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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1
조승연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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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골랐는가? '언어 천재'라는 말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아마 여러 방송을 통해 조승연이라는 사람을 아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독학으로 7개 국어를 배운 저자 조승연에게 언어 천재라는 별명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사실 나는 TV를 잘 보지 않아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조승연이라는 사람에 대해 몰랐다. 그래서 단순하게 책의 표지를 보고 '언어 천재'라는 단어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대에서 외국어 능력이 중시되면서 빠르면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느리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영어를 배우게 된다. 대부분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배우기 시작해서 (영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갖지 않는다면)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어에 시달릴 것이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중, 고등학교 때는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 제 2외국어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거의 20년을 외국어를 학습한다. 하지만 자신이 배우고 싶어서 즐겁게 배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필요하다니까 배우고, 외우라고 하니까 외우면서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저자는 "언어 공부가 취미"라고 말한다. 취미라고 하면 보통 영화 감상, 음악 듣기, 스포츠 등 즐거운 것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언어 공부가 즐거울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연극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연극에서 '세상은 무대고, 모든 사람은 캐릭터다', 즉 '인생은 드라마다'라는 대사를 반복했다. 셰익스피어의 히트작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라는 상인이 친구 그라티아노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세상일 뿐이야, 그라티아노.
모든 사람에게 배역이 있는 하나의 무대지.
그런데 나는 슬픈 역을 맡았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희곡 <뜻대로 하세요>의 대사처럼 사람들은 '세상은 무대이고, 사람들은 배우일 뿐이어서, 모두가 적당할 때 입장하고 퇴장한다'라고 믿게 되었고, 연극 캐릭터가 연기할 때 얼굴에 쓰는 가면을 뜻하던 'persona'라는 단어는 진짜 사람을 뜻하는 'person'과, 그 사람의 캐릭터, 즉 개성을 뜻하는 'personality'라는 단어로 발전했다.

언어는 사람 공부다. 사람들은 언어를 그냥 사용하지 않는다. 언어는 동물처럼 단순한 소리를 내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학습해서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적절하게 산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반드시 배경이라는 게 있다. 

저자가 '언어 천재'가 된 비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말의 배경을 알면 배우기가 즐거워지고 쉬워진다는 것이다. 보통은 단어장을 보며 무작정 암기한다. "person은 사람"을 반복해서 외운다. 그리고 "personality는 성격, 개성" 도 반복해가며 암기한다. 이렇게 무작정 반복해서 외우고, 단어 시험을 보고, 며칠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이런 학습은 재미도 없고 정말로 배움이 되지도 않는다. 반면에, person이 연극 캐릭터가 연기할 때 얼굴에 쓰는 가면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personality가 그 사람의 캐릭터를 말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는 배경을 알면 이 단어들은 안 잊어버리게 된다. 더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까지 알게 되니, 말그대로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는 것이다. 언어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 

우리가 언어를 공부하는 목적은 눈 앞의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 아니다. 언어의 목적은 소통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잊고 그저 암기에만 매진한다. 단순히 언어를 아는 게 아니라 쓸 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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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 공감 본능은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위해 진화하는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안재하 옮김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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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행동의 근원을 설명하고 싶어했다.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는 밑바탕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철학이 발달했고, 그로부터 다양한 학문들의 갈래가 생겨났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그렇게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고, 그것을 '동기'라고 부른다. 심리학의 목적은 인간 행동의 동기를 규명하고, 그로부터 미래에 어떤 행동을 할 지 예측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에는 인간의 '동기'를 두 가지 전제로 설명했다. 첫 번째 설명은 홉스의 "호모 호미니 루푸스(인간은 인간에게 늑대가 된다)"라는 격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이 탐욕적이고 경쟁적이라는 것이다. 끊임 없는 전쟁이 명백한 증거다. 두 번째 설명은 사회 다윈주의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른 진화론에 바탕을 둔 사회 다윈주의는 근대사회의 계급 불평등이나 빈부격차, 개인주의를 정당화했다. 좀 더 최근의 말로 바꾸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강력하게 말한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영장류 동물과 인간 사이의 유사점을 찾는 다양한 실험 연구를 진행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을 다시 검토했다. 그 결과, 인간에게는 이기적 본성이 있지만 행동은 '자율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이기적 본능 못지 않게 사회적 본성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프란스 드 발이 인간의 이기적임과 잔인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DNA는 보상을 얻기 위해 작동할 뿐 아니라 공감에 의해서도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저자의 입장은 <이기적 유전자>를 집필한 리처드 도킨스와의 만남에 대한 언급으로 대변된다.

