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여행가방 - 내가 사랑한, 네가 사랑할 여행의 순간
이하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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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서 주인공은 무엇일까. 지역별 독특한 풍미를 지닌 음식, 현지 사람들의 친절이나 웃음, 여행지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매력. 여행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수히 많다. 그리도 다양한 여행 도서들이 음식이나 사람, 건물이나 여행지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 있다. 수많은 여행 도서, 그 중에서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행 에세이. 이제는 나올 법한 에세이는 다 나왔다 싶었는데, 평범한 듯 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에세이를 만났다. 여행을 직접 하는 저자가 주인공이 되는 여행, 그리고 그녀가 쓴 에세이.

 

 저자의 전직이나 학력은 다 뒤로 하자. 그녀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글을 바라보자. 굉장히 담백하고 깔끔한 일식의 맛이 나며 각 여행지에 대해 적당한 아쉬움 - 맛있는 음식을 조금 더 먹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입맛을 다시는 그런 느낌- 이 이야기 곳곳에서 잔잔히 감돈다. "여행은, 다시 못 와볼 곳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다음에 다시 한번 꼭 오고 싶은 곳을 찾는 과정이다.(p.81)"라는 그녀의 사진 아래에 조용히 자리한 말이 이 에세이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대변한다. 정말, 한 번 오고 말 곳이 아니라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다시 한번 더 찾게 될 곳이니, 조금의 아쉬움은 남겨두고 와야 한다고. 그렇게 여행자와 여행지가 상호간에 남긴 협약처럼.

 

 책을 보고 있노라면 지나치게 감상에 빠지지도 않고 지나치게 정보 위주로 가지도 않는다. 여행자로서의 한 20대 여자가 걸어간 길과 맞닿은 시선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으며, 20대의 한국 여성이 하는 여행에 나타날 것만 같은 그런 사건들이 하나씩 툭툭 튀어나온다. 터키 남성의 유혹이나 이집트 인들의 사기(?), 일본에서 통하지 않는 히치하이킹, 파리에서의 몹쓸 낭만, 기대를 뛰어넘는 서프라이즈가 존재하지 않아 그 점이 더 매력적인 몽골 등, 여행지에 대한 감상이 지나치게 과장되지도 않고, 너무 무성의하지도 않다. 그래서 정말 마음에 든다.

 

 관광이라는 여행자의 의무를 떨쳐버리니 파리가 일상처럼 다가왔다.(p.49)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저녁을 꿈꾼다. 평범한 일상을 훔쳐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그들의 감정을 나눌 수 없기에 짝사랑과 같다.(p.90)

 난생처음 가보는 낯선 여행지에서 나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 그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그동안 몰랐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지겹게 알고 있던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일. 여행의 목적을 고민하느라 우리가 놓치고 있던 '여행의 본색'이다.(p.182)

 여행은 기억되는 장소가 아닌 기억되는 순간을 만드는 일. 여행을 알아갈수록 사진으로는 담기 힘든 순간들이 내 여행가방에 차곡차곡 쌓여간다.(p.195)

