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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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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는 '작별'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경험이 없다. 나이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누군가가 나에게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작별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말하면 그건 의외라는 대답을 들을 정도의 적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자 집안의 첫째인데도 나는 아직 조부의 죽음조차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줄 말이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친구에게서 그 이튿날 보내진 '할머니가 돌아가셨대'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내고,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친구의 집에서 눈을 떴을 때, 그의 아버지가 할머니의 병원에 가느라 나보다 먼저 당신의 집을 나가셨기 때문에, 친구 할머니의 죽음이 갑자기 들이닥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작별을 생각하던 그 친구의 마음, 매일 출근하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나서는 매일 병원으로 출근하던 친구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세상과 작별을 준비했을 할머니의 마음을 나는 헤아릴 수가 없다. 


작별에 무지한 내가 비참했다.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어서 미안했다. 


그 때, 이 소설을 읽었다. 갑자기 눈사람이 되어버린 한 여자. 연세가 지긋하여 죽음을 앞둔 사람이든, 앞으로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든, 누구든 갑자기 눈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을 것이다. 연인을 잠시 만나고, 아이의 얼굴을 보고, 부모에게 전화를 하는 그 과정은 죽음을 준비하는 누구나의 모습일 것이다. 남의 일이라고 지켜보고 있으면 마음이 쓰려오고, 내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차오르는 과정, 그리고 내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간을 작가는 글자로 담아냈다. 그 글자들을 읽는 것이 슬픔을 이해하는 한 시도가 되었기를 바란다.


오늘 친구 할머니의 발인일이다. 

따뜻함에 녹아버린 눈사람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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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세븐틴
최형아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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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 우리가 불행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내가 이해하고 있는 대답 하나는, 그것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 침묵이고 어떻게든 변화하고 싶다는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 말이라면,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그저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잊어버려도 되는 체험 따윈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의 일부이다. 이 소설에 대한 말이지만, 요즈음 우리 사회에 대한 말이라고 해도 억지스럽지 않다. 요즈음의 한국은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MeToo은 2017년 10월 미국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게 된 해시태그를 다는 행동에서 시작된 해시태그 운동이다. 출처: 위키백과)'으로 뜨겁게 달궈져 있다. 그리고 작가의 말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대변한다. 한 개인의 체험은 우리 모두의 체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 윤영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성형외과 의사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어린 시절에 받은 성폭행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썩어 문드러진 상태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그것을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윤영은 자신의 성性과 사랑, 행복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야 현실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윤영과 같은 사람은 아주 많을 것이다. 이 불행은 윤영만의 체험이 아니다.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도 겪을 수 있고, 실제로 겪는 일이다. 그렇기에 외면과 침묵은 자신에 대한 벌이다. 미래의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삶을 벌 주는 것과 같다.

소설은 거칠게 전개 된다. 꼼꼼한 단서들이 연결되어 스릴감을 주거나 탄탄한 줄거리가 결말까지 숨차게 끌고 가는 글은 아니다. 듬성듬성 뚫려 있다. 그래서 그 뚫려 있는 부분을 자신의 경험과 상상으로 채워 읽기를 추천한다. 그러면 더 풍부한 의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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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 - 매일매일 소설 쓰고 앉아 있는 인생이라니
고연주 지음 / 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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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은 자신의 우울이 욕심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했고 나는 나의 우울이 결핍으로부터 온다고 말했는데 그 둘은 하나도 다르지가 않았다."

나는 책을 지저분하게 읽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고, 펜이 없을 때는 귀퉁이를 접어서라도 꼭 표시를 해 둔다. 아무리 (내 기준에서) 재미 없는 책을 읽더라도 마음을 쿵 치는 부분이 하나 정도는 있다. 

이 책은 내 마음을 여러 번 때렸다. 그런데 '내가 이 부분에서 공감을 했어'라고 밑줄을 치려고 할 때, 이상하게도 주변을 둘러 보며 눈치를 보게 되었다. 당연히 그럴리는 없지만, '혹시 내가 이 부분에 공감한 걸 남들이 보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람들은 내면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한다. 특히나 자신의 나약한 부분은 더욱 보여주기 어렵다. 얕잡아 보이거나 무시당할까봐 그런 것이 아니라, 내 감성적인 부분이나 연약한 정신을 알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겁이 나는 것이다. '저렇게 부정적인 사람이랑은 어울리기 싫어'라는 생각을 할까봐, 나의 우울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 어려운 일을 저자는 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고민, 그리고 감정을 아주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 제목부터 '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이다. 자신의 삶과 능력을 관조하는 시선과 냉소적인 말투, 그리고 자괴감과 우울. 이런 것들이 이 책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우울로부터 나는 위로를 받았다.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합리화하고, 아등바등 더 사랑해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에 너무나 공감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우울함과 나약함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며 위로를 받을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한다.

