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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해바라기의 뒷면만 보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과연 몇 개의 해바라기 씨가 얼마나 촘촘하게 박혀있을까? 대충 짐작은 가지만, 그 정확성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어른들의 경우, 숱한 경험들을 통해 일반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동에 따라 옳고 그름을 매긴다. 이는 자의적인 판단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자신의 행동 중 어떤 것이 옳지 않으며, 어떤 것이 옳다라는 기본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이해는 경험의 축적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도서나 교양 방송등의 매체들을 통해 우리는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성격이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건전하고 밝게 자리잡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은 그래서 중요하다. 나이의 많고 적음따위는 상관이 없다.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자각으로 사람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고,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도 불행해질 수 있다.
딸을 잃은 선생님이 사직을 한다. 사직하는 날, 자신의 학급 학생들을 모아두고는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소소한 우유급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청소년 범죄의 처벌에 대한 이야기로 접어들더니, 이내 무거워진 분위기를 타고 자기 딸의 죽음에까지 이야기가 다다른다. 그리고는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A와 B 두 학생에게 자신 나름의 처벌을 내렸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교단을 내려온다. 첫번째 이야기인 '성직자'는 그렇게 끝이 났다. 과연 왜 성직자인가.
그 후로 학급의 반장이 말하는 새 학기의 교실 상황, B의 어머니가 말하는 B의 이야기, 그리고 B와 A의 관점에서 보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많은 해석을 한다. 시각의 차이라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것이며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각자가 살아오며 거치게 된 삶의 과정들이다. A의 경우, 공학박사인 어머니에게서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진정으로 필요했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A가 벌인 모든 행동들의 밑바닥에는 어머니의 시선을 갈망하는 아들의 모습이 깔려 있었다. B의 경우,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런 B의 생각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도 바로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나는 엄마를 오해하고 있었다. 자기 이상에 맞지 않는 자식은 받아들여주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좀비가 되어버린 이런 나도 받아들여준다.'(p.197) B에게 있어 어머니에 대한 이런 이해는 그를 안정시키지만, 결코 그가 저지른 죄의식에서 해방될 수는 없었다.
'속죄'가 '고백'의 후속작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왔다. 후편인 '속죄'를 먼저 접한 나에게 '고백'은 지나치리만큼 '속죄'와 닮아있었다. 아니, '속죄'가 '고백'과 닮아있었다는 표현이 옳은 것이겠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죄에 대한 반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사람은 성장할 수도 있고, 퇴화될 수도 있다. '속죄'가 간접적인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네 소녀의 죄의식을 그린 것과 '고백'이 두 소년의 죄의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의 바탕은 같다. 하지만, '속죄'에서는 대화와 소통의 단절이 비참한 말로를 그린데 반해 '고백'에서는 사랑과 인정이라는 기본적인 욕구의 결여가 또 다른 비참함을 낳았다.
한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소설은 청소년 범죄와 소년법, 학교의 따돌림 문제 등에서부터 간접적으로는 일본의 히키코모리라는 사회적 문제까지도 다루고 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그들의 하소연에 가까운 고백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갑갑해진다. 각각의 이야기를 떼어놓고 보자면 그들의 고백 하나 하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어느 한 쪽도 옹호할 수 없는 안타깝기만 한 상황이다. 그저 계속해서 왜 진작 사랑하고 인정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