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로 읽는 세상
김일선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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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어떤 과목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국어 아니면 사회였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럴 것이다. 사실은 좋아한다기보다는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이었다. 그런데 드물게 '수학'이 가장 좋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대개 "답이 딱 정해져 있으니까 억울하지가 않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 말이 맞다. '가장' 적절한 보기를 찾으라면서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이 해놓고 헷갈리게 하는 국어 시험의 문제들과 달리, 수학 문제의 답은 정확히 딱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수학은 객관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학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글 한 문장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지만, 수학 공식은 그렇지 않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숫자를 이용하는 과목은 답이 하나다. 그러니까 사실은 수학이 아니라 숫자가 객관적이라고 해야 알맞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확실하게 (그리고 어쩌면 유일하게) 객관적인 것이 있다면 아마도 숫자일 것이다. 숫자에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차이'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용납되지도 안흔다. 숫자는 모호함이 없다는 면에서 언어의 다른 요소들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 26쪽

 작가가 말하듯 숫자도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이다. 다만,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소통을 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되는 수단이다. 숫자를 사용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세계의 법칙을 찾아내고 정의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이 생긴다. 

이렇게 객관적인 숫자를 사용해서 자연 세계를 표현한다면, 그 목적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거래'이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거래를 하기 위해서, 각각 거래하고자 하는 재화의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 바로 이 때, 단위가 생겨난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설명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단위인 도량형 단위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고정불변의 법칙같이 느껴지는 단위도 정답이 아닌 경우가 있다. 정의가 바뀌기도 하고, 때때로 잘못 사용하거나 문화마다 다르게 사용해서 실수가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물리학이 발달하면서 '지구 둘레의 4천만분의 1'이었던 1미터의 정의는 1960년에 '크립톤 86 원자가 방출하는 오렌지색-적색 범위의 빛의 진공에서의 파장의 165만 763.73배'로 바뀌었고, 1983년에 또 한 번 '빛이 진공에서 2억 9,979만 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하는 거리'로 변했다. 각 문화마다 사용하는 단위가 달라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1999년 나사NASA의 화성 기후 궤도선 추락 사고 같은 경우다. 이러한 특징은 단위도 결국은 '도구'라는 것을 시사한다. 

도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도구의 속성을 잘 알고, 사용 방법을 정확히 파악한 후,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내가 단위를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고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kg, 체중이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칼로리라는 단위가 아니라 %일 수도 있다. (...)
체중이 80kg인 사람과 50kg인 두 사람이 각각 몸무게를 4kg씩 감량하는 목표를 세웠다고 하자.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4kg은 체중이 80kg인 사람에게는 몸무게의 5%이고, 50kg인 사람에게는 8%이다. 당연이 똑같은 4kg이라도 몸무게가 50kg인 사람에게 훨씬 어려운 감량목표다. 이런 원리는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해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보통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할 때, '한 달에 1kg씩, 5kg을 줄이자' 같은 식으로 동일한 기간 동안 동일한 체중을 감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시간 동안에 실제로는 체중을 더 많이 줄여야 된다. 많은 경우에 다이어트가 처음엔 그럭저럭 잘 진행되는 것 같아도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점점 목표를 크게 잡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다이어트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다이어트의 성과를 kg이라는 무게의 단위로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만약 한 달에 몸무게 1% 줄이기, 혹은 2% 줄이기라는 식으로 목표를 잡는다면 다이어트 과정에 훨씬 덜 무리가 가고 결과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있다면 kg을 잠시 보조 위치로 밀어두고 %를 주로 사용해보면 어떨까?


나는 늘 다이어트를 하며 몸무게를 체크하면서도  체중을 재는 kg이라는 단위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를 생각하라는 현명하게 다이어트를 하기 위한 조언(?)이 매우 유익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알코올 도수 측정이나 카메라의 초점 거리 등을 예시로 들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이 단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읽을 수록 유용하고 친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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