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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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의 뒷면만 보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과연 몇 개의 해바라기 씨가 얼마나 촘촘하게 박혀있을까? 대충 짐작은 가지만, 그 정확성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어른들의 경우, 숱한 경험들을 통해 일반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동에 따라 옳고 그름을 매긴다. 이는 자의적인 판단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자신의 행동 중 어떤 것이 옳지 않으며, 어떤 것이 옳다라는 기본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이해는 경험의 축적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도서나 교양 방송등의 매체들을 통해 우리는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성격이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건전하고 밝게 자리잡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은 그래서 중요하다. 나이의 많고 적음따위는 상관이 없다.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자각으로 사람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고,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도 불행해질 수 있다.

 

 딸을 잃은 선생님이 사직을 한다. 사직하는 날, 자신의 학급 학생들을 모아두고는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소소한 우유급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청소년 범죄의 처벌에 대한 이야기로 접어들더니, 이내 무거워진 분위기를 타고 자기 딸의 죽음에까지 이야기가 다다른다. 그리고는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A와 B 두 학생에게 자신 나름의 처벌을 내렸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교단을 내려온다. 첫번째 이야기인 '성직자'는 그렇게 끝이 났다. 과연 왜 성직자인가.

 

 그 후로 학급의 반장이 말하는 새 학기의 교실 상황, B의 어머니가 말하는 B의 이야기, 그리고 B와 A의 관점에서 보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많은 해석을 한다. 시각의 차이라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것이며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각자가 살아오며 거치게 된 삶의 과정들이다. A의 경우, 공학박사인 어머니에게서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진정으로 필요했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A가 벌인 모든 행동들의 밑바닥에는 어머니의 시선을 갈망하는 아들의 모습이 깔려 있었다. B의 경우,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런 B의 생각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도 바로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나는 엄마를 오해하고 있었다. 자기 이상에 맞지 않는 자식은 받아들여주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좀비가 되어버린 이런 나도 받아들여준다.'(p.197) B에게 있어 어머니에 대한 이런 이해는 그를 안정시키지만, 결코 그가 저지른 죄의식에서 해방될 수는 없었다.

 

 '속죄'가 '고백'의 후속작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왔다. 후편인 '속죄'를 먼저 접한 나에게 '고백'은 지나치리만큼 '속죄'와 닮아있었다. 아니, '속죄'가 '고백'과 닮아있었다는 표현이 옳은 것이겠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죄에 대한 반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사람은 성장할 수도 있고, 퇴화될 수도 있다.  '속죄'가 간접적인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네 소녀의 죄의식을 그린 것과 '고백'이 두 소년의 죄의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의 바탕은 같다. 하지만, '속죄'에서는 대화와 소통의 단절이 비참한 말로를 그린데 반해 '고백'에서는 사랑과 인정이라는 기본적인 욕구의 결여가 또 다른 비참함을 낳았다.

 

 한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소설은 청소년 범죄와 소년법, 학교의 따돌림 문제 등에서부터 간접적으로는 일본의 히키코모리라는 사회적 문제까지도 다루고 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그들의 하소연에 가까운 고백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갑갑해진다. 각각의 이야기를 떼어놓고 보자면 그들의 고백 하나 하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어느 한 쪽도 옹호할 수 없는 안타깝기만 한 상황이다. 그저 계속해서 왜 진작 사랑하고 인정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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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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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였을까? 바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게 된 것은. 무지한 사람을 의미하는 바보에서 요즘은 하나밖에 모르는 순진한 사람을 의미하는 바보로 바뀐 듯 하다. 대중가요 등에서 '사랑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등의 말은 종종 들어왔지만, 이 책의 제목은 더욱 새롭다. <책만 보는 바보>. 지성의 샘터라고 할 수 있는 책이 바보를 만들었다. 제목에 걸맞게 초반부에는 가난한 삶 속에서 허기조차도 책으로 달래는 한 사람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학창시절, 책을 베개삼아 잠을 자곤 했었다.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는 더했다. 얇은 이불 위에 두꺼운 책을 쭉 덮어 이불을 고정시켜 보온력을 더하거나, 책으로 벽을 쌓아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는다. 할 수 있는 것이 책읽기 뿐이었던 그. 책읽기로 배고픔과 가난도 승화시키던 그는 제목대로 진정한 책만 보는 바보였다. 하지만, 그런 바보에게 책으로 인해 쌓여가는 내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덕무가 참으로 부러웠던 한가지 점은 책을 읽는 그에게 분신과도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함께 책을 읽고 읽은 책에 대해 서로의 이야기를 논하고, 대화를 통해 형성된 공감들이 더욱 굳게 다져져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끈끈한 우정이 되었다는 점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진다고 한다. 필시 그런 책이 주는 순화력이 그들의 인연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는 역할을 했으리라.

