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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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1989년 1월 10일 초판 발행>를 일찌감치 읽고 '보관중'이었다. 그리고 [네루다의 우편배달부]<1판 1쇄 펴냄·2004년 7월 5일> ! 역시 '보관중'이었다. 부끄럽지만 '보관중이었다'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이 두 책을 진즉에 가지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내 것으로, 나의 이야기로 만들지 못하여서이다. 

 



 
 
 칠레의 위대한 시인,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라는 거창한 호칭을 뒤로하고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의 참모습을 전해주어 화제가 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영화도 소설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다가서지 못하였다. 남미문학에 대한 모자란 이해 탓일수도 있고 그저 네루다라는 시인에 대한 호기심이 적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이번에 '우편배달부'를 만났다.
 
 책을 펼치면 국민시인 네루다와 그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마리오라는 젊은 우편배달부가 만들어가는 삶과 사랑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글 읽는 재미, 이야기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특히 49~50쪽에 이어지는 마리오의 연인 베아트리스에 대한 묘사, 63쪽에서 전개되는 베아트리스와 과부 어머니의 말다툼은 남미 특유의 해학을 충분히 만나게 해준다. 읽다가 많이 웃기도 하였다. 
 
 "침대에서는 대통령이든 신부든 공산당 시인이든 똑같아. '키스를 하고 떠나가는 뱃사람들의 사랑이 나는 좋네. 언약은 남기지만 영원히 돌아오지 않네.'라는 시를 누가 썼는지 알아?"   "네루다 씨요!"  (65)
 
  200여 쪽도 되지 않은 소설이지만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10)는 순간까지 우리는 마리오가 바라보는 네루다와 마리오를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을 통하여 시인의 넉넉함과 시인을 닮아 시인이 되어가는 과정의 마리오를 유쾌,통쾌하게 즐길 수 있다. 그 사이 흐르는 칠레의 급변하는 정세는 덤이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85)
 
 "글이란 음미해야 하는 거예요. 입 안에서 스르르 녹게 해야죠."  (106)
 
 극 중 마리오가 하는 이야기는 곧, 시인 네루다가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소설의 지은이가 전하는 매세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정말 삶 자체가 시가 되어버린 한 시인과 그를 닮아 시인처럼 살아갔던 한 사람을 기쁘고 반갑고 즐겁게 만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천국으로 가는 열차는 완행이고, 축축하고 숨 막히는 역에서 지체하는 법이다. 오직 지옥행 열차만이 급행이다.  (79)
 
 이 이야기는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끝을 맺는다.  (10)
 
 글머리! 에 지은이가 밝혀놓았듯이 이 책의 결말은 씁쓸하고 또 씁쓸하다. 남미의 정치적 상황이 요즘이라고 더 나아진 것 같지도 않지만 느닷없는 쿠데타와 대통령의 죽음 그리고 이어지는 네루다의 죽음과 마리오의 연행…. 1980년대를 뚫고 지나온 이들은 한눈에 들어오는 살풍경들. 그렇게 행복했던 한 시대는 막을 내린다. 제국주의 이야기는 여기서는 하지 않으련다.
 
 아마 내가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나는 결말의 허망함에 몸서리쳤으리라. 하지만, 2010년, 책을 사들이고도 다섯 해나 묵혀 두었다 만난 이야기는 풍요롭고 재미있고 황홀하였다. 마치 한 판의 춤이 어우러지는, 신나는 잔치를 본 듯하다. 비록 잔치는 