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상황은 일상의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진다. (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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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여쪽에 이르는 책의 두께를 보며 거의 2년만에 제대로 책을 손에 잡기 시작하자마자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동안 즐겨 만나온 "일루저니스트"(들녘 출판사의 세계문학 시리즈)의 27번 째 소설이기에 과감히 부딪혀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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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코츠키'가문에 관한 이야기가 책장을 펼치자마자 다가오며 언듯 부엔디아 가문의 "백년의 고독"이 스쳐갔지만 이야기의 전개와 방향성은 사뭇 달랐다. 이 책 역시 한 가문 혹은 한 가족의 3대 이상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밝고 유쾌한 분위기보다는 장중하고 묵직한 느낌을 계속 던져준다.
![](http://cfile232.uf.daum.net/image/137ECF3A50B8B6781006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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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가족 구성원의 의미란? 이런 질문을 요즘말로 '돌직구'로 물어오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셈이다. 자신의 핏줄이 아닌 아이를 아무런 스스럼없이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쿠코츠키家의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이 스탈린 시대 및 1960년대에 임을 고려할 때 무척 앞서가는게 아닌지 생각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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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에 얽매이지않는 가족이 어쩌면 더 정직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닌지… 이런 물음들은 요즘에야 조심스레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던지. 물론 최근에는 TV드라마에도 이런 가족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보고싶다"의 정우네 가족을 보라! 주인공 한정우와 죽은(것으로 알고 있는) 여자 친구의 엄마와 그 엄마의 남편을 무고죄로 사형장에 보낸 형사의 딸이 어울려 한가족이라니! 요즘 말로 뙇!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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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주인공 1代에 해당하는 의사 파벨도 2代의 재즈 색소포니스트 세르게이도 이야기의 문을 닫는 손녀 쉐냐도 세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핏줄의 끈이 없다. 물론 파벨의 아내인 엘레나와 세르게이의 아내인 타냐와 쉐냐는 한? 핏줄이다. 그러니까 외가쪽 핏줄은 계속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파벨도 세르게이도 타냐와 쉐냐를 바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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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 엘레나 - 타냐 - 쉐냐로 이어지는 시간적인 흐름에 따른 이야기의 전개는 무리없이 잘 진행되는 듯하다. 그러나 엘레나의 어떤 깨달음? 혹은 치매증세? 환상쯤에 해당하는 2부는 잠시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이거 무슨 이야기인가하며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같이 꿈속을 헤매이는 나를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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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예견된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네. 모든 건 즉석에서 일어나지. 우리가 마네킹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 동안, 난 우리가 그걸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우리는 계단 하나를 더 오른 거야. 모두가 각각 자신의 계단 하나를 말이지." (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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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어디 계획대로 뜻한 바대로 이뤄지는게 아님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중요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변의 느슨한 관게의 사람들이 개인의 삶에 더욱 많은 변화를 주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잘 짜여진 인과관계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 작가는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어디선가 또 이야기하지만- 산다는게 다 이런 거 아니던가하는 느낌을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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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리라.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우리 사는 모습임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가는데 흔들리는건 당연하다는 생각,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으리라. 긴 이야기중에 타냐와 세르게이가 만나 재즈를 매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마도 제일 행복한 장면으로 와닿았고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http://cfile227.uf.daum.net/image/0333DD3B50B8B7B71EFE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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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엘레나의 기억상실과 관련하여 파벨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앞으로도 나를 많이 괴롭힐 것 같다. 기억의 공유!라는 문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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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함께 한 삶 속에서 한 사람은 어떤 것을 기억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다른 것을 기억하다니. 만일 동일한 것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두 사람은 삶을 공유했다고 할 수 있을까? (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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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30. 밤,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에 참 오래도 걸었네'
- 최백호, <길 위에서> 가사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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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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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02-11-02
![](http://cfile215.uf.daum.net/image/02584D4F50B8C0370D02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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