 

 책만 보는 바보는 바보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임금의 부름으로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임명된다. 책만 보던 바보에게 쌓인 내공이 드디어 세상애 한껏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빛을 보지 않아도 좋다. 버려진 물건처럼 이리저리 구르던 우리들의 삶도 이제 쓰일 데가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기만 했다.(p.210) 그의 이런 지나치다 싶은 겸손마저도 책만 보던 바보스러운 것이었다. 무언가 바라지 않았지만, 자신을 꾸준히 갈고 닦은 결과는 딱 그 노력만큼의 대가를 주고 있었다. 결코 순간의 행운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이 일궈낸 결과였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가난 속에서도 묵묵히 책을 읽어갔던 그의 모습이 자연적으로 오버랩되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기분좋은 봄 햇살을 받으며 푹신한 베개에 몸을 기대어 책을 읽는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른함 속에서도 이 책은 굉장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읽고 나서 '아, 그렇구나.'라는 수용의 기분보다, 그의 지적 욕구에 놀라면서도 내 자신을 조금 더 채찍질하게 되었다. 어느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단지 읽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더욱 필요하다고. 하지만, 흔히 그 '무언가'라는 것을 외적 요소에서 찾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책을 읽고 우리가 얻게 되는 그 '무언가'는 바로 정확한 대명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필시 우리 내면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덕무의 삶은 담백했다. '책'을 평생 벗삼아 한 길을 걸었으며, 자신이 얻은 바를 가능한 많이 다시 내뿜으려 노력했다. 그의 친구들도 그랬다. 유득공, 박제가, 박지원 등 국사 교과서 한 켠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실학 사상가들이 내는 목소리의 뒤에는 '책'이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책만 보는 바보들이 아니었다. 책만 보는 바보로부터의 소소한 시작이 한 나라를 흔드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주위를 둘러보자. 지금 주위에 어떤 책이 있는가. 그 책이 나와 만나 일으키게 될 효과를 꿈꿔본다. 한 권으로 안 된다면 백 권이라도 읽어내리라. 그렇게 나는 300여 년 전의 그를 동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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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법칙 -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비즈니스의 허점
마이클 레빈 지음, 이영숙.김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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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을 즈음의 내 차 유리창은 금이 가 있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가느다란 금이었고 처음 발견된 후로 더 심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만만치 않은 유리 교체비용을 부담하기에는 정말 '별거 아닌' 금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는 걸까. 이 책은 나의 금 가있는 자동차 유리창을, 그런 '별거 아닌 금'이 가 있는 유리창을 방치하고 있는 나에게 날카로운 경고를 하기 시작한다.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비지니스의 허점'. 그것이 바로 깨진 유리창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깨진 유리창의 경고는 우리 속담인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가 조금 더 악화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라고 할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은 우리 사회에 널려있다. 회의 시간을 지키지 않는 습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자신도 모르게 폭음해버리는 습관, 생각하지도 않고 툭툭 던져버리는 한 마디의 말. 이 모든 것이 깨진 유리창이 될 수 있다.

