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 시간이 만드는 기적, 그곳의 당신이라는 이야기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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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에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읽는 내내 그 사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 읽고 난 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니, 작가가 전한 이야기들과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뒤죽박죽 되어 있었다. 왜 그 사람이 떠올랐을까?

그 사람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다. 취향이 너무나 비슷해서 '와, 이 사람은 나의 소울메이트야!'라는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해박한 지식을 가져서 가르침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의 목표를 함께 이루려고 애쓰는 동료 관계도 아니고, 소꿉친구처럼 오랜 시간 지켜봐왔기 때문에 눈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다. 알게 된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신선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읽고 그 사람이 떠오른 것은 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수다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뭔가를 느끼면 그것을 말로 표현해야 하고, 어떻게든 '개시'하지 않으면 못 견뎌한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될 때 즐겁고, 그것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 기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침묵이 편해졌다. 어떤 것에 대해 예민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면 '설명충', '진지충'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런 말이 듣기 싫어서 점점 말수가 줄였다. 말에 깊이가 더해지면 사람들은 피곤함을 느꼈다. 영화나 책, 드라마나 노래 등 어떠한 컨텐츠를 접하는 것도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 뒤에 감상을 논하자고 하면 귀찮아했다. 그래서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다. 내뱉는 말들은 표면에서 떠돌다 날아갈 뿐이었고, 분명히 함께 있고 말을 하고 있지만 소통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화가 그리웠다.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곱씹으며 소화해낸 생각들이나 무언가를 보고 느낀 강렬한 인상, 또는 경험을 바탕으로 세워진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나누는 이야기가 그리웠다.

그러던 중 이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잘 들어줬고 거침없이 말했다. 자신이 읽은 것, 본 것, 느낀 것을 공유하자고 권해왔다. 나는 그 친구가 전달하는 말과 함께 한 허무맹랑한 상상에서 생활의 영감을 얻고, 그것은 나를 작게, 때로는 크게 변화시켰다. 그 친구와 만날 때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 친구를 통해 '이야기'가 갖는 힘을 느낀다. 

나는 책의 저자인 강세형이라는 사람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믿는 이야기의 힘에 공감한다. 서평에 쓰인 '이야기는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는 말, 그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이야기의 힘을 알려준 그 친구를 떠올리게 한 것 같다. 


소설 쓰는 친구와 연극하는 친구가 만났다. 연극하는 친구가 말했다. "사람들이 생활에서 연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탓인지, 연극들을 잘 안 봐." 소설 쓰는 친구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생각을 한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야. 세상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으니까.' 두 친구는 말없이 술잔만 부딪쳤다.

꽤 오래전 책을 읽다 발견한 이 장면에서 나는 어쩐지 좀 쓸쓸해졌다. "요즘엔, 소설은 아예 안 보는 사람들도 꽤 많아." 내 주위의 글쟁이들도 이런 얘길 참 많이 한다. 그때마다 나 역시 조금 쓸쓸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내 마음 한편에선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야. 그래도 나는 아직, 이야기의 힘을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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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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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일주일 정도 독일에 다녀오는 일정이 있었다. 프랑크푸르트까지 10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을 견디기 위해 두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책을 준비했다. 출발하기 전 날 한 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에, 책은 사실 자장가 용도로 챙긴 것이었다. 잘 준비를 다 하고 좌석에 앉아서 이 책을 꺼내들었는데, 내용이 너무 인상 깊어서 결국 10시간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했다. 

1991년도에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새로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신화는 여전히 남아있고, 그것이 우리 삶의 근원적인 부분까지 지배하고 있는 한, 20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충격적이다. 특히, 몇 보 뒤에서 미국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지금 읽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다.

글에는 힘이 있다. 때로는 어떠한 매체보다도 효율적이고 확실하게 현실을 바꾸는 힘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힘을 실감했다. 나의 현실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소개한 후, 내가 겪고 있는 변화들을 고백하려고 한다. 

