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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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 좋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에, 마키, 아키코, 유카 네 명의 소녀가 있었다. 같이 어울린다고 하기에 그녀들은 너무 제각각인 존재였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퍼즐조각들처럼 용케도 잘 맞아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조각이 등장한다. 동경에서 온 에미리.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에미리를 네 명의 소녀는 자신들의 영역으로 받아들인다. 8월 14일. 오봉이라 한적한 학교에 모인 다섯 소녀들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일을 도와주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노라며 다섯 소녀 중 에미리를 데려간 남자. 하지만, 저녁이 되도록 에미리도, 남자도 돌아오지 않는다. 남겨진 것은 싸늘한 에미리의 주검. 그리고 그렇게 남은 소녀들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흔히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에 대한 목격자나 최초 발견자를 찾는다. 많은 추리소설들 속에서 최초 발견자는 제 1순위의 용의자가 된다. 에미리의 주검을 발견한 최초 목격자인 네 소녀는 결코 용의자가 아니다. 에미리를 데려간 그 남자로 용의자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네 소녀가 목격자이자 사건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녀들은 너무 어렸고 약했다. 고작 열 살의 그녀들에게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이라는 것은, 더군다나 자신이 죽음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발견 된 친구의 주검은 너무나도 깊고 날카로운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상처는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잡아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버린 것이다.

 

 네 소녀에게는 사건에 대한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았다. 왜 그녀들의 상처는 깊은 흉터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긍정적이지 못한 일은 꼭꼭 숨기고자 하는 인간의 부정에 대한 피해의식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어느 사람의 외침처럼 큰 발산이 필요했다. 하지만 소녀들은 그저 꾹꾹 눌러담을 뿐이었다. 곪을대로 곪아버린 상처가 뿌리 깊은 흉터가 되어 결국 최악의 결과들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왜 소녀들의 가족은 그 상처를 치유해 주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했던 것일까. 같은 죄의식을 가진 소녀들끼리의 교류는 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부정은 긍정의 10배가 넘는 증식력을 가진 존재이다. 특히 개인의 머릿속에 자리한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위대하게 증식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에미리의 엄마인 아사코가 있다. 사에가 아사코에게 쓰는 편지로 이야기는 시작되며 다른 소녀들의 이야기에서도 아사코가 등장한다. 사건이 한참 지나고 나서, 아사코는 소녀들에게 '살인자'라는 가명을 씌워버린다. 이미  그녀들의 죄의식은 속으로 점점 뻗어들어가 단순한 목격이 살인의 원인화 되어가고 있었던 것에 기름을 부어버린 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어진 기름은 네 소녀들 각자의 성격과 특성을 따라 자유롭게 불타오르고 시꺼먼 잿더미만 남게 했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발언의 자유를 더욱 강조하면서도 진짜 속내는, 진짜 진실은 선뜻 내보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스트레스가 병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요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큼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속죄에 등장하는 네 소녀들은 자의적으로 만들어 낸 각각 다른 성향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개성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대표적인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작은 실수는 그저 실수일 뿐이며, 잘못은 순간의 잘못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것을 제외하고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 될 실수란 것이 존재할까. 그런 실수에 대한 속죄의 정도는 무엇일까. 미안하다는 사과의 한 마디? 적절한 보상? 속죄의 기준은 없다. 굳이 기준이 있다면 속죄를 하는 사람의 마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이상, 그걸로 속죄는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말을 하는 것,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가장 쉬운 속죄이며, 가장 쉬운 용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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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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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두 번씩 매일 고민하게 되는 것이 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까. 빠듯하여 시간 없는 아침은 자연스레 넘겨버리고 나니 남아있는 두 번의 식사는 늘 고민거리이다. 간혹 선택이 조금 나와 맞지 않았다거나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나는 몇 번 깨작거리다 이내 수저를 놓아버린다. 조금 더 일찍 내가 이 책을 접했다면, 나와 조금 맞지 않는 음식을 앞에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푸념을 늘어놓았을 수 있었을까. 이 세상에는 나처럼 무엇을 먹을까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먹을 수 있을까라는 절망을 말하는 사람이 엄청나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책의 제목을 접하고 처음 드는 생각은 책의 제목이 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절반이나 굶주린다고?' 라며 먼저 제목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세계 인구의 두 배인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면서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간다고 한다.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먹지 못했다는 이유가 사인이 되어 목숨을 잃어가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왜? 라는 의문사에 선뜻 대답을 내리기에는 이 책 한 권도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이유들이 자리잡고 있다.