 

 누구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런 좋지 않은 습관들을 두고 '언젠가는 고쳐지겠지.'라는 방관의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언젠가'라는 막연한 단어로 얼버무리기에는 너무나도 뚜렷한 깨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깨진 유리창에 대한 방관적인 자세를 제대로 꼬집어주고 있다. 일상 생활의 시시콜콜한 예가 아닌, 내로라는 대기업들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이야기들로 깨진 유리창의 엄청난 존재감을 인식시켜준다. 미국의 유명한 K마트의 오만, 코카콜라의 잘못된 선택, 페리에의 실수에 대한 늦은 대응 등 깨진 유리창을 다루는 대기업들의 작은 실수가 불러낸 위기로 독자들을 위협하는가 하면, 대형마트 타깃이나 디즈니랜드, 구글 등이 깨진 유리창 수리를 통해 성공의 발돋움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예를 들어 작은 것으로도 큰 성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일이란 없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내가 종종 찾는 커피 전문점은 스타벅스인데 몇 달 전, 그 스타벅스 옆에 커피빈이 새로 생겼다. 하지만 난 여전히 스타벅스를 방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타벅스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도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그 곳에서 어떠한 작은 불편이라도 겪게 된다면, 나는 그 곳을 예전처럼 웃으며 드나들 수 있을까? 모든 고객이 그렇다. 한 번 생성된 기호는 잘 바뀌지 않지만, 그 기호는 한순간의 아주 사소한 것으로 인해 바뀌어 버릴 수 있다.

 

 세계 여러 기업들의 이야기를 담아 나와는 무관한 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책은 결국 작은 것을 빠르게 개선하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개인은 곧 하나의 기업이 될 수 있다. 방긋 웃는 예쁜 얼굴은 친절한 고객 센터가 되고, 재빠른 두뇌와 현란한 손동작은 기업의 기술력이 되며, 타인에 대한 배려는 곧 기업의 사회공헌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 내가 곧 기업이 된다는 말은 괜시리 많은 책임감을 갖게 한다. 나라는 작은 기업이 가진 깨진 유리창은 무엇일까. 혹시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이 먼저 나의 깨진 유리창을 발견하고 멀어지고 있지는 않을 것일까?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엄청난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듯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도 거듭 작은 것의 큰 영향력을 강조한다. 때로는 숲 전체보다 숲 속의 나무에 중점을 두는 시각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 어서 차 유리창을 수리하러 가야겠다. 더욱 큰 일이 발생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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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장 - 일상다반사, 소소함의 미학, 시장 엿보기
기분좋은 QX 엮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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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동네에는 매 5일과 10일 단위로 장이 선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쫄레쫄레 시장을 걸어다니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장이 서지 않을 때는 보이지 않던 온갖 생선이나 야채 가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개구리나 징그러운 굼벵이도 상품이 되어 나와 있었다. 시장에 갈 때마다 엄마가 끌고 다니던 손수레가 넘쳐나 몇몇 짐을 내가 들게 되는 것은 나의 찬스였다. '아, 무거워요.'라고 연신 중얼거리며 장보기를 마친 엄마를 끌고 근처 분식가게로 향한다. 지금 현재 고향에 내려가도 성행하고 있을 20년이 넘는 전통 호떡집에서 천 원에 네 개를 담아주는 호떡과 쫄깃한 순대를 한 봉지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머리 핀이나 머리띠 등의 악세서리를 파는 행상과 만나게 되는 날은 진정한 '나의 날'이었다.

 

 시장을 멀리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집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시장을 가로질러 가는 경로였는데, 장이라도 서는 날의 하교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이나 십 대의 후반이 된 나이나 굼벵이는 여전히 징그러웠고, 어전의 물이라도 옷에 튀게 되면 나는 온갖 인상을 찌푸렸다. 시장에 가는 엄마를 졸라 집에서 차로 15분이나 걸리는 마트로 행선지를 바꾸기 일쑤였다. 신선하게 느껴지는 공기와 뭔가 상큼한 음악이 흐르는 듯한 내 나름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던 마트가 나는 좋았다.

 

 스물 여섯 살의 나는 집을 떠나 혼자 살고 있다. 그리고 차로 5분 거리의 마트를 뒤로 하고 걸어서 10분 거리의 시장을 찾는다. 10원 단위로, 심하게는 1원 단위로 뚝뚝 끊어지는 마트보다는 무조건 금액을 내림하여 지폐의 상용화가 되는 시장이 훨씬 경제적으로 느껴진다. 같은 양파를 사더라도 여러 상점을 둘러보고 제일 많은 양에 제일 싱싱한 듯 해 보이는 양파를 비교 구매할 수 있다. 100g에 369원 같은 인정없는 숫자로 끊어지는 마트의 양파보다 예닐곱 개를 수북하게 쌓아놓고 오려낸 박스 뒷 면에 쿨하게 적힌 '2천원'짜리 양파가 나는 좋다. 그리고 한 가게에서 너댓 개가 되는 종류의 야채를 산 후 백 원 단위를 서슴없이 깎아내는 에누리도 좋다.

