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산책자의 시간 - 김명인의 런던 일기
김명인 지음 / 돌베개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 명. 인. 먹고 사느라 잊고 있던 그를 다시 만난다. 어느덧 교수님이 되어, 클래식을 제대로 즐기시는 교수님이 되어, 아픈 몸을 이끌고 런던까지 가서 '내면'을 돌아본다. 아, 이렇게 자리를 잡는 분도 계신다는 생각에 잠시 허청거린다. 
 그리고 스스로 고백하는 '강박증'(173)의 시간, 1987년 민중혁명의 문학을 외치며 앞장선 그를 쫓아 부나방처럼 떠다니며 열광하던 날들이 스쳐 간다. 물론 나는 지금처럼 그때도 문학 "따위" 에 목숨을 걸지도 못하면서 담근 발을 빼내지도 못하고 젖은 글만 그를 추종하며 잊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가 다시 돌아왔다. 아니 내가 다시 그를 찾은 것이리라. 그의 일기를 일기처럼 읽어가다보니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그를 다시 만난다. 번득임은 무뎌져도 향취는 여전해 읽은 이를 매혹하게 하는 사색의 글과 이야기들, 책에는 온통 그어놓은 줄들이다. 책을 펼치면 서울을 떠나기 전 처음 쓴 일기의 구절들이 내게 되묻기 시작한다.
 정갈하고 단정하게 보낼 것이다. 소박한 밥상 깔끔하게 차려서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읽고 생각하고 쓸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 헛된 욕망과 동경에 지불하지 않고 아껴 쓸 것이다. - '집 떠남' 2011.8.24 (13)
 이게 무슨 말인가? 2012. 12. 19.의 처참한 패배 이후 내가, 아니 나를 포함한 몇몇이 이야기하던 '수신(修身)'의 기본 모습이 아니던가.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나로부터, 내 몸과 마음부터 갈고 닦겠다던 연말의 다짐이 서울을 떠나며 런던으로 향하는 그의 일기 첫 구절이라니…. 그리고 그가 돌아온 2012년의 겨울과 2013년의 새해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이라니….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 '음악, 내 일상의 마지막 단추' 2011.9.11 (36)
 그렇다. 익숙해지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으로 끝이라는 사실, 알면서도 늘 잊고 있는 말… 이 일기에는 이런 구절들이 속출?! 한다. 일일이 옮겨적기에 힘이 부칠 지경이다. 하여 이 책은 누구라도 덤벼들어 맛깔나는 글맛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권하고 싶은 책이 된다.
 적절한 비판과 교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공부, 이 싸움을 왜 시작했는가를 늘 잊지 말아야 한다. 내 공부는 처음부터 취미일 수도 교양일 수도 직업일 수도 없었다는 것을. - '테리 이글턴 읽기' 2011.9.17 (53)
 궁극의 영역에서 예술은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정치적일 때 가장 아름답다. 동시대 최고의 아름다움은 동시대의 관습과 이데올로기와 충돌하게 마련인 것이고, 그것이 예술인 한 최고의 정치성은 미적 충격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구현되지 않는 법이다. - '미학과 정치' 2011.9.20 (57~8)
 일기를 통하여 우리는 그의 책 이야기에서 철학, 사회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영국에서 느끼는 풍경에 대한 소회에 더하여 자연스레 베어나오는 그들 문화의 기풍도 아래의 글처럼 만날 수 있다. 역시 정갈하지만 적확한 표현이리라.

 어찌보면 잘 사니까, 살 만하니까 흥분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지사지하고 나눌 줄 아는 것이지요. 이 지점이 사실은 아프고도 부러운 지점입니다. - '옛 제국에서 보내는 짧은 편지' 2011.9.25 (79)

 

 

                     -  '아무 데도 안 나간 하루' 2011.10.28 (190)

 이처럼 오랜만에 만난 그의 글은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어 반짝거리는 글들을 허겁지겁 먹다보니 뷔페에서 배 불러가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도 얼마만인지. 읽는 쾌감과 더불어 되새김직한 말들이 이처럼 쏟아져나오다니, 문득 [장정일의 독서일기]처럼 이 일기도 계속되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도 해보았다.

 

 

            -  '렛 잇 비'  2011.11.6 (208~9) 

 주저리주저리 길어진  내 말은 접자. 맛깔나고 즐겨야 할 문장들을 몇 개 더 글 아래에 놓아두고 나는 그가 건네준 선물들중 무엇을 찾아 나의 길을 다시 떠날지 망설인다. 그리고 '되찾아 와야 할 시간들'(317)을 급하게 찾아 나선다. 이 밤.
 우린 아직도 치욕 속에 있고, 그 속에서 누군가는 살아남아 있고, 누군가는 그렇게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 치욕과 슬픔이 끝나기 전에는. - '되찾아 와야 할 시간들' 2012.1.3 (317)
2013. 1. 31. 밤, 'Let it be'를 들으며 한 달이 어느새 저물어갑니다.
              썩지 않으면서 이대로 조금씩만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271)
들풀처럼
*2013-004-01-04
*츨판사에 먼저 아름다운 책, 잘, 제대로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
*그리고 출판사에 건의합니다.
  1. 이 책에 나오는 저작물(음악 포함)의 목록을 뒤에 첨부하신다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징검다리로 더 공부하려는 분들에겐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주요 어휘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 또는 찾아보기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름 글 좀 읽었지만 선뜻 설명할 수 없는 - 감은 오지만 ^^; - 말들이 쫌 있습니다.  예) 링반데룽(105), 이그조틱(113)

 

(그리고 13쪽의 '지불'이라는 낱말...)

 

 

 

 

 너의 생각과 행동은 어떤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운가, 너의 자유로움은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가. 그리고 너는 너의 자유를 지금 당장 이행(실천)할 수 있는가. 이것을 기준으로 살 수 있다면 아마 그것은 역사를 초월한 혁명적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혁명적 삶을 산다는 것은 사실은 무서운 일이다. 나에게나 남에게나. - '우월한, 혹은 혁명적 삶' 2011.10.6 (111)
 여행이란 것이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흉내로라도 연습으로라도 멀리 떠나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적어도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에는 그때까지의 일상과는 다른 시간을 살게 된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겪는다. 노동도 과제도 없는, 어떤 의무도 없는 순수한 놀이의 순간을 산다. 가엾고 짧지만 해방의 순간이다. - '종이 한 장 차이의 삶' 2011.10.27 (184)
 쓰게 되면 쓰고 아니면 안 쓴다. 그게 좋다. 그래야 쓰고 싶은 글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솔직하게 쓸 수 있다. - '되찾아 와야 할 시간들' 2012.1.3 (311)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엔 내 머리로 밀고 나가지만 조금 지나서 글의 조리가 서면 글이 글을 밀고 나가는 단계가 오고 그러면 나는 자판을 두드리는 손만 빌려주면 되는데 - '기억과의 투쟁' 2012.1.30  (340)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작업을 해 나가려 하든, 내 일상 노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강의에 있어서는 완벽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의 노동이 부실하고 공허해지면 그 나머지는 모두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내 삶의 마지노선이다. - '런던을 떠나다' 2012.2.13 (349)                                                               

 

 

height=315 src="http://www.youtube.com/embed/0714IbwC3HA" frameBorder=0 width=420 allowfullscree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