1장 아름다움의 신화
우리는 페미니즘에 거세게 반발해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여성의 진보를 가로막는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환경에서, 아름다움의 신화 속에서 살고 있다. 이는 산업혁명 이래 엄존하는 현대판 사회적 반사작용이다. 여성이 가정이라는 여성의 신비에서 벗어나자, 아름다움의 신화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2장 일
서양에서는 제조업 기반이 전반적으로 붕괴되어 정보와 서비스 기술로 이동하면서 여성 고용이 촉진되었다. 전후에 출산율이 감소하고 그 결과 숙련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여성이 예비노동력으로 환영을 받았다. 쓰고 버릴 수 있고,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고, 힘들고 단조로운 일을 장시간 하는 핑크칼라 저임금 노동자로 말이다. 경제학자 마빈 해리스는 여성을 “읽고 쓸 줄 아는 유순한” 예비 노동자라며 “따라서 현대 서비스 산업이 토해낸 정보와 사람 다루는 일을 하기에 좋은 집단”이라고 했다. 이런 노동시장에서 고용주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노동자의 특성은 낮은 자존감과 반복적인 따분한 일에 대한 참을성, 포부의 결여, 높은 순응성, 자기 옆에서 일하는 여성보다 자기를 관리하는 남성을 더 존경하는 마음,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 부족이다. 더 높은 단계에 올라가도 여성 중간 관리자는 남성 같거나 유리 천장을 너무 세게 밀어 올리지 않는 한에서만 받아들여지고, 상층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여성도 여성으로서 물려받은 전통을 완전히 없애야 쓸모가 있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그런 노동력을 길러내는 최신 최상의 훈련 기법이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근무 시간에 이 모든 것을 하고, 여가 시간에 세 번째 근무까지 하도록 한다.
슈퍼우먼들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전문적으로 다루어야 할 의제에 “아름다움”을 가꾸는 만만찮은 노동을 추가해야 했다. 더구나 이 새로운 임무는 갈수록 엄격해졌다. 투자해야 할 돈과 기술, 솜씨의 양이 여성이 권력구조에 균열을 내기 전에는 자신을 전시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미인들에게나 기대한 수준 밑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여성이 전문적인 주부의 역할과 전문적인 직장인의 역할, 전문적인 미인의 역할까지 모두 해야 했다.

3장 문화
여성은 세상에 본받을 만한 역할모델이 거의 없어, 이를 영화와 화려한 잡지에서 찾는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을 배제하는 이런 양상은 고급문화에서 대중적 신화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널리 발견된다. “남성은 여성을 보고, 여성은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본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뿐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관계도 해친다.” 비평가 존 버거가 인용한 이 유명한 말은 서양 문화 전반에 해당되고, 지금은 그 양상이 어느 때보다도 심하다.

4장 종교
유예는 순종적인 숭배자가 필요한 종교의 튼튼한 기반이다. 그런 숭배자는 어떤 불의나 억압, 학대, 배고픔도 참고 견딘다.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보상받을 테니까. (중략)
그런데 이승에서 유예 상태에서 풀려날 길이 없는 여성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종교가 어떤 점에서는 옛날 종교보다 훨씬 어둡다. 옛날 신자들은 죽음이 해방과 목표의 달성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늘날의 신자들은 이승이나 내세에서 자유를 상상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우리의 삶은 끝없이 영원한 시험이고, 영원히 투쟁해야 할 유혹과 시련의 늪이다. “일단 몸무게가 빠지면,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 평생의 의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우리는 이승을 눈물의 계곡이라고 배운다. 그것은 삶의 의미도 손상시킨다. 가장 날씬하게 가장 주름 없이 죽는 여성이 이긴다.
<신약성서>에서 좋은 신부 들러리는 신랑을 위해 기름을 비축하고 나쁜 신부 들러리는 기름을 연료로 태운다. 여성은 아름다움을 위해 즐거움을 누리지 말고 비축해야 한다는 다그침을 받고, 거식증 환자들은 “정상” 체중 밑으로 어느 정도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어도 그 여지가 없어질까 봐 두렵다. 그래서 여성은 가게에서 사 온 미용제품과 돈, 음식, 보상을 비축해둔다.
(중략) 아름다움의 이식은 여성에게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친다. 자기 몸과 자기 삶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결코 사는 게 아니다. 그 결과 삶을 두려워하는 신경증이 도처에 있다.