 잘 익은 김치를 먹을 만큼만 덜어내듯이 나에게 여행은 아주 조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만 나의 일상을 덜어내는 것이다. (p.286)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여행의 정의. 그녀의 시선이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말들. 잊고 있었던 여행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정의들이 지난 내 여행을 쿡쿡 찔러댔다. 여행은 시간의 흐름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확장하고 사진을 남기고 기록을 한다. 그런 기록들이 모여 여행했다는 말 뒤를 화려하게 수식하지만, 언제나 누군가에게 여행에 대한 소감을 대답해야 할 때면 '어디가 좋았어.'라는 좋다라는 아주 단순한 형용사로 얼버무리고 만다. 그 속에서 내가 했던 생각과 내가 담아낸 풍경은 좋다라는 거대한 포용의 단어 속으로 묻혀버린다. 그것이 지난 날의 내 여행의 남과 다르지 않은 뻔한 여행으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녀의 루트는 많은 사람들이 찾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행의 순간을 남겼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장소에 내가 있었던 사진과 같은 풍경 한 장을 남겼을 뿐이다. 그것이 여행의 차이다. 얼마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여행이 되는가. 나만의 여행이라 자부할 수 있는 여행이 되는가에 대한 해답은, 여행 경비나 여행 코스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바로 여행자 자신이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왜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을까. 수많은 여행을 하고 난 지금에서야. 하지만, 그녀의 여행에 대한 정의를 다시 빌려본다. 다시 못 올 곳이 아니라, 한번쯤 다시 가게 될 곳들이다. 그래서 깊게 후회하고 끝내버리기에는 이르다. 아직 나에게는 내가 발딛었던 그 곳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여전히 나를 오라 손짓하고 있기에. 조만간, 나도 정겨운 그 곳을 다시 찾아 예쁜 형용사를 달아 뚜렷하게 내 기억 속에 정리를 하고 돌아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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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한국의 명품문화
하중호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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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나는 절하는 법을 잘 모른다. 설날 세배라도 하게 될 때면 어떻게 절을 해야할지 망설이다 대충 얼버무린 형식으로 재빠르게 엎드렸다 일어서기 일쑤였다. 늘 제대로 된 방법을 익혀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제로 살아가는데 그렇게 필요한 것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앞에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한국의 명품문화'라는 이름의 책이 나타났다. '내가 제대로 알려주겠다'라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습관처럼 별 생각없이 써 왔던 여러가지 어휘나 자동적으로 행해왔던 몇몇 행동들이 그저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보'라는 단어 하나를 두고도 수많은 풀이와 정설이 나돌고 있고, '영부인'이라는 호칭이 대통령의 부인을 일컫는다는 정의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가 모르고 있었던 절하는 법이나, 미래의 시댁 식구들에게 써야 할 호칭들에 대해서도 한번에 정리를 할 수 있었다. 한식이나 유두, 경칩 등, 잊혀져 가고 있던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것도 좋은 일이었다. 봄은 그저 봄일 뿐이라고 생각했지,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 봄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잊혀져가고 있던 우리의 풍속과 예절들을 상기시켜줌과 동시에 이 책은 현재의 한국 문화에 대해 크게 호통을 치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로 급속한 경제성장은 이루었지만, 문화나 시민의식은 경제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네덜란드가 국제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서 힘을 자랑하는 것은 경제규모나 세계의 영향력이 국가를 평가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으로 출장을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중국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중국의 거리를 보면 선진국은 결코 될 수 없을 거라고 하셨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이름표를 달기에 멈칫거릴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중국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공공질서를 철저하게 지키는 나였기에 나름 시민의식 같은 것은 꽤 선진국의 사람들 수준이라고 자부해 왔었지만, 그것은 결코 옳지 않은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켜야 할 룰을 그대로 따르는 것만으로 제대로 된 시민의식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 적어도 자국의 문화를 잘 알아야 하며, 그 문화에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문화가 반만년의 역사를 타고 내려오며 세계 어느 나라의 문화보다도 정이 넘치고 사람을 위한 문화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지 서구의 자유로운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문화가 더욱 간편해 보였기에 그것만을 너무 닮아가려 애쓰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덮으면서 확실하게 얻은 것은, 우리 문화는 참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명품문화라 칭해도 조금의 부족함이 없을만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힘을 가진 문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남은 것은 이런 좋은 문화가 외부 문화에 휩쓸려 흐릿해지지 않도록 정성껏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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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흩어진 날들
강한나 지음 / 큰나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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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이벤트에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고, 며칠 전 도서관을 통해 처음 접했다. 벚꽃 잎이 흐트러진 핑크빛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따뜻한 봄날의 도쿄. 빈티지 감성 여행 에세이. 내가 좋아하는 일본.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 책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이렇게 열심히 펜을 굴렸던 적은 처음이다. 불쾌함이 가득한 마음으로 내내 책을 넘겨갔다. 군데군데 보이는 저자의 감성이나 괜찮은 소설, 영화 속의 문구가 주는 세련된 감성을 잠재워 버릴 만큼, 이 책은 정말 무례했다. 커다란 포스트 잇 세 장이 너덜너덜 빽빽하게 가득 찼다. 이 책에 적힌 수많은 오타들로. 유난히 내가 세심한 성격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한 책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일본어를 공부했다는 저자가, 열정과 집착에 가까운 끈기를 가졌다는 그녀가 이 책의 수많은 오타들을 그대로 방관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아쉬웠다. 도대체 교정을 하긴 한 것일까.