 

 기아라는 단어를 접하면 가장 먼저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한 소년처럼 아프리카의 비쩍 마른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유난히 크고 맑은 눈을 가진 그들이지만, 먹지 못한다는 현실은 그 눈마저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가. 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일차원적으로 그 쪽은 사막이고 물이 부족해서 농사를 짓지 못하니까-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단지 그 것이 그들이 굶주리는 이유의 전부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을 뛰어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순기능으로 그들은 충분히 개간이나 무역의 형태로 자신들의 식량을 구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을 지배하는 인간의 욕심이다. 서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라는 한 나라는 사막이라는 최악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욕심을 버린 대통령 상카라의 노력으로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많은 것을 찾아갈 수 있었다. 국가 예산의 70% 이상을 공무원의 월급으로 쓰는 이상한 재정을 고치고, 주민자치를 통해 실제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우선시한 사업을 전개하며, 인두세를 폐지하는 등의 노력으로 단 4년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국의 지배자들은 부르키나파소의 발전을 시샘하였고, 그를 따라 발전하는 대신, 지배층의 이권만을 누릴 수 있게 상카라를 살해하여 희망을 잠재워 버렸다. 사막의 나라가 보여준 식량 자급자족의 희망이 몇몇 지배자의 탐욕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건 기아라는 최악의 상황이 타인에게 수단이 되고, 때로는 무기가 된다는 것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선진국들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속에서 자국의 목소리를 조금 더 크게 내고자 하는 노력으로 그들 역시 기아를 이용하고 있다. 가진 자에 의해 가지지 못한 자가 철저히 이용당하는 현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들어왔던 것이지만, 가지지 못한 자의 목숨, 그것도 수 억 명의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구호 단체들의 활동은 늘 긍정적이며 선의의 것이라 여겨져 왔다. 하지만, 결코 그들의 활동도 기아에게 있어 100%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흔히 구호활동이라 여겨져 왔던 비행기나 헬기에서 음식을 떨어뜨리는 장면도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으며, 구호 단체가 가진 자원이 충분치 않기에 그들 역시 수많은 기아 속에서 선별작업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선택받은 자만이 구호 활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그마저도 오랜 굶주림으로 갑작스런 음식이나 약이 입에 맞지 않아 더한 고통을 겪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고통을 덜고자 적지 않은 구호 단체들의 손길이 향하고 있지만, 그 손길이 그들의 고통을 지워낼 수는 없다. 상처를 마냥 반창고로 덮어버린다고 해서 완전한 쾌유라 칭할 수 없듯이, 보다 더 본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본질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을 강구하기에 인간은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책의 서두부터 나를 당황케 했던 것은 기아를 자연도태설의 일부로 보아 그들의 죽음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특히나 성직자라는, 모든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는 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자체가 충격이었다. 사람의 목숨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흔히 말한다. 그런 수 십억의 절대적인 가치를 자연의 일부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도 주장하는 그런 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설을 통해 지금 타인의 고통을 나몰라라 하며 자기 위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만약, 자신들이 그 수 억명의 일부였다면, 과연 그런 설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을까?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지만 좀처럼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고작해야 오늘 저녁 식사를 남기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나, 구호 단체에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는 후원을 하는 것, 그리고 종종 그들이 한 끼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작은 기도를 올리는 것. 그 정도일까. 사람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사람이 참 무섭다. 그들의 욕심이 무섭다. 적어도 나는 무서운 욕심을 가진 어른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 저 편에서 약간의 식량이 지독한 행복이 될 수 있는 그들을 늘 마음 속에 담아두고, 내 욕심을 조금씩 비워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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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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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반. 평범... 보통의 존재라는 제목을 앞에 두니 많은 단어가 떠오른다. 그리고 곰곰이 그 단어들의 뜻을 생각해 본다. '특별하거나 드물거나 하지 않고 예사로움'이 '보통'의 정의란다. 특별하거나 드물거나 하지 않음. 예사로움이란 무엇일까? 흔히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막상 정의를 내리려고 하니 쉽지 않다. 저자인 이석원씨는 이 책 내용에 대해 보통사람의 보통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한 번의 이혼 경력과 대장염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그는 대한민국의 가수. 즉 연예인이라는 보통이지 않은 직업을 가졌다. 과연 그가 말하는 보통이 내가 생각하는 보통과 같을 수 있을까?