5장 섹스
“아름다움”은 섹스와 관계가 없듯이 사랑과도 관계가 없다. 아름다움을 지녀도 그것이 여성에게 사랑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아름다움을 지녀야 사랑이 온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름다운 많은 여성이 남성에게 아주 냉소적일 정도로 “아름다움”이 사랑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중략) 한 개인에 고유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특정한 개인과 상관없는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의 필수 조건으로 만드는 신화에서는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사랑이 어디로 가지 않을까 하는 지옥 같은 의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 위스턴 휴 오든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뼈 속 깊이 타고나는” 것은 “보편적 사랑이 아니라 혼자 사랑받고 싶은” 갈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신화가 제안하는 “사랑”은 보편적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서 사랑받았듯(물론 운이 좋았다면) 사랑받고 싶다. 단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내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발가락 하나하나를 만져주고 팔다리 하나하나에 기쁨의 탄성을 지르던 때처럼. 어른이 되어도 우리는 낭만적 사랑이 비교하는 잣대에서 해방된 그런 사랑을 구한다. 지칠대로 지친 사람도 진정한 사랑의 눈에는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보일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아름답게 보여야”하는 탓에 여성은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6장 굶주림
그러나 여성이 뚱뚱한 것이 대중이 열정을 쏟는 주제가 되고 여성이 뚱뚱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신화 아래서는 여성의 몸이 우리 몸이 아니라 사회의 몸임을, 마른 것이 개인의 미학적 특징이 아니고 굶는 것이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것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마른 것에 문화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여성의 복종에 집착하는 것이다.

7장 폭력
여성이 아름다움에 필사적이면 나르시시즘이라고 조롱하지만, 사실 여성은 성의 핵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이다. 남성에게는 아무도 그것을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지 않는다. 남성은 육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나이가 들어도 성적 정체성이 유지된다. 남성은 시간이 바닥나고 있다는 메시지, 다시는 어루만져주지 않고 찬사를 보내지 않고 만족시켜주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똑 같은 방식으로 듣지 않는다. … “아름다움”을 위해 싸우는 많은 여성이 자신의 삶과 성적 사랑으로 가득한 삶을 위해 싸운다고 믿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곧 존재 가치를 잃는다는 위협이다. 고령자는 신화의 불평등한 본질을 보여준다. 늙은 남성은 세상을 움직이지만, 늙은 여성은 문화에서 지워진다.

8장 아름다움의 신화를 넘어서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뻔뻔해지자. 탐욕스러워지자. 쾌락을 추구하자. 고통을 피하자. 마음대로 입고 만지고 먹고 마시자. 다른 여성의 선택을 받아들이자. 우리가 원하는 섹스를 찾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섹스와 맹렬히 싸우자. 자신의 이상과 대의를 선택하자. 규칙을 깨부수고 바꾸어 우리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확고해지면, 그러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꾸미고 과시하고 한껏 즐기자. 감각의 정치학에서는 여성이 아름답다.