 

 찾아낸 잘못된 것들을 간략하게 적어보면 대략 이렇다.

32쪽 : 1문단 5줄의 '비쿠카메라바' 에서 '바'가 빠져야 한다

44쪽 : 2문단 첫 줄의 '신주쿠역'에 해당하는 한자어가 '東京駅'에서 '新宿駅'로 바뀌어야 한다

68, 69쪽 : 폰트 설정 때문에  '勇気'의  '気'가 '?'로 나타나 있다 (이건 진짜 실망이었다)

78쪽 : 전반적으로 나와있는 '하코스시'라는 발음이 '하코즈시'라고 되어야 한다.

90쪽 : 첫 문장의 신사이바시의 일본어표기는 '心斎橋’가 옳다. '사이'에 해당하는 두번째 한자에 삼수변은 없어야 하는데...

113쪽 : 키타노자카의 '자카'에 해당하는 한자어는 '坂'이다. 왜 나무목이 들어간 한자가 나와있을까?

160쪽 : '슝세쯔아이'가 아니라 굳이 한국어로 발음을 적자면 '슝세쯔사이'다. 축제를 의미하는 한자가 '사이'로 읽히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인건데...

238쪽 : 기본 도시 이름인 미야지마의 지명이 잘못 적혀있다.  '宮島'이게 미야지마다. 왜 일본한자로 사용하지도 않는 한국에서 쓰는 넓은 광자를 쌩뚱맞게 넣어둔 것일까.

248쪽 : 잘 나가다가 맨 마지막 줄의 '미야지지마'라는 어이없는 오타는 참 황당했다. 그것도 굵게 처리된 문장이...

274쪽 : 2문단 5째줄의 운젠온천의 한자표기가 노보리베쓰온천으로 되어있다;;;

                3문단부터는 쭉 오타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시라하마온천은 운젠온천으로 표기되어있고, 아리마온천은 시라하마온천으로, 도고온천은 아리마온천으로, 노보리베쓰온천은 도고온천으로.... 진짜... 읽다가 화가 날 뻔한 부분이었다. 틀릴 거였다면 한자 표기를 하지 말던가... 거기에 274쪽의 마지막 줄의 헤이세이신잔은 운젠온천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후겐다케에는 헤이세이신잔으로 표기되어있다.

시라하마 : 白濱

아리마 : 有馬

노보리베쓰 : 登別

고도 : 道後

헤이세이신잔 : 平成新山

후겐다케 : 普賢岳

이게 바른 한자표기다. -_-;

 

320쪽 : 당당하게 1643년에 메가네바시가 세워졌고, 올해로 367년이나 되었다고 친절한 계산까지 곁들이셨지만... 검색결과 메가네바시는 1634년에 세워졌다;;; 계산도 틀리셨어요... 에구구...

330쪽 : 미나미야마테는 南山手로 표기해야 옳다. 南山로 '테'를 빠뜨린 센스.

342쪽 : 한숨이 턱 나왔던 오타. 일본어 기초중의 기초인 가타카나부터 틀려주셨다. ッ로 기입해야 할 것을 シ로 넣어주신 센스... 애석하게도 쓰루찬이 시루찬이 되어버렸다.

360쪽 : 가미가모진자라고 해놓고 엔라쿠지의 한자를 써놓고, 시모가모진자라고 해 놓고 또 엔라쿠지의 한자를... 엔라쿠지가 좋으신가보다. 그리고 료안지에는 긴카쿠지를 한번 더 되풀이 해 두셨다. 그리고 내가 참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은, 언어의 통일이다. 교토에 있는 신사나 절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이면 다 똑같이 일본어 발음으로 기입을 하든가, 아니면 한자어 음독으로 기입을 하든가...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데, 금각사와 은각사는 한자음독, 나머지는 일본어발음이다. 뭐, 일본어 표기의 두음 ㅋ이 ㄱ으로 발음되는 것으로 인해 금각사와 은각사의 발음 표기가 똑같아져서 그런거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386쪽 : 제목을 제외한 노렌의 한자 표기가 교토로 되어 있다.

