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코츠키의 경우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7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이수연.이득재 옮김 / 들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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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행복한 상황은 일상의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진다. (677)
 750여쪽에 이르는 책의 두께를 보며 거의 2년만에 제대로 책을 손에 잡기 시작하자마자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동안 즐겨 만나온 "일루저니스트"(들녘 출판사의 세계문학 시리즈)의 27번 째 소설이기에 과감히 부딪혀 보았다.

 '쿠코츠키'가문에 관한 이야기가 책장을 펼치자마자 다가오며 언듯 부엔디아 가문의 "백년의 고독"이 스쳐갔지만 이야기의 전개와 방향성은 사뭇 달랐다. 이 책 역시 한 가문 혹은 한 가족의 3대 이상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밝고 유쾌한 분위기보다는 장중하고 묵직한 느낌을 계속 던져준다.

 

 

 

  가족이란? 가족 구성원의 의미란? 이런 질문을 요즘말로 '돌직구'로 물어오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셈이다. 자신의 핏줄이 아닌 아이를 아무런 스스럼없이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쿠코츠키家의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이 스탈린 시대 및 1960년대에 임을 고려할 때 무척 앞서가는게 아닌지 생각도 든다.
 핏줄에 얽매이지않는 가족이 어쩌면 더 정직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닌지… 이런 물음들은 요즘에야 조심스레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던지. 물론 최근에는 TV드라마에도 이런 가족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보고싶다"의 정우네 가족을 보라!  주인공 한정우와 죽은(것으로 알고 있는) 여자 친구의 엄마와 그 엄마의 남편을 무고죄로 사형장에 보낸 형사의 딸이 어울려 한가족이라니! 요즘 말로 뙇!이다. )
  이야기의 주인공 1代에 해당하는 의사 파벨도 2代의 재즈 색소포니스트 세르게이도 이야기의 문을 닫는 손녀 쉐냐도 세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핏줄의 끈이 없다. 물론 파벨의 아내인 엘레나와 세르게이의 아내인 타냐와 쉐냐는 한? 핏줄이다. 그러니까 외가쪽 핏줄은 계속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파벨도 세르게이도 타냐와 쉐냐를 바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파벨 - 엘레나 - 타냐 - 쉐냐로 이어지는 시간적인 흐름에 따른 이야기의 전개는 무리없이 잘 진행되는 듯하다. 그러나 엘레나의 어떤 깨달음? 혹은 치매증세? 환상쯤에 해당하는 2부는 잠시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이거 무슨 이야기인가하며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같이 꿈속을 헤매이는 나를 만난다.
 "여기에 예견된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네. 모든 건 즉석에서 일어나지. 우리가 마네킹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 동안, 난 우리가 그걸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우리는 계단 하나를 더 오른 거야. 모두가 각각 자신의 계단 하나를 말이지." (354)
 산다는 것, 어디 계획대로 뜻한 바대로 이뤄지는게 아님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중요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변의 느슨한 관게의 사람들이 개인의 삶에 더욱 많은 변화를 주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잘 짜여진 인과관계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 작가는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어디선가 또 이야기하지만- 산다는게 다 이런 거 아니던가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리라.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우리 사는 모습임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가는데 흔들리는건 당연하다는 생각,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으리라. 긴 이야기중에 타냐와 세르게이가 만나 재즈를 매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마도 제일 행복한 장면으로 와닿았고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엘레나의 기억상실과 관련하여 파벨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앞으로도 나를 많이 괴롭힐 것 같다. 기억의 공유!라는 문제는….
 20년 동안 함께 한 삶 속에서 한 사람은 어떤 것을 기억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다른 것을 기억하다니.  만일 동일한 것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두 사람은 삶을 공유했다고 할 수 있을까? (534)

     2012. 11. 30. 밤,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에 참 오래도 걸었네' 

                         - 최백호, <길 위에서> 가사中

들풀처럼

*2012-00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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