책을 다 읽으니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 5박 6일 간의 독일 캠프 일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기간동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사람들과 떠들고, 늦게 잤으며, 아주 많이 먹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방탕'해졌고 '타락'한 것이다. 독일에 가기 전 나의 생활과 비교하면 확실히 나빠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술과 담배를 일년 간 끊었었고, 일적인 관계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다. 어떠한 생산적인 활동(과제나 세미나 등)이 아닌 친밀함만을 위한 관계(친구들과의 만남)를 피했다. 그리고 오후 6시 이후에는 잘 먹지 않았고, 채소 위주의 식단과 매일 1200칼로리가 넘지 않도록 조절했다. 초콜렛이나 젤리 등 군것질은 일절 삼갔다. 매일 1만 5천보 이상 걸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공복에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요가를 했다. 이상적인 삶이다. 

이런 생활이 행복해서 그랬냐고 묻는 다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런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와중에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고칼로리의 음식들을 모아서 폭식을 하고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억지로 토한 뒤, 좌절감과 자괴감에 사로잡혀서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잠이 들면 깨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식으로 나는 152cm에 37kg이라는 저체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섭식장애를 더 심하게 겪고 있던 8월까지는 33kg이었다. 그 때에 비하면 4kg가 쪄서 요즘에는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33kg까지 빼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독일에 도착한 나는 '타락'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무기력하고 힘 없는 거식증에 걸린 소녀가 아니었다. 고칼로리의 소세지(심지어는 소스로 케찹을 엄청나게 부은!)와 돼지 고기, 소고기를 먹었고, 아침마다 조식으로 나오는 달달한 크로와상을 먹었다. 간식으로 초콜렛과 젤리도 빼놓지 않았다. 당연히 살은 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의 몸무게는 40kg을 찍었다. 2년 사이에 최대 몸무게다.   

그리고 나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다시 37kg으로 돌릴 것인가, 아니면 신경쓰지 않고 여행의 여운을 즐기며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름다움을 쫓을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햇빛이 보이는 세상에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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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로 읽는 세상
김일선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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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어떤 과목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국어 아니면 사회였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럴 것이다. 사실은 좋아한다기보다는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이었다. 그런데 드물게 '수학'이 가장 좋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대개 "답이 딱 정해져 있으니까 억울하지가 않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 말이 맞다. '가장' 적절한 보기를 찾으라면서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이 해놓고 헷갈리게 하는 국어 시험의 문제들과 달리, 수학 문제의 답은 정확히 딱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수학은 객관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학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글 한 문장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지만, 수학 공식은 그렇지 않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숫자를 이용하는 과목은 답이 하나다. 그러니까 사실은 수학이 아니라 숫자가 객관적이라고 해야 알맞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확실하게 (그리고 어쩌면 유일하게) 객관적인 것이 있다면 아마도 숫자일 것이다. 숫자에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차이'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용납되지도 안흔다. 숫자는 모호함이 없다는 면에서 언어의 다른 요소들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 26쪽

 작가가 말하듯 숫자도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이다. 다만,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소통을 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되는 수단이다. 숫자를 사용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세계의 법칙을 찾아내고 정의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이 생긴다. 

이렇게 객관적인 숫자를 사용해서 자연 세계를 표현한다면, 그 목적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거래'이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거래를 하기 위해서, 각각 거래하고자 하는 재화의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 바로 이 때, 단위가 생겨난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설명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단위인 도량형 단위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고정불변의 법칙같이 느껴지는 단위도 정답이 아닌 경우가 있다. 정의가 바뀌기도 하고, 때때로 잘못 사용하거나 문화마다 다르게 사용해서 실수가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물리학이 발달하면서 '지구 둘레의 4천만분의 1'이었던 1미터의 정의는 1960년에 '크립톤 86 원자가 방출하는 오렌지색-적색 범위의 빛의 진공에서의 파장의 165만 763.73배'로 바뀌었고, 1983년에 또 한 번 '빛이 진공에서 2억 9,979만 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하는 거리'로 변했다. 각 문화마다 사용하는 단위가 달라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1999년 나사NASA의 화성 기후 궤도선 추락 사고 같은 경우다. 이러한 특징은 단위도 결국은 '도구'라는 것을 시사한다. 