392쪽 : 3문단 안도 히로시게의 한자 이름이 잘못되어 있다. 安藤広重이게 맞음!

403쪽 : 10째줄의 야나카신사로 표기된 것은 야사카신사로 표기되어야 한다.14째 줄에는 긴카쿠지의 한자 표기가 기온마쓰리로 되어있다.

 

 25분만에 뒤져낸 오타가 이 정도. 이 책의 중간에는 지명이나 일본어의 한자표기가 상당히 많은데, 그 오류가 가장 많다. 여행에세이의 역할 중 하나는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특히나 이 책에는 친절하게도 여행지의 주소와 연락처를 비롯한 기본 정보를 제시해 두어 정보제공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잦은 오타로 인해 애써 제시한 정보의 신뢰도마저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가타가나를 틀린 것은 정말 실망 중의 실망이었다.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가타카나의 ッ와 シ의 모양이 비슷한 것을 알고 두 글자의 구분에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저자가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니, 저자의 이런 초보적인 실수조차 교정해 주지 못한 편집자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이 책의 오류에 실망을 하며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읽어보았다. 어느 누구도 나처럼 별거 아닌, 하지만 결코 적지는 않았던, 실수들에 눈을 돌리지는 않은 듯 하다. 내용은 분명히 좋았다. 감성 에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만큼 세련된 감성은 마음에 들었고, 책 중간에 실린 저자의 이쁘장한 사진들도 또 다른 볼거리가 되었다. 책 두께만큼의 정성이 있었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수많은 오타들은 도저히 내 자신에게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적이었던 사실은 내가 접한 책이 1쇄였다는 것이다. 내일은 서점에 가서 우리 흩어진 날들을 찾아볼 것이다. 제발 온전하게 모든 것들이 수정된 2쇄가 나와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도 구겨지고 찢어진 포장지로는 선물의 성의가 반감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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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이 피네 - 법정 스님 대표 명상집
법정 지음, 류시화 엮음 / 문학의숲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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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는 유독 소유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들과 많이 만난 것 같다.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도 그렇다. 법정 스님 하면 '무소유'가 자연스레 떠오르듯이, 법정 스님의 법문이나 연설을 모아 엮었다는 이 책에서도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짙게 드러나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으로 압구정으로 향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전철 안에서 이 책을 만나 참 다행이었다. 마음에 드는 소위 말하는 신상을 앞에 두고,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대의 마음에도 꽃이 피는가'라는 책의 띠지에 적혀있는 문구가 내 가슴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청빈의 덕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우리 둘레에 편리한 물건의 더미는 한없이 쌓여 있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일상적인 물건들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p.34) 법정스님은 맑은 가난, 즉 청빈을 강조하셨다. 소유물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스스로를 우주적인 생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바로 청빈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동물은 이 세상에 인간뿐이다. 산도, 나무도, 바다도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을 한없이 내놓기만 하지, 절대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동물도 그렇다. 어떤 것도 가지려 애쓰지 않는다. 소유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을 아는 것은 인간뿐이다. 무언가를 선물받거나 구매하였을 때, 그 물건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진정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소유하지 못한 어떤 물건이 자꾸 눈에 밟히고, 소유한 것과 어울리는 다른 물건을 향해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 다시 소유에의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소유는 또 다른 소유를 부른다. 주위의 물건들을 쭉 둘러본다.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섯 개의 가방들, 2단 행거 두 개를 가득 채운 옷들, 화장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반도 채 쓰지 않은 화장품들이 내 주위에 널려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 가방을 사려 하고, 옷을 사려하고, 화장품을 사려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과연 누구를 위한 소유인 것일까. 내 몸무게를 능가하는 내 주위의 짐들을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괜스레 한심스러워진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p.80) 주위를 둘러보며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몇 개를 고르고 나니 선택에 들지 못한 대부분의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커 보인다. '거듭 말하지만,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려 하지 말라.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게 된다. 모자랄까 봐 미리 걱정하는 그 마음이 바로 모자람이다. 그것이 가난이고 결핍이다.'(p.164, 165)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청빈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주위에 많은 물건들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만큼 주위 환경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그것은 곧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시간을 주게 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향한 생각까지도 한 번씩 더 생겨나는 것 같다. 그리고 소유에 대한 욕심이 바로 내 자신의 마음의 양식을 쌓고자 하는 열망으로 바뀌어 간다. 내 안은 점점 알차게 쌓여가고, 내 주위는 복잡하지 않다. 복잡하지 않으니 생각이 꼬이지 않고 긍정적이 될 수 있다. 결국, 내가 지금 안고 있는 고민 하나 하나에 대한 원인은, 모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충하기 위한 소유욕에 있었던 것 같다.

