관심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기꺼이 희생한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나중에 미래의 내가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도록 지금은 소비의 즐거움을 희생할 것이다. 일시적인 만족을 희생하고 교육과 건강, 인간관계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다. 미래의 나를 좋아하다가 그 감정이 커져 사랑하게 되면 현재의 보상을 희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래의 나를 위해 투자하게 된다.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때, 나는 그 일 혹은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투자한다. - P83
두려움이 용기가 되면 용기와 비전이 동기가 되는 것보다 낮은 수준의 의식 상태에 머물게 된다. 두려움을 초월해 수용과 용기. 사랑을 행동의 이유로 삼으려면 더 높은 수준의 정서가 발달해야 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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