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쏟아지는 빗속에 그녀를 만났습니다. 급작스런 출장, 서울로 가는 KTX 안에서 만난 그녀, 한 시대의 굴레 속에 '봄날의 꿈'처럼 스러져간 우리 공주님을 만났습니다. 적지 않은 역사책을 읽고 역사 드라마를 보고 살았슴에도 처음 만난 사람, 그녀는 우리들의 공주였지만 한 번도 제대로 불러본 적도, 만나본 적도 없는 잊혀진 사람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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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물어가는 슬픈 조국에 어찌 가슴 아픈 일들이 넘쳐나지 않았겠으며 어찌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없었으랴만 이번에 만난 그녀,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몰락한 왕조의 비극에 더하여 사랑하는 핏줄로부터의 버림받음까지 이어지는, 말 그대로 비극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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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한평생을 살다 보면 굴곡이 있게 마련이지만 한 번쯤은 행복한 시간을 경험하는 법인데 우리들의 그녀, 덕혜옹주에게는 자라면서부터 온통 떠나감, 잃음, 그리움의 날들뿐입니다. 물론 그 결말조차도 쓸쓸하고 또 씁쓸합니다. 자기가 놓은 딸조차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면 더 이상의 괴로움은 있을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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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모로 끌려간 일본에서 어울리지 않는 일본인과 강제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조선의 핏줄을 부정 당하는 엄마라니…. 게다가 덕혜옹주의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정신병원 생활에서 빠져나와 겨우 돌아온 조국에서의 삶이 어땠는지는 언급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인제야 덕혜옹주를 만나는 현실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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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이 봄날의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구나. 모든 것은 사라짐으로써 덧없나니." (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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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조용히,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떠나간 그녀를, 쏟아지는 봄비 속에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아마 살아가며 다시 그녀를 찾을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픈 생애는 제 가슴에 두고두고 남아 지나온 우리 역사를 돌이킬 때마다 함께 되살아올 것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지만 '황녀', '옹주'는커녕 평범한 필부의 삶조차 살아보지 못한 불행한 시대의 더 불행했던 여인, '덕혜옹주'를 이제 우리는 보내지 않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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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이름도 없이 잊히고 사라져 갔지만 절대 떠나지 않을 사람으로 우리 곁에 남을 '덕혜옹주'님! 그립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느 신문에 실린 지은이의 말씀처럼 이제는 살아서 '저 혼자 가는' 그녀를 따라 저 역시 걸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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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2. 28. 봄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대보름 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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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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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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