 

 인심과 저렴함으로 대표되던 나의 시장을 '매력덩어리'라는 이미지로 확 바꾸어 버린 책이 바로 <한국의 시장>이다. 그저 물건을 구매하러 다니는 시장이 아니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장이 담겨있다. '일상다반사, 소소함의 미학, 시장 엿보기'라는 부제를 능가하는, 시장은 결코 소소하지 않고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비범한 장소였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15개의 시장을 돌며 뽑아낸 풍성한 시장 이야기와 함께 디자이너 이상봉, 사진작가 권영호, 연기자 홍석천 등이 시장에 얽힌 추억담을 한가득 풀어 놓는다. . 제주의 한라봉과 화산암으로 침이 절로 고이는 옥돔, 이 책이 아니었다면 평생 알지 못했을 전주의 암뽕순대, 주문진 수산시장 천장의 투명한 비닐바다 등으로 먹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전국 각지의 시장의 매력은 모든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다양하게 파는 가게에서는 음식 맛에 만족할 수 없다. 시장은 가장 전문적인 공간이다. 다양한 품목을 조금씩 가져다 디스플레이 해 둔 듯한 마트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과일 가게에서는 과일만, 생선가게에서는 생선만, 정육점에서는 고기만. 각자 정해진 분야의 품목만 취급하는 시장의 상인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품목의 최고 전문가가 된다. 주문진 시장의 복어회의 도톰함, 제주도의 다양한 스타일의 마스크, 위조방지 100%의 수제 도장 등, 내로라는 전문가의 손길이 모이고 모인 곳이 바로 시장인 것이다.

 

 시끌벅적함 또한 시장의 매력이다. 참 편리한 마트는 단 한 마디의 말을 하지 않고도 쇼핑을 끝낼 수가 있다. 하지만 시장은 원하는 것을 사고자 할 때, 반드시 상인과의 대화를 필요로 한다. '얼마예요?', '~주세요.', '많이 파세요.' 등의 몇 마디의 말이 오가다 보면 어느 새 상인과 나는 친구가 되어 있다. 어쩌다 대화가 길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더 많은 물건과 웃음으로 보상되어 돌아온다. 한국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도 분명 많은 상인들과 대화를 했을 것이며, 시장 안의 여러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런 대화들과 웃음소리가 오고가며 시장은 언제나 시끌벅적한 매력을 내뿜는다.

 

 매일같이 리뉴얼되는 마트의 인테리어와는 달리 시장은 시간을 머금고 변화한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보다는 과거에 현재를 덧대어 나아가는 것이 시장의 매력이다. 매직으로 거대하기 쓰인  '뻥'이라는 글자가 주는 퉁명스러움, 간판만 세 개인 벌교의 스타미용실, 기름집 유리문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스티커, 도토리 모양의 까만 전구 스위치 등이 오묘하게 현재와 어울려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시장이 아니면 너무나도 어색했을 그것들을 시장이 너그럽게 안아주고 있었다. 그런 시장의 매력 때문에, 나는 천안 호두과자 가게가 너무 현대화 되어버린 것에 작가들 못지 않은 아쉬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전국 각지의 시장이 주는 독특한 지방색으로 여행서의 느낌도 가질 수 있음과 동시에 우리는 잊고 있었던 시장을 찾을 수 있다. 어릴 적 엄마의 손을 붙잡고 걸었던 시장, 시끌벅적 정신없는 상인들의 분주함, 조금 더 달라며 혹은 조금 더 깎아달라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 포장마차에 옹기종기 앉아 국수며 튀김을 먹는 모습 등 시장을 통해 조금씩 우리는 어려진다. 거기에 한국의 시장이 주는 독특한 매력은 시장이 단순히 상거래의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재생,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신세계를 보여주는 한국의 시장. 이 책은 진정한 시장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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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청춘에게 - 21권의 책에서 청춘의 답을 찾다
우석훈 외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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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인의 멘토와 20대의 청춘이 함께 만들었다는 책이다. 책 표지에 일렬로 쭉 쓰여져 있는 21인의 멘토의 이름을 하나씩 읽어본다. 아는 이름보다 모르는 이름이 많은 현실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책읽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로, 독서를 권하는 책을 꽤 읽어왔다. 한비야, 장영희, 고도원, 박찬욱 등... 이름만 딱 들어도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책읽기를 추천한다는 것은 마치 책읽기를 통해 그 사람들의 그림자라도 따라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꿈을 안게 해 준다. 그런 소박한 꿈의 크기는 똑같다. 하지만, <책 읽는 청춘에게>가 가지는 소박한 꿈은 조금 더 가까이에 있다. 21인의 멘토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낸 사람들이 바로 나와 같은 20대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같은 시선이기 때문에, 나는 더욱 많은 끄덕임으로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20대. 대학생으로서의 초반을 보내고 나면 취업을 위한 지독한 20대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20대가 흔히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력서의 한 줄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 역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기준 조건들을 하나씩 맞춰가다 보니 어느 새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뭘 하고 싶었더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였더라? 라는 것에 대한 대답을 떠올려 보려 안간힘을 쓸 수 있었으니까. 이런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20대들의 꿈은 좋은 회사에 취업하여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되어 버렸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친구를 만나면,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왜?'라는 의문사가 먼저 튀어나와 버린다. 그만큼 가슴이 원하는 일 보다 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당연히 되고 있으며, 그 안전 궤도를 조금이라도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금세 부적응 증상이 일어난다. 그게 바로 지금의 20대인 것이다.