 

 총 4장으로 구성되어있고 그의 많은 생각과 느낌, 상황들이 조심스레 설명되어 있는 책이다. 유난히 얇은 표지가 더욱 조심스러운 것 처럼 그의 이야기에 조금 더 조심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많은 분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릴 적의 추억, 연애와 결혼이야기, 가수로서의 그의 모습, 궤양성대장염이라는 병을 지닌 그의 생활, 자식으로서의 모습, 동생으로 때로는 삼촌으로서의 모습, 친구로서의 모습,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모습. 40대의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몸이 약하고 조금은 예민한 한 남성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조건을 가진 저자의 이야기를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내가 독자가 되어 읽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빠져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굉장히 솔직하다. 반창고 속에 가려진 상처를 관찰하는 듯 한 괜시리 미안한 느낌도 들었고, 그의 절친이라도 된 듯한 느낌으로 그의 속 깊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갸우뚱했던 <보통의 존재>라는 타이틀에 점차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무한한 공감. 이야기 하나 하나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다른 입장일지라도 그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는 2010년의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고, 나 또한 2010년의 한국의 공기를 마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보통의 존재>를 쓴 보통 사람같지 않은 그도,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닌데-라고 생각한 나 자신도, 모두가 보통의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그래서 좋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은 다 그런 것이다. 조금 고개를 갸우뚱한 그의 몇몇 이야기도, 내가 10여년이 지나 그의 나이가 되면, 아- 그랬구나- 하고 공감할 수 있으리라.

 

 또 다른 의미로 그와 나, 그리고 독자들이 보통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보통이 아님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개인인 것이다. 아무리 같은 쌍둥이라도 고유한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며, 아무리 같은 환경 속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라도 모두가 동일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에 모두가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개성을 지닌 보통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혼자서 멍하게 보낼 뻔했던 시간을 이 책과 함께할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문체와 가끔 보이는 오자도 <보통의 존재>이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사람 냄새가 짙게 났던 책. 그렇게 정의하며 이만 주절거림을 접어야겠다. 아, 그런데, 노란색이 그에게 있어 '멸망의 색깔'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노란색 옷을 입지 않기로 했다는 그가, 왜 책 표지는 샛노란색으로 정한 것일까? 어머니의 믿음이 틀리기라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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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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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스트셀러를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 말, 한창 한비야언니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 이유로 선택하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 생일, 친구에게서 <그건, 사랑이었네>를 선물받았다. 번번히 책읽기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그 책을 가만 앉아있어도 땀이 맺히는 오늘, 잠시의 수다를 떤 듯한 느낌으로 전부 읽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였던 것인가에 대해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녀의 웃음을 앞에 두고 함께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밝고 활기찼으며 아름다웠던 이야기들이 가득한 에세이였다. 처음부터 '난 내가 마음에 들어.'라고 그녀는 말했다. 당연히 내가 한비야였어도 내 자신을 사랑했겠다- 라고 생각하며 페이지를 하나 둘 넘겨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떤 '나'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창 자괴감에 빠져있던 내게 그녀의 자기 사랑은 나를 자극시켰다. 나 자신조차 좀처럼 자신있게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그녀로 인해 조금은 보듬어주고 사랑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활짝 피지 못한 채 움츠러있는 꽃이지만, 아직 개화시기가 아닐 뿐이라고... 내 자신이 개화할 날이 곧 다가올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내 자신은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조금은 얻어갈 수 있었다.

 

 <책, 세상을 훔치다>에서 이미 그녀의 책사랑에 대해 접한 바 있었다.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그저 구차한 변명일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녀의 책 이야기는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어오고 있었다. 책을 읽는 그녀를 보고 시험준비를 위한 것이냐고 묻는 한 아이처럼, 어쩌면 나도 책읽기에 반강제성을 띄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점차 쌓여가는 독서리스트를 보며, 서점에 가서 내가 읽은 책을 보는 기쁨을 느끼며 그런 것들로 만족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책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그녀처럼 엄선하고 엄선하여 스물 네 권씩은 아니겠지만, 내 나름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을 정하기. 그리고 책읽기 자체를 즐겨보기.

 

 그녀의 여러 구호활동등을 간접적으로 읽으가면서 나는 참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의 중심이 내가 되어 살아왔던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졌다. 20분이 넘는 긴 샤워시간이라던가, 유난히 꼼꼼하게 설거지를 하는 것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다. 마음부터가 너무 좁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좁은 마음은 좁은 시각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며 타인의 고통일 뿐이라 치부해 버린 것. 그것이 가장 부끄럽다. 내가 살아야 남을 보는 시선도 자연스레 생길 것이라 부끄러운 자기 합리화만 했던 것이었다. 세상의 사람들을 일렬로 쭉 세운다. 조건적인 풍족도를 기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세워놓았을 때, 나는 아무래도 상위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고, 잠이 오면 푹 잠을 자고,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연락을 하여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누리는 그 소소한 자유조차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시럽이 듬뿍 들어간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금전적 여유라든가,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지 못한다든가... 사치스런 자유를 부끄러워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오늘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내뱉는 다른 세상이야기도 접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더욱 많이 생각할 것이며, 일부는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내가 가진 자유를 당당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길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자유가 타인의 고통을 아주 조금은 덜어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을, 그리고 행동의 전환을 조금 해 볼까 한다. 내 자유가 행복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 준 이 작은 책 한 권에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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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꺼기
톰 매카시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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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꺼기
톰 매카시 지음 | 황소연 옮김
민음사 2010.04.30평점

