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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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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기 좋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에, 마키, 아키코, 유카 네 명의 소녀가 있었다. 같이 어울린다고 하기에 그녀들은 너무 제각각인 존재였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퍼즐조각들처럼 용케도 잘 맞아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조각이 등장한다. 동경에서 온 에미리.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에미리를 네 명의 소녀는 자신들의 영역으로 받아들인다. 8월 14일. 오봉이라 한적한 학교에 모인 다섯 소녀들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일을 도와주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노라며 다섯 소녀 중 에미리를 데려간 남자. 하지만, 저녁이 되도록 에미리도, 남자도 돌아오지 않는다. 남겨진 것은 싸늘한 에미리의 주검. 그리고 그렇게 남은 소녀들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흔히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에 대한 목격자나 최초 발견자를 찾는다. 많은 추리소설들 속에서 최초 발견자는 제 1순위의 용의자가 된다. 에미리의 주검을 발견한 최초 목격자인 네 소녀는 결코 용의자가 아니다. 에미리를 데려간 그 남자로 용의자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네 소녀가 목격자이자 사건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녀들은 너무 어렸고 약했다. 고작 열 살의 그녀들에게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이라는 것은, 더군다나 자신이 죽음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발견 된 친구의 주검은 너무나도 깊고 날카로운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상처는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잡아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버린 것이다.
네 소녀에게는 사건에 대한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았다. 왜 그녀들의 상처는 깊은 흉터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긍정적이지 못한 일은 꼭꼭 숨기고자 하는 인간의 부정에 대한 피해의식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어느 사람의 외침처럼 큰 발산이 필요했다. 하지만 소녀들은 그저 꾹꾹 눌러담을 뿐이었다. 곪을대로 곪아버린 상처가 뿌리 깊은 흉터가 되어 결국 최악의 결과들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왜 소녀들의 가족은 그 상처를 치유해 주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했던 것일까. 같은 죄의식을 가진 소녀들끼리의 교류는 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부정은 긍정의 10배가 넘는 증식력을 가진 존재이다. 특히 개인의 머릿속에 자리한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위대하게 증식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에미리의 엄마인 아사코가 있다. 사에가 아사코에게 쓰는 편지로 이야기는 시작되며 다른 소녀들의 이야기에서도 아사코가 등장한다. 사건이 한참 지나고 나서, 아사코는 소녀들에게 '살인자'라는 가명을 씌워버린다. 이미 그녀들의 죄의식은 속으로 점점 뻗어들어가 단순한 목격이 살인의 원인화 되어가고 있었던 것에 기름을 부어버린 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어진 기름은 네 소녀들 각자의 성격과 특성을 따라 자유롭게 불타오르고 시꺼먼 잿더미만 남게 했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발언의 자유를 더욱 강조하면서도 진짜 속내는, 진짜 진실은 선뜻 내보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스트레스가 병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요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큼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속죄에 등장하는 네 소녀들은 자의적으로 만들어 낸 각각 다른 성향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개성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대표적인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작은 실수는 그저 실수일 뿐이며, 잘못은 순간의 잘못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것을 제외하고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 될 실수란 것이 존재할까. 그런 실수에 대한 속죄의 정도는 무엇일까. 미안하다는 사과의 한 마디? 적절한 보상? 속죄의 기준은 없다. 굳이 기준이 있다면 속죄를 하는 사람의 마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이상, 그걸로 속죄는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말을 하는 것,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가장 쉬운 속죄이며, 가장 쉬운 용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