자연이라는 책은 <성경>과 같다. 즉 인내에서 무자비함까지, 이타주의에서 탐욕까지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부여하며 읽는다. 그렇다 해도 알아두면 좋을 것은 생물학자들이 끊임없이 경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경쟁을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며, 생물학자들이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실제로 유전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이 성나거나 햇살이 다정할 수 없는 것처럼 유전자도 ‘이기적’일 수 없다. 유전자는 작은 DNA 덩어리일 뿐이다. 기껏해야 ‘자기를 내세우는’ 정도다. 왜냐하면 성공적인 유전자라면 자신의 운반체가 자신을 더 많이 복제해 퍼뜨리는 걸 돕기 때문이다.
스킬링은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이기적 유전자의 비유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 우리의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면 우리도 이기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도킨스가 의미한 바는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중략)
나는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말이 동물이나 인간의 실제 동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만 제대로 이해된다면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었고, 도킨스는 순수한 친절도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행동이 자기 운반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선택된 유전자에 의해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고 동의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진화를 이끄는 것과 실제 행동을 이끄는 것을 분리하는 데 동의한 것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가 가진 이 사회적 본성, 즉 '공감 능력'을 통해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한 다양한 사례 연구를 포함하고 있어서 책이 두꺼워졌지만,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하다. 맞다. 인간은 늑대같은 존재다. 하지만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 늑대다.

  아래에 첨부된 영상은 프란스 드 발의 TED 강연이다. 책이 두꺼워서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인간의 본성이 궁금하다면 단 16분 짜리 이 강연만 봐도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강연에서는 공정성, 공감, 유대 등의 감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는 실험 연구 영상도 볼 수 있는데, 몇 개는 보다가 웃음이 터질 정도로 재미있어서 꼭 추천한다.


https://youtu.be/GcJxRqTs5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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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대문 2 : 노장과 병법 편 - 잃어버린 참나를 찾는 동양철학의 본모습 고전의 대궐 짓기 프로젝트 2
박재희 지음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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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는 단어는 듣는 순간, 마음에 거북함이 생깁니다. 어려운 한자가 빼곡히 쓰인 두꺼운 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고전 뒤에 소설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그나마 좀 나아집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같은 소설은 도전에 성공해서 제 마음 속에 좋은 인상을 남긴 소설들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동양의 고전은 거북하기만 합니다. 특히 공자, 노자, 장자 등 동양 철학은 말이 나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게 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피할 수 만은 없습니다. '때가 되면 부딪쳐 봐야지'하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번이 그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저처럼 동양 철학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입문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동양 고전 철학의 대문과 같습니다.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대문을 열어야 합니다. 보기에는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안 할 것 같은 철문이지만, 실제로 밀어보니 의외로 쉽게 밀리는 문이었습니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어렵게 느끼던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새 빠져듭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상황에 대입하게 됩니다. 그런 힘을 가진 고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양한 시대에 그 시대의 요구에 맞춰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철학이나 사상이 보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보편성, 그것이 고전입니다. 잠깐 유행했다 사라지는 베스트셀러는 그런 보편성이 없기에 고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인간에 대한, 현실에 대한 보편성, 그것이 고전의 힘입니다.

  하지만 정작 글쓴 저자가 시대의 요구에 맞게 고전을 해석하지 않고 있다고 느낀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겠지만 이 구절을 읽다 보면 돌아가신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평생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오로지 자식을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내놓으신 어머니, 어디 제대로 여행 한번 가보지 못하고 인생을 바보처럼 사신 밥 퍼주던 그 어머니의 모습이 노자가 꿈꾸던 물처럼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노자는 그런 어머니 모습을 리더십으로 환원시킵니다. 간섭하고 강요하고 군림하는 리더가 아니라 밥 퍼주는 천하의 어머니가 진정 위대한 리더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겠지만이라고 저자는 독자의 공감을 구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젊은 독자들이 과연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글자 그대로 저자와 같은 시대를 공유한 우리들의 어머니의 모습’ 입니. 하지만 시대가 많이 변했고, 더 이상 어머니라는 단어가 희생의 이미지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물론 고전의 해석은 읽는 사람에게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노자의 <도덕경>을 밥 퍼주는 엄마의 리더십으로 비유하며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는 것은 실패했으며, 신간을 읽는 신선함도 반감시키는 구식의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전국시대는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공자나 노자, 장자와 같은 뛰어난 사상가들은 제각각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장자가 이야기하는 소요유逍遙遊의 삶입니다.