"그냥 고맙다고 하면 어쩐지 건방진 느낌이 든달까. 물론 나도 고깃집 사장님이 예쁘다고 하면 대충 고맙다고 하고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열과 성을 다해 대답을 하면, 배배 꼬는 거지. 못되게 말하기는, 훨씬 많은 마음이 필요한 일이다. 대화에 오롯이 집중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며 내가 치고 들어갈 적당한 지점도 봐야 하고 상대방의 관계나 분위기와 맥락까지 고려해서 적당한 걸 찾아야 한다고. 
마음을 많이 쓸수록 나는 내 생각과 내 생각이 싸우게도 하면서 내 생각이 내 생각을 의심하고 내가 나를 비꼬면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겠지. 둘 다 포기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가끔 그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피곤하다. 엄청 피곤해. 다만 이렇게 살지 않는 게 더 피곤하다. 이렇게 생겨 먹은걸. 
이런 지난한 과정을 함께해주는 내 곁의 사람들에게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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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마디를 행운에 맡기지 마라 - ‘대통령의 통역사’가 들려주는 품격 있는 소통의 기술
최정화 지음 / 리더스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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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국제회의 통역사로 역대 대통령 5인의 정상회담을 비롯한 국제회의들을 총괄 통역한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최정화 교수가 말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이렇게 책 소개를 듣다 보면 대단한 경력에 박수부터 나오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그의 경력과 책의 주제 사이의 상관성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국제회의 통역사라면 당연히 외국어를 잘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이나 유창하게 외국어 말하는 방법을 들려주는 게 맞지 않은가? 그런데 저자는 '소통의 기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경력에 속지 말자. 광고일 뿐이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그의 외국어 경력보다는 말에 대한 성찰의 결과다. '외국어 말하기의 기술'이 아니라 '소통'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러한 생각은 김수환 추기경과의 대화를 기록한 부분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추기경님은 몇 개 국어를 하시는지요?"
"음, 사실 세어본 적이 없는데 원한다면 같이 세어볼까요? 내가 한국인이니 한국어를 하고,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니 좋든 싫든 일본어를 하게 됐지요.
그러다가 영어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들어서 영어를 배웠고, 독일에서 공부를 했으니 독일어를 조금 합니다. 교황님을 뵈러 가야 하니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이탈리아와 독일을 오가다 보니 그 사이에 있는 프랑스어도 조금은 합니다. 아, 성서를 읽어야 하니 라틴어도 배웠네요. 합하면 모두 몇 가지나 되려나요?"
"우리말을 빼도 6개 국어나 되네요!"
이어진 추기경님의 대답이 놀라웠다.
"잠간, 몇 가지가 더 있어요. 믿음서 우러나오는 참말과 때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짓말, 또 작자기 속에만 놓아둔 '속엣말'이 있습니다. 사실 외국어를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속엣말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바깥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들으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언어를 배우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처음 던졌다. 통역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어를 비롯해 여러 외국어를 배웠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한 차원 높은 목적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은은 몰라도 언어를 업(業)으로 삼고 있고, 소통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응당 던졌어야 할 질문이 아닌가. 순간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내 자산이 언어라면, 그것을 여러 사람을 위해 널리 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이렇게 여러 차례의 국제 회의나 다양한 인사들의 통역을 담당하며 쌓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소통의 기술들을 책 속에서 아낌 없이 퍼준다. 

어릴 때는 빠르게 말하거나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유창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정신 못차리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을 잘한다고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인 통력(通力)은 사실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 저자가 말하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전달하며, 대화 상대에게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격을 갖춘 태도로 대하는 것. 이런 기본기를 쌓는 것이 소통의 기술이다.

소통에 관심이 있거나, 통역사로서 저자의 경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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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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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 와중에 편식까지 했다. 
소설보다는 비문학을 즐겨 읽었고, 문학에 흥미를 느낀 후에도 외국 소설을 더 많이 읽었다. 
한국 소설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현대 한국 소설은 거의 펴지도 않았다.

나에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로부터 도피였다.
그래서 현실감이 없는 먼 외국이거나 일본 소설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이 좋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한국 소설에서 느껴지는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테면 상실감, 처연함, 고통스러움 등) 특유의 정서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내가
한국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에 좋아했던 친구에게 선물 받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계기였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와 비슷한 감성을 느꼈다. 
그렇게 한국 소설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조금씩 친해져 갈 때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친구가 대신해서 반납해달라고 부탁해서 도서관까지 가져가는 길에 읽다가 끝까지 읽어버렸다.
실제 사건이나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를 꺼려오던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분노, 감동, 슬픔, 감사... 이루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몰려왔다. 

아무리 내가 현실이나 사회에서 도피하려고 해도 
결국은 세상 속에서 산다.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흘러가는 역사의 한 줄기에 있다.
그런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것이 문학이다. 

역사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소설은
감성을 그려내는 것들과는 다른 깊이와 무게로 다가온다.
'2017년 촛불'이라는 선명한 기억을 가지게 되면서
이제는 나도 그 책들의 무게를 감당해야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1987>과 김숨의 소설 <L의 운동화>가 떠올랐다. 
이 작품들이 이한열 열사
라는 특정 인물에 주목했다면,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는 그 시대를 산 평범한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수'라는 이름만큼이나 평범하고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삶은 무엇이 더 가치있다고 감히 평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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