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은 10여년 전, 35살 즈음의 내가 매일같이 읽던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한 열번은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밑줄을 긋는 부분이 달랐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바로 키친 테이블 픽션과 어느 스님이 해주었다는 이야기다. 



첫번째 키친테이블 노블.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써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 그동안 받았던 상처가 치유되었다는, 



그 부분을 읽으며 나는 밤마다 무언가를 써내려갔었다. 그 글들을 묶어 책으로도 냈었지만, 결국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쓰면서 치유받았다. 그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두번째 이야기. 빵집에 나타나 "10년 뒤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는 유명한 사람이 돼 있을 겁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라는 스님의 말에 이은 말,



"난 그 말을 믿기로 했다. 그로부터 6년 정도가 지난 뒤였다. 문인들이 모이는 술자리에 갔다가 "너는 이제 끝났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무례한 말에 있는 힘껏 항변했지만 그건 내가 정말 소설가로서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소설가로서의 재능이 없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10년이라고 했다. 아직 4년 정도는 더 남아 있었다. 이백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대시인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건 아니다. 다만 거기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눈물을 참았고, 그건 내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다만 거기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 그렇게 그의 문장을 밧줄 삼아 나는 삼십대를 버텼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책 2권을 연달아 읽었다. <청춘의 문장들> 개정판과 <이토록 평범한 미래>
















10년이 지나 다시 읽은 <청춘의 문장들>에서는 또 다른 곳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내가 이번에 뽑은 문장은 이런 것들이었다. 



"2080년의 일들을 상상하는 나에게 미래의 누군가가 찾아와 그때에도 종이신문의 한 귀퉁이에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릴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그게 가장 놀랄 만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먼 미래의 사람들도 하리라는 것,... 그렇게 이 세계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놀랄 만한 미래는, 그렇게 다가온다."(청춘의 문장들_ 15p)



"그러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계속 지는 한 다음번에 이길 확률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워진다.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는 결국 돈을 따게 돼 있었다. 다만 판돈이 부족했을 뿐이다...."(이토록 평범한 미래 22p)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고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19p)



여기서 그는 신은 미래의 통합된 마음이라고 말한다. 이십년 빨리 말하는 그 시차가 평범한 말을 신의 말처럼 들리게 한다고. 그렇게 미래를 기억할 때 지금의 삶을 세번째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다고. 



이부분을 읽고 나니 너무 자연스럽게 영화 <컨택트>가 생각이 났다. 정체모를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익힌 주인공 언어학자는 그들의 언어를 통해 시간 관념 없는 그들의 세계를 익힐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모든걸 껴안고 모든 순간을 반길꺼라고 말한다. 마치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소설속 주인공이 세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 이 문장은 오늘부터 나의 인생 문장이 되었다. 놀랄만한 미래는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나의 판돈은 나의 시간이다. 그렇기에 젊은이들은 언제나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한다. 김



연수의 이 문장을 우울한 요즘, 만날 수 있었기에 너무 다행이다. 다만 이대로 끝나지 않기만을 .. 평범한 미래를 그릴 수 있기를... 시간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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