소요逍遙는 아무런 의도나 생각 없이 노니는 것입니다. (중략) 그러니까 소요유逍遙遊는 아무런 의도나 생각 없이 노닐 듯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이유나 목표를 정하게 됩니다. 이유가 타당하고 목표가 분명할 때 행동의 동기가 튼튼해집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와 목표는 나의 판단과 결정을 늘 긴장하게 합니다. (중략) 인생을 돌이켜볼 때 이런 의도 없는 삶이 바로 소요유의 삶입니다. 이런 삶은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근대 사회는 이유와 목적의 선명함을 강조하였고,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충분한 이유와 목표가 설정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에도, 사람을 만나는 동기에도, 여행을 가는 목표에도 무언가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했습니다. 인생에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사는 것은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뚜렷한 목표 의식이 나를 피로하게 하고, 나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나의 자유를 저당 잡히게 한다면 이제 그 목표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장자의 철학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높은 자리, 강한 권력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살고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끊임 없이 노력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거친 경주에 지친 사람들에게 성공한 카운셀러들은 "잠깐 쉬어가도 된다"고 위로해줍니다. 하지만 휴식이 끝나면 다시 뛰어야 합니다. 결국 목표가 있는 한 경주는 영원합니다. 장자에 따르면 우리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꾸로 매달린 나懸로부터의 해방解, 즉 현해懸解를 추구해야 합니다. 전도된 세상으로부터, 권력과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장자는 외로운 돼지, 고돈孤豚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의 자유를 지키며 살았습니다. 끝없는 경주와 목적주의에 질려버렸다면 장자의 충고에 귀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 

  사회의 기준이나 윤리로부터 벗어나서 노니듯 살다 간다. 얼마 전 템플 스테이를 다녀왔는데, 스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걱정과 고민을 내려 놓고 소풍 온 듯 살다 가라. 걱정과 고민의 원인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사회로부터 받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감이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은 소요유의 삶이 저의 마음 속 깊이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특히나 공감한 부분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쓸모없는 나무가 오래 산다는 무용지용의 이야기는 <장자>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중략) 결국 그 나무는 재목으로 쓰지 못할 나무였기 때문에 큰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 세상을 살아가면서 쓸모 있다는 것이 어쩌면 자신의 영혼을 팔거나 저당 잡혀야 얻을 수 있는 대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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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1
S. N. Goenka 지음, 윌리엄 하트 엮음, 담마코리아 옮김 / 김영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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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에 1년 간의 일본 교환학생 생활을 마쳤다. 일본은 거리 상 가까운 나라지만 타지에서 홀로 보낸 1년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자취를 하며 몸이 많이 부실해졌고, 덩달아 마음도 약해졌다. 한국에 돌아온 요즈음의 관심거리는 나 자신의 치유다. 나의 괴로움이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심리 상담은 물론 요가나 명상 등을 찾던 중 '위빳사나 명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직접 참여하기 전에 위빳사나 명상이 무엇인지 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료를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을 읽고 마음의 평화나 안정을 찾지는 못했다. 애초부터 책 한 권을 본다고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기대조차하지 않았다. 내면의 행복을 찾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던 것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이해되었다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추상적인 설교의 끝에 분명한 길을 제시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내면의 평화를 원한다면 걷기를 시도할 가치가 있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상을 과학적이지 않고, 심지어는 마음이 약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특히 심리학을 전공으로 배우면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심리학과 종교나 명상의 차이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이론을 세우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다.

우리는 실제로 감각에 반응하고 있을 때, 스스로 외부의 현실을 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감각은 우리의 지각에 의해 조건화 되고, 우리의 반응에 의해 조건화된 것입니다.


  사용하는 단어는 다르지만 학교 심리학 전공 수업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같다. 물론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다. 그리고 악의적으로 이용될 위험성도 있다. 하지만, 마음에 병이 있어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과학적인 증명'이 없어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몸의 모든 입자, 마음의 모든 과정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순간 이상 남아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고,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고정불변의 그 어떤 것도 없으며, ‘나’ 또는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이 ‘나’는 실제로는 그저 항상 변하고 있는 과정의 복합체입니다.
   그러므로 명상가들은 또 다른 기본적인 실제인 아낫따, 즉 진정한 ‘나’라는 것은 없으며 영원한 자아나 에고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헌신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아는 계속 변화하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과정들의 복합체로 이루어진 일종의 환상입니다. 몸과 마음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탐구하면, 절대불변하는 응어리나 변화를 겪지 않는 본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무상의 법칙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변화하는 일반적인 현상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실제가 명확해집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무엇인가에 매달리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만간 매달렸던 그 무엇인가가 사라지거나 이 ‘나’란 것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책의 원제는 <The Art of Living: Vipassana Meditation: As Taught>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책의 제목인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보다 원제가 더 책의 내용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그대로 이 책은 생각으로 행하는 삶의 기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깊은 것은 영원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은 항상 변하고 있는 과정의 복합체라고 말한다. 항상 변화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완성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가르침이라고 느껴졌다. 우리의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처럼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한 계속된다. 이렇게 끝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괴로움의 시작이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끝이 없다는 것이 희망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고, 살아가면서 이런 어려움들이 또 반복될 것이라면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모든 것이 변화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 수행을 한다면 평화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생겼다. 