 

 스물 한 명의 멘토는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이다. 어떠한 자신의 재능이나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해 끝없이 달린 결과로 지금의 20대에게 멘토로서의 조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나 자신도 그렇다. 누군가가 네가 잘하는게 뭐냐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그만큼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재능에 대해 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많이 요구되는 재능에 자신을 반영해서 생긴 결과가 아닐까? 유창한 외국어 회화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사회가, 아니 취업 현장이 요구하는 재능이 되어버렸고, 그 재능을 쫓아가다 보니 자신이 진짜 잘하는 무언가는 자연적으로 뒤로 숨어버리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가 가슴 깊이 열망하고 스스로가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무언가가 필시 있을텐데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숨은 재능을 찾지 못하는 것은 취업 사회 밖의 조금 더 넓은 사회로 시선을 돌리지 못해서이다. 20대. 적어도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아야 하는 시기이다. 세상을 알아갈 수 있게 하는 도구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스물 한 명의 멘토들은 하나같이 책을 추천한다. '고통스럽고 힘든 이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거인이 바로 책이에요. 거인의 어깨가 있는데 왜 올라타지 않는 거죠? 왜 듣고 나면 외로워지는 MP3만 끼고 살아요?'라는 박성수 PD의 충고에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는 20대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책은 단순히 지식 정보만을 안겨주는 도구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자신의 외로움에 어깨를 내 줄 수 있는 친구같은 존재이다. 한 번에 많은 이야기를 역설하려 들지도 않고, 혼자서만 주구장창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독자의 생각을 수반하며 당신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라는 질문을 항상 남겨 놓는다. 때로는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해 주기도 하고,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을 통해 '그 답은 당신 손에 달려있소이다.'라며 강한 미션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마냥 읽기만 하면 될까? '과시하기 위한 책 읽기는 알맹이가 없어요. 정말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의 내공은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입니다. 단순히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는 허위의식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책의 위용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작가나 제목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민규동 감독의 말에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샌가 책을 자주 접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내 자신에 나도 모르는 허위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의 알맹이에 감동하기보다 누구의 어떤 책을 읽었다는 완독의 사실에 더욱 집착하게 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많은 20대가 공감을 하고 자신들과 같은 시선에서 비추어진 멘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많은 책들이 읽었으면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만, 어떤 것을 해야할지의 구체적인 답까지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참 고맙게도 다음 행동 강령을 제시해 준다. 스물 한 명의 멘토들이 추천한 책을 읽을 것. 그들이 말한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 책이 품고 있는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을 제시한다. 제시된 스물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멘토들의 조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청춘이 끝날 무렵까지도, 혹은 그 후에도 이 책은 우리의 삶 속에서 멘토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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