도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도구의 속성을 잘 알고, 사용 방법을 정확히 파악한 후,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내가 단위를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고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kg, 체중이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칼로리라는 단위가 아니라 %일 수도 있다. (...)
체중이 80kg인 사람과 50kg인 두 사람이 각각 몸무게를 4kg씩 감량하는 목표를 세웠다고 하자.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4kg은 체중이 80kg인 사람에게는 몸무게의 5%이고, 50kg인 사람에게는 8%이다. 당연이 똑같은 4kg이라도 몸무게가 50kg인 사람에게 훨씬 어려운 감량목표다. 이런 원리는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해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보통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할 때, '한 달에 1kg씩, 5kg을 줄이자' 같은 식으로 동일한 기간 동안 동일한 체중을 감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시간 동안에 실제로는 체중을 더 많이 줄여야 된다. 많은 경우에 다이어트가 처음엔 그럭저럭 잘 진행되는 것 같아도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점점 목표를 크게 잡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다이어트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다이어트의 성과를 kg이라는 무게의 단위로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만약 한 달에 몸무게 1% 줄이기, 혹은 2% 줄이기라는 식으로 목표를 잡는다면 다이어트 과정에 훨씬 덜 무리가 가고 결과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있다면 kg을 잠시 보조 위치로 밀어두고 %를 주로 사용해보면 어떨까?


나는 늘 다이어트를 하며 몸무게를 체크하면서도  체중을 재는 kg이라는 단위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를 생각하라는 현명하게 다이어트를 하기 위한 조언(?)이 매우 유익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알코올 도수 측정이나 카메라의 초점 거리 등을 예시로 들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이 단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읽을 수록 유용하고 친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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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 하룻밤의 지식여행 13
폴 코블리 지음, 조성택 외 옮김 / 김영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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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부터 기호학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다. 학교에서 열린 '시각 기호학' 같은 기호학 강의를 수강한 적은 있지만, 스스로 기호학 전반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세미나에 참여하기 전에 잠깐 읽을 수 있는 기호학 입문서를 찾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책들은 이름은 '입문'이지만 두께나 다루는 깊이는 입문용이라기보다는 한 학기 동안 교양 강좌에서 배워야 할 것 같은 개론서에 가까웠다. 나는 기호학 전반에 대해 개략적인 지식을 얻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짧고(길면 앞 부분만 읽다가 끝난다) 쉽게 쓰여진 책이 필요했다.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 35 <기호학>은 이런 나의 상황에 딱 맞는 책이었다. 말 그대로 하룻밤 만에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다. 기호학이라는 학문이 무엇인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에 있는 '더 읽기'에는 기호학의 개론서 두 권을 추천하고, 본문에서는 이름과 주요 사상 밖에 소개할 수 없었던 학자들의 책도 잘 정리해놨다. 덕분에 책을 읽다가 호기심이 생겼던 학자들에 대해 더 알아볼 수 있었고,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거론되는 학자들의 대표적인 책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사실 기호학 입문서를 찾는 와중에 우연히 발견했을 뿐, 김영사 서포터즈를 하면서도 김영사에서 이런 시리즈를 내놨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2001년부터 출판한 시리즈로 70년대 후반부터 출간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영국 아이콘 북스의 '입문하기'(Introducing) 시리즈를 의역한 것이라고 한다. '입문하기'(Introducing) 시리즈는 촘스키, 양자론, 수학, 진화심리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이슬람, 프로이트, 라캉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약 60권 정도 출판되었다고 한다. 