  앞이 캄캄하게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봤자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많은 손길들을 뿌리쳤다. 이기적인 줄 알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희미하더라도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희망의 길이다. 길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내가 걷게 될 길이 어떤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은 것은 그 길을 찾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각자가 섬이 되어라. 자신을 안식처로 삼아라. 진리를 섬으로 삼고, 진리를 안식처로 삼아라. 그 외에는 어떤 곳도 안식처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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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역실록 - 12개의 반역 사건으로 읽는 새로운 조선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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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조선왕조실록’, ‘역사 붐’, ‘역사 덕후’, ‘역사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등 나와는 거리가 먼 말들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역사 무식자다. 의무교육으로 국사를 배웠지만 역사 자체에 흥미가 없어서 억지로 암기해서 시험을 봤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역사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요즘은 취준생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공부한다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해 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을 읽는 것은 도전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나의 리뷰가 도움이 되는 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창피해서 말은 못하지만 역사에 대해 지식도 관심도 없는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 테니까.

  나는 독서를 할 때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책일수록 머리말과 목차를 꼼꼼히 읽는다. 그러면 접근하기가 조금 수월해진다. 어려운 상대일수록 탐색전이 긴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도 머리말과 목차를 꼼꼼히 읽었다. 이 책의 목차는 이렇다.

1. 고려의 마지막 역적이성계

2. 아비의 역적이 되어 용상을 차지한 이방원 

3. 이성계 복위 전쟁에 나선 조사의

4. 역적으로 몰려 죽은 태종의 처남들 

5. 영문도 모르고 역적으로 몰려 죽은 심온 

6.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7. 6진을 기반으로 조선을 차지하려 했던 이시애

8. 역적의 오명을 쓰고 죽은 남이 

9. 시대를 잘못 만난 재사 정여립 

10. 자기 꾀에 걸려 역적으로 죽은 허균

11. 천하를 삼일 동안 호령했던 이괄

12. 경종의 복수를 위해 반역한 이인좌와 소론 강경파

  1장의 이성계는 조선 건국의 이야기이니 아무리 역알못(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라도도 대강의 이야기는 알고 있다. 그리고 2장 이방원의 이야기와 6장의 수양대군도 꽤나 익숙하다. 특히 이방원은 드라마 <대왕세종>으로, 수양대군은 <공주의 남자>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은 아예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거나, 들어본 적은 있지만 반역이라는 키워드와는 매치가 되지 않는다.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던 허균이 반역실록에 실린 것은 나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탐색전을 끝내고 본문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역시나 사용하는 단어 자체가 어려운 것이 많기도 하고 에세이나 소설에 비해 문체도 딱딱했다. 그리고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이해를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서술 방식이 익숙해지고, 안에 있는 진짜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9장의 정여립 사건과 10장의 허균 이야기에서는 너무나 재미 있고 흥미진진해서 사극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에는 간략하게 저자의 생각을 서술하며 끝을 맺는데, 이것이 과하지 않고 적당하다.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밀어 붙이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아니다. 다음이 9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렇듯 정여립 사건은 동인 정권이 밀려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 까닭에 이 사건을 서인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황해도에서 정여립의 반역을 고변한 사람들 대다소가 서인 세력이고, 황해도에 율곡의 제자가 많았기 때문에 서인들에 의한 조작설을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는 듯하다. 또한 정여립이 어리석지 않았다면 스스로 왕이 된다거나 전주에서 왕이 난다는 말을 고의로 퍼뜨렸다는 기록들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여립이 반역자로 몰린 배경엔 스스로 그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대동계를 조직하고, 스스로 그 수장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역도로 의심받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왕조 국가에서는 왕이나 관리가 아닌 자가 세력을 형성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의 형제들이나 주변의 지인들까지 그가 반역을 꾀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으니, 정적들이 그를 역적으로 몰아가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지식과 신분을 따지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을 기반으로 대동계와 같은 자생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기반으로 관군조차 제대로 물리치지 못하던 왜구를 막아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백성들에겐 영웅적인 인물이었던 셈인데, 시대를 잘못 만난 까닭에 영웅이 아닌 역도로 몰려 비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반역이라는 사건을 통해 접근하면서 그저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조선 역사를 잘 모르는 나에게도 술술 읽혔으니,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 쉽게 읽힐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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