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쏟아지는 빗속에 그녀를 만났습니다. 급작스런 출장, 서울로 가는 KTX 안에서 만난 그녀, 한 시대의 굴레 속에 '봄날의 꿈'처럼 스러져간 우리 공주님을 만났습니다. 적지 않은 역사책을 읽고 역사 드라마를 보고 살았슴에도 처음 만난 사람, 그녀는 우리들의 공주였지만 한 번도 제대로 불러본 적도, 만나본 적도 없는 잊혀진 사람이었습니다.
 
 저물어가는 슬픈 조국에 어찌 가슴 아픈 일들이 넘쳐나지 않았겠으며 어찌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없었으랴만 이번에 만난 그녀,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몰락한 왕조의 비극에 더하여 사랑하는 핏줄로부터의 버림받음까지 이어지는, 말 그대로 비극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다 보면 굴곡이 있게 마련이지만 한 번쯤은 행복한 시간을 경험하는 법인데 우리들의 그녀, 덕혜옹주에게는 자라면서부터 온통 떠나감, 잃음, 그리움의 날들뿐입니다. 물론 그 결말조차도 쓸쓸하고 또 씁쓸합니다. 자기가 놓은 딸조차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면 더 이상의 괴로움은 있을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볼모로 끌려간 일본에서 어울리지 않는 일본인과 강제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조선의 핏줄을 부정 당하는 엄마라니…. 게다가 덕혜옹주의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정신병원 생활에서 빠져나와 겨우 돌아온 조국에서의 삶이 어땠는지는 언급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인제야 덕혜옹주를 만나는 현실이니까요.
 
 "모든 일이 봄날의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구나. 모든 것은 사라짐으로써 덧없나니."  (403)
 
 그렇게 조용히,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떠나간 그녀를, 쏟아지는 봄비 속에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아마 살아가며 다시 그녀를 찾을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픈 생애는 제 가슴에 두고두고 남아 지나온 우리 역사를 돌이킬 때마다 함께 되살아올 것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지만 '황녀', '옹주'는커녕 평범한 필부의 삶조차 살아보지 못한 불행한 시대의 더 불행했던 여인, '덕혜옹주'를 이제 우리는 보내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이름도 없이 잊히고 사라져 갔지만 절대 떠나지 않을 사람으로 우리 곁에 남을 '덕혜옹주'님! 그립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느 신문에 실린 지은이의 말씀처럼 이제는 살아서 '저 혼자 가는' 그녀를 따라 저 역시 걸어갑니다.
 
2010. 2. 28. 봄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대보름 밤입니다.
 
들풀처럼

*2010-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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