 

 법정스님의 이야기를 읽고 느꼈다고 해서, 내 삶에 있어 헛된 소유를 깨달았다고 해서 바로 개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이십 여년을 이렇게 생활해 왔고, 나름대로는 텅 비었던 내 방안을 내 소유의 물건들로 채워가는 것이 보람있다고 생각해왔던 삶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진심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만 내 방 안으로 들일까 한다. 수 개월째 내 손을 타고 있지 않는 몇몇 소유물에 대해서는 이별을 고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가진 소유에 대한 부끄러움을 지우고 내 마음에 꽃을 피울 수 있는 나로 변해갈 수 있기를, 작게 소망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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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한차현 장편소설
한차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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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리 속에 자리한 외계인은, 아주 똑똑하거나 혹은 아주 무지하거나의 극과 극의 상태로 존재한다. 똑똑한 외계인에게는 정이라는 요소가 결여되어 지구인들을 마구 이용하려드는 정복자의 이미지이고, 무지한 외계인에게는 지구인과 교감할 수 있는 끈끈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친구같은 이미지로 생각된다. 종교에 대해서는? 불교 집안에서 자라난 무신론자인 내게 종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기독교니 천주교니 불교니 하는 종교의 경계는 단지 신도들이 숭상하는 신이 다르다는 것으로 분류된다. 굳이 종교가 조금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는, 외국의 유명한 성당이나 교회 건물을 보았을 때나, 한국이나 일본의 유명한 사찰을 방문하여 그 유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정도일까. 그런 내게 종교와 외계인을 아우르는 책이 한 권 주어졌다. 종교와 외계인.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나를 중심으로 한 이 지구라는 세계가 아니라, 태양계 밖 어딘가 알 수 없는 은하 속의 알 수 없는 어느 별의 어느 마을에 자리한 외계인이 신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여 살고 있다는 가정을 해 본다면,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조합이라고 말할 수는 없게 된다.

 

 차연이라는 목사는 그의 아내 허소원과 머나먼 외계의 어느 별로 여행을 떠난다. 도서관안의 도서관, 앎의 탑과 같은 듣기만해도 우러러보게 되는 그런 외계의 것들을 구경하고, 그 곳에 남겠다는 아내를 두고 지구로 돌아온다. 하지만, 다시 아내를 찾으로 가려하지만, 아내는 어느 시공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지구에서의 시간과 외계에서의 시간은 결코 일치하지 않았으며, 일정한 기준을 통해 추측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내를 찾기 위해 다시 외계로 떠난 차연. 그 곳에서의 그가 겪는 생활은 영화 아바타 뺨치는 신기한 외계의 어느 별의 이야기였다.  <변신> 속에서 차연이 겪게 되는 공간의 이야기는 지금껏 들어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지구의 '신'과 그 곳의 '신'이 말하는 교리가 일치한다는 점,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것이 일상적인 질병치료가 된다는 그 곳의 의료기술 등,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엄청난 상상력 속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만큼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흥미를 더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목사인 차연이라는 인물의 경험을 통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종교와 절대성, 유일신과 기독교, 지구 밖 우주라는 미지 세계에 대한 갈증' 등을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나간 내게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느 정도 전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독자였던 내가 종교를 보는 시선이 꽤 중립적인 사람 중의 하나였기에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독자들에게 두루 인정을 받기에는 조금 제약이 강한 스토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가능성은 늘 있습니다. 세상이 폭삭 멸망해도 무엇인가 존재한다면 그게 바로 가능성일 겁니다.'

 엄선한 두 문장 외에도 이 책에는 시선을 끌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이 많았다. 작가로서의 내공이 10년을 넘겨가는 작가가 만들어 낸,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을 찾는 재미는 이 책이 주는 흥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보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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