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역실록 - 12개의 반역 사건으로 읽는 새로운 조선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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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조선왕조실록’, ‘역사 붐’, ‘역사 덕후’, ‘역사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등 나와는 거리가 먼 말들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역사 무식자다. 의무교육으로 국사를 배웠지만 역사 자체에 흥미가 없어서 억지로 암기해서 시험을 봤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역사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요즘은 취준생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공부한다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해 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을 읽는 것은 도전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나의 리뷰가 도움이 되는 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창피해서 말은 못하지만 역사에 대해 지식도 관심도 없는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 테니까.

  나는 독서를 할 때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책일수록 머리말과 목차를 꼼꼼히 읽는다. 그러면 접근하기가 조금 수월해진다. 어려운 상대일수록 탐색전이 긴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도 머리말과 목차를 꼼꼼히 읽었다. 이 책의 목차는 이렇다.

1. 고려의 마지막 역적이성계

2. 아비의 역적이 되어 용상을 차지한 이방원 

3. 이성계 복위 전쟁에 나선 조사의

4. 역적으로 몰려 죽은 태종의 처남들 

5. 영문도 모르고 역적으로 몰려 죽은 심온 

6.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7. 6진을 기반으로 조선을 차지하려 했던 이시애

8. 역적의 오명을 쓰고 죽은 남이 

9. 시대를 잘못 만난 재사 정여립 

10. 자기 꾀에 걸려 역적으로 죽은 허균

11. 천하를 삼일 동안 호령했던 이괄

12. 경종의 복수를 위해 반역한 이인좌와 소론 강경파

  1장의 이성계는 조선 건국의 이야기이니 아무리 역알못(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라도도 대강의 이야기는 알고 있다. 그리고 2장 이방원의 이야기와 6장의 수양대군도 꽤나 익숙하다. 특히 이방원은 드라마 <대왕세종>으로, 수양대군은 <공주의 남자>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은 아예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거나, 들어본 적은 있지만 반역이라는 키워드와는 매치가 되지 않는다.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던 허균이 반역실록에 실린 것은 나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탐색전을 끝내고 본문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역시나 사용하는 단어 자체가 어려운 것이 많기도 하고 에세이나 소설에 비해 문체도 딱딱했다. 그리고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이해를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서술 방식이 익숙해지고, 안에 있는 진짜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9장의 정여립 사건과 10장의 허균 이야기에서는 너무나 재미 있고 흥미진진해서 사극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에는 간략하게 저자의 생각을 서술하며 끝을 맺는데, 이것이 과하지 않고 적당하다.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밀어 붙이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아니다. 다음이 9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렇듯 정여립 사건은 동인 정권이 밀려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 까닭에 이 사건을 서인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황해도에서 정여립의 반역을 고변한 사람들 대다소가 서인 세력이고, 황해도에 율곡의 제자가 많았기 때문에 서인들에 의한 조작설을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는 듯하다. 또한 정여립이 어리석지 않았다면 스스로 왕이 된다거나 전주에서 왕이 난다는 말을 고의로 퍼뜨렸다는 기록들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여립이 반역자로 몰린 배경엔 스스로 그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대동계를 조직하고, 스스로 그 수장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역도로 의심받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왕조 국가에서는 왕이나 관리가 아닌 자가 세력을 형성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의 형제들이나 주변의 지인들까지 그가 반역을 꾀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으니, 정적들이 그를 역적으로 몰아가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지식과 신분을 따지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을 기반으로 대동계와 같은 자생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기반으로 관군조차 제대로 물리치지 못하던 왜구를 막아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백성들에겐 영웅적인 인물이었던 셈인데, 시대를 잘못 만난 까닭에 영웅이 아닌 역도로 몰려 비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반역이라는 사건을 통해 접근하면서 그저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조선 역사를 잘 모르는 나에게도 술술 읽혔으니,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 쉽게 읽힐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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