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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김봉현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장르의 책이기 때문이다. 힙합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실은 책이라니, 만약 서포터즈가 아니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책이다. 여담이기는 하지만 이런 부분이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가장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던 분야의 책을 읽게 하고, 세상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시 책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면, 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자가 진단부터 내렸다. 나는 힙합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힙합을 경험한 적이 있나? 내가 '힙알못(힙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가? 스스로는 힙합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진단을 내리려고 보니, 나는 모든 시즌은 아니더라도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를 즐겨 봤고,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에서 일리네어의 공연을 관람한 적도 있으며, 심지어는 노래방에 가서 랩을 한 적도 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본인은 힙합이나 랩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그만큼 힙합이라는 장르는 음악 뿐아니라 패션이나 라이프 스타일 등에서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주류가 되었다. 힙합이 주류라니, 뭔가 어색하지만 사실이다.
그렇다면 힙합 문화를 즐기면서도 왜 본인은 힙합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힙합이 너무 자연스럽게 대중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사람들이 힙합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힙합이나 래퍼라는 단어를 들으면 단정하지 않은 옷차림에 불량한 태도, 반항적인 행동 등이 연상된다. 힙합이 주류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힙합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이 남아 있다. 그래서 힙합을 즐기면서도 자신을 힙합과 연결시키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편견에서 벗어나려면 힙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봉현이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이 책은 힙합의 '본질'과 '진면목'을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인 김봉현은 힙합의 팬들이 화성에서 왔다면, 다른 사람들은 금성에서 왔다고 한다. 금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화성에서 온 힙합은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며 이해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금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화성에서 온 사람들의 음악인 힙합을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 하지만 나는 금성에서 왔든, 화성에서 왔든 이미 사람들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발 디딛고 살고 있는 이상, 저절로 섞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사는 이 행성에서 화성에서 온 힙합계인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해보자.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게 힙합이구나'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깬 구절들을 소개한다.
44쪽
도끼_사람들이 힙합을 부정적인 음악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힙합은 모든 장르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음악이에요. 항상 희망을 심어주니까요.
김봉현_비기 가사에도 나오잖아요. "내 삶은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가고 있어. 내 삶은 더 나아지고 있어."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방향성을 보는 거죠.
80쪽
더콰이엇_힙합 문화에는 '허슬'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그게 미덕이죠. 우리가 우리 일로 굉장히 빡세게 일해서 돈을 번 다음에 '나는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걸 얻을 자격이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되거든요. 이것도 제가 말씀드린 래퍼의 자신감 혹은 자존감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142쪽
팔로알토_무언가에 대해 길게 얘기하면 '설명충'이라고 하고, 진지하면 '진지충'이라고 하고. 이런 게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정서가 됐어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다 바보가 되고 있는 거예요. 래퍼들도 예술가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우리 모두가 'human being'이니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힙합도 당연히 마찬가지죠. 생각하는 것을 차단하고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어버리면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쾌락만을 좇으면 안 된다고 봐요. 나와 내 가족, 내 사람, 우리가 함께 살아갈 공동체가 행복하게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185쪽
제리케이_ (전략) 힙합을 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갖춰야 할 코드가 있거든요. 저는 그중에서도 'I don't give a fuck'이라는 코드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내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거고 나는 그 길을 갈 거라는 것. 그것을 일관되게 지키는 것.
김봉현_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래퍼들이 취하는 '나는 신경 안 써. 걔네가 뭐라고 해도 관심 없어' 같은 태도를 유아적인 태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제리케이_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싫어서 '너희 뭐라고 하지마'라고 하는 건 멋있는 힙합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래퍼라면 자기가 말을 전하는 사람이고,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고, 음악 안에 그것을 담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했던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비판이 들어왔을 때 그 비판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지키는 떳떳함은 멋있지만 그냥 '몰라 몰라'하는 건 유아적인 게 맞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