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해항로 민음의 시 161
장석주 지음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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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해 봄, [오늘의 시]란 책에서 "몽해항로"를 처음 만났다. '이 시는 시린 무릎에 담요를 덮고 썼던 몇 편 중의 하나다.'라는 시인의 고백을 거기서 들었다.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 "몽해항로 2"에서 ) (34)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떠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떠올랐나 보다. 그렇게 2009년 봄날이 갔다.  
 
 사는 것 시들해
 배낭 메고 나섰구나.
 노숙은 고달프다!
 알고는 못 나서리라.
 
 아득한 길들!  
                    - "달팽이"   (47)
 
 그리고 2010년 설 무렵 시집으로 만나는 [몽해항로]는 삶의 바다를 건너가는 우리네 모습, 그대로다. 때론 흔들리기도 하고 때론 떠밀려가기도 하면서 우리는 한 시절을 항해중이다.  먼 길을 나선 저 '달팽이'처럼 언젠가는 닿으리라는 꿈을 안고…. 특히, 이 시는 평소 즐겨 부르는 패닉의 노래 <달팽이>랑 건네주는 느낌이 비슷하다. 와락 가슴에 와 안긴다. '알고는 못 나서'는 이 길, - 난 인터넷상의 '퍼스나콘'도 달팽이를 사용 중이라 더욱 눈에 들어온다.- '아득'하지만 함께 가니 덜 외롭다.
 
 누군들 얼룩이 되고 싶었으랴.  - "얼룩과 무늬"에서  (29)
 
 ~ 겨우, 살아 있으니까,
 겨우, 사랑을 견딜 수 있을 뿐이니까.  - "겨우"에서  (17)
 
 살아가며 '누군들 얼룩이 되고 싶'으랴. '겨우' '살아 있으니까' 살아내는 삶을, 우리는 꿈()처럼, 안개 낀 바다()처럼, 이 생(生)을 항해하는 중이다. 그 '항로(航路)'에 이런 따듯한 시집 한 권 있음이 적지않은 위로가 된다.
 
 시인은 "몽해항로" 연작 시편과 다른 시들을 따로 나누어 놓지는 않았다. 그처럼 굳이 똑같은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시들은 연작 시편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지나간 날들과 다가오는 삶에 대하여 속삭이며 다독거려준다.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스럽다. 마치 항해에 지친, 해 저무는 저녁, 함께 나지막이 부르는 노랫가락처럼 말이다. 
 
 전체를 놓치고 부분에 집착한 탓,
 이기는 법은 단순하나
 지는 이유는 천 가지다.
 
 행복은 단순하고
 불행은 복잡하지 않던가.
 거울의 뒷면 같은 진실,
 더 큰 진실일수록 
 잘 보이지 않는다. 
  - "바둑 시편"에서  (79)
 
 
 소나무는 굽고 
 
 솔잎은 푸르렀다.
 
 기차가 지나갔다.
 
 어느덧 집은 낡았다.
 
 금생(今生)을 용서하니,
 
 식욕이 푸르렀다. 
   - "나의 한때는 푸르렀다"  (59)
 
  시집을 통하여 만난 시들은 잔잔한만큼 조금은 심심하기도 하다. 가슴을 뒤흔드는 격문은 찾기 어려웠다. 아마도 세상에서 충분히 겪는 큰 격랑을 시(詩)에서라도 피하라는 시인의 격려!이리라. 그리하여 삶은 모자라기도 하고 넘치기도 하면서 출렁이며 잔잔해지는 것이 아닐까?
 
 '곧 바람이 와서 나를 데려가리라' (101)고 시인은 이야기하지만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좋은 것들은 늦게 오'리라. '가장 늦게' (103)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그러니 우리는 이 삶을 꿈결처럼 넘실거리며 살아내야만 한다. 그러다보면 언제든 어디에서든 우리는 살아갈 수 있으리라.
 
 저녁이면 물것들이
 살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기절한 듯 몸 뉜
 물설고 낯선 여숙(旅宿),
 영월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물것들이 일러 주는 것이다. 
    -  "영월"   (72)
 
 
2010. 2. 14. 설, 우리네 삶을 다시 돌이켜보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새날 새봄처럼 피어나시기를 ~ 
 
들풀처럼
*2010-015-02-06
 
 
*책에서 옮겨 둡니다.
 가을 가뭄은 길고 꿈은 부쩍 많아지는데
 사는 일에 신명은 준다.
 탕약이 끓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나, 옛날은 가고 도라지 꽃은 지고
 간고등어나 한 마리씩 먹으며 살아도 되나.
  - "몽해항로 2 - 흑해행"에서  (33)
 
 모든 습관은 무섭다.  - "저공비행"에서  (55)
 
 
 다만 고요 속에서 시들고 마르고 바스러지는 
 저 무수한 멸망과 죽음들이
 이 가을에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를 
 부디 깨닫게 하소서. 
  - "가을의 시"에서   (91)
 
 바람은 창가에 매단 편종을 흔들고
 제 몸을 쇠로 쳐서 노래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덜 불행했으리라.
 노래가 아니라면 구업을 짓는
 입은 닫는 게 낫다. 
 ~ ~
 누런 해가 뜨고 흰달이 뜨지만 
 왜 한 번 흘러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가.
 바람 불면 바람과 함께 엎드리고
 비가 오면 비와 함께 젖으며
 곡밥 먹은 지가 쉰 해를 넘었으니,
 ~ ~
 곧 바람이 와서 나를 데려가리라. 
  - "몽해항로 5 - 설산 너머"    (101)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어.
 좋은 것들은 
 늦게 오겠지, 가장 늦게 오니까  - "몽해항로 6 - 탁란"에서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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