 

 산뜻한 표지이다. 찰랑거리는 수면 아래 찌꺼기라는 글자가 위태롭게 떠 있다. Remainder.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찌꺼기이다. 카프카의 소외와 프로이트의 강박이 창조한 섬뜩한 세계라고 했지만, 솔직히 나는 카프카와 프로이트는 딱 이름만 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트루먼 쇼>의 세트장을 만들었단다. 왜? 트루먼 쇼의 짐 캐리가 세상을 탈출하기만을 한없이 바랐던 나에게 이 책의 주인공의 행동을 제시하는 책 뒷표지의 간략한 줄거리는 끊임없이 왜?라는 의문만 가져다 주었다.

 

 사고를 당했다. 무슨 사고였는지, 왜 그 사고를 당했는지... 신문기사의 필수요건이라는 육하원칙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정보는 '내가 사고를 당했다.'라는 것 하나 뿐이다. 하지만, 그 '나'조차도 누군지는 모르겠다. 영국이라는 배경을 제외하고는 이 이야기의 전제 줄거리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주인공은 그저 85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만 받아 챙겼을 뿐이다. 거스름돈이 너무 많으면 귀찮아하는 우리 심리처럼, 주인공 역시 딱 떨어지지 않는 단위인 50만 파운드를 귀찮게 여긴다. 후에는 50만파운드라는 단어조차도 거부감이 느껴졌는지 '100만파운드의 절반'이라는 표현을 쓴다. 사람은 그렇다. 자신이 가진 것이 많아지면, 작은 것은 자연스레 소홀하게 여겨버린다. 때로는 업신여기거나 버려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그는 작은 존재라는 찌꺼기를 하나 내던져 버렸다.

 

 보상금을 주식에 투자한 주인공은 문득 어떤 상황에서 데자뷰 현상을 경험한다. 느껴본 적 있는 듯한 상황. 무엇이 부족하랴. 그는 그 순간을 느끼기 위해 그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건물을 구매하고, 그 상황에 보였던 사람이며 동물을 준비한다. 자신의 기억에 맞춰 모든 것이 움직인다. 유리창의 얼룩이 조금 부족해서도 안되며, 수도꼭지가 조금 더 깨끗해서도 안된다. 그의 기억대로 모든 상황을 지배하려 한다. (그의 기억력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마는...)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목말라하고, 성공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제 시작이라는 대답을 남긴다. 그 후, 어느 살인사건의 현장을 지나게 되고, 그는 그 살인 사건마저 재연하게 된다.

 

 데이비드 심슨의 파티 이후로 내 모든 행동의 목적은 한결 같았다. 진짜가 되는 것.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지는 것. 우리를 사건의 근간으로부터 몰아내고 핵심에 닿지 못하게 방해하는 우회로를 끊어 버리는 것. 그 우회로는 우리 모두를 아류와 이류로 만들었다.(p.299)

 

 주인공은 말한다. 재연극의 목적은 진짜가 되는 것이라고. 그가 만들어 낸 가짜 재연극들 속의 그가 말하는 진짜라는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은 가짜 재연극 속에서 진짜를 찾으려 깊이 파고든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진짜는 지금껏 그가 단 한 번도 처하지 못했으며,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없애고자 하는 아류와 이류를 나누는 우회로 역시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왜?'라는 의문사를 이토록 숱하게 던져본 책은 없을 것 같다. 맨 마지막의 옮긴이의 말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몇 개의 '왜?'가 사라지지는 했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왜?'가 머리를 맴돈다. 무슨 사고를 당했길래 주인공은 850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받을 수 있었으며, 주인공의 과거는 무엇이었으며, 주인공이 추구하는 '진짜'는 무엇인지 등등... 수많은 의문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에게 있어 '진짜' 삶이란 무엇이냐고. '지금 이 순간.'이라고 선뜻 대답해보지만, 그렇게 간단한 다섯 글자로 답을 내어버리기에는 주인공의 행동이 비정상이라고 하기에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주인공을 누군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인물로 정해둠으로 해서 그 사람이 바로 나일수도, 바로 내 옆의 누군가일수도 있다고... 이 책을 읽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의문의 사고를 당해 850만파운드가 생긴다면 뭘 할래? 어느 누구도,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한 행동을 하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부유하고 넉넉하게 현재를 살아가겠다고 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이 책의 주인공을 anyone에 대입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진짜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인공은 자신이 될 수 없는 '진짜' 세상을 그토록 갈구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진짜'라는 사실에 감사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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