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다보면, 내용에 언급되는 학자나 사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있다. 학문은 서로 연계되어 있고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기회에 자세히 공부하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적 한계도 있고 옆 길로 빠질 우려도 있다. 그럴 때는 '짧고 가벼운' 책이 필요하다. 이 시리즈는 바로 그 때 볼 수 있는 책이다. 특히 내용의 진중함은 잃지 않으면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면서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좋은 시리즈다. 어떤 주제에 관하여 입문용 책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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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김봉현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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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장르의 책이기 때문이다. 힙합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실은 책이라니, 만약 서포터즈가 아니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책이다. 여담이기는 하지만 이런 부분이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가장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던 분야의 책을 읽게 하고, 세상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시 책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면, 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자가 진단부터 내렸다. 나는 힙합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힙합을 경험한 적이 있나? 내가 '힙알못(힙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가? 스스로는 힙합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진단을 내리려고 보니, 나는 모든 시즌은 아니더라도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를 즐겨 봤고,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에서 일리네어의 공연을 관람한 적도 있으며, 심지어는 노래방에 가서 랩을 한 적도 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본인은 힙합이나 랩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그만큼 힙합이라는 장르는 음악 뿐아니라 패션이나 라이프 스타일 등에서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주류가 되었다. 힙합이 주류라니, 뭔가 어색하지만 사실이다.

그렇다면 힙합 문화를 즐기면서도 왜 본인은 힙합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힙합이 너무 자연스럽게 대중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사람들이 힙합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힙합이나 래퍼라는 단어를 들으면 단정하지 않은 옷차림에 불량한 태도, 반항적인 행동 등이 연상된다. 힙합이 주류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힙합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이 남아 있다. 그래서 힙합을 즐기면서도 자신을 힙합과 연결시키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편견에서 벗어나려면 힙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봉현이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이 책은 힙합의 '본질'과 '진면목'을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인 김봉현은 힙합의 팬들이 화성에서 왔다면, 다른 사람들은 금성에서 왔다고 한다. 금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화성에서 온 힙합은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며 이해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금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화성에서 온 사람들의 음악인 힙합을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 하지만 나는 금성에서 왔든, 화성에서 왔든 이미 사람들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발 디딛고 살고 있는 이상, 저절로 섞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사는 이 행성에서 화성에서 온 힙합계인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해보자.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게 힙합이구나'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깬 구절들을 소개한다. 

44쪽
도끼_사람들이 힙합을 부정적인 음악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힙합은 모든 장르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음악이에요. 항상 희망을 심어주니까요. 
김봉현_비기 가사에도 나오잖아요. "내 삶은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가고 있어. 내 삶은 더 나아지고 있어."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방향성을 보는 거죠.

80쪽
더콰이엇_힙합 문화에는 '허슬'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그게 미덕이죠. 우리가 우리 일로 굉장히 빡세게 일해서 돈을 번 다음에 '나는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걸 얻을 자격이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되거든요. 이것도 제가 말씀드린 래퍼의 자신감 혹은 자존감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142쪽
팔로알토_무언가에 대해 길게 얘기하면 '설명충'이라고 하고, 진지하면 '진지충'이라고 하고. 이런 게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정서가 됐어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다 바보가 되고 있는 거예요. 래퍼들도 예술가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우리 모두가 'human being'이니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힙합도 당연히 마찬가지죠. 생각하는 것을 차단하고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어버리면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쾌락만을 좇으면 안 된다고 봐요. 나와 내 가족, 내 사람, 우리가 함께 살아갈 공동체가 행복하게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185쪽
제리케이_ (전략) 힙합을 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갖춰야 할 코드가 있거든요. 저는 그중에서도 'I don't give a fuck'이라는 코드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내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거고 나는 그 길을 갈 거라는 것. 그것을 일관되게 지키는 것. 
김봉현_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래퍼들이 취하는 '나는 신경 안 써. 걔네가 뭐라고 해도 관심 없어' 같은 태도를 유아적인 태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제리케이_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싫어서 '너희 뭐라고 하지마'라고 하는 건 멋있는 힙합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래퍼라면 자기가 말을 전하는 사람이고,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고, 음악 안에 그것을 담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했던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비판이 들어왔을 때 그 비판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지키는 떳떳함은 멋있지만 그냥 '몰라 몰라'하는 건 유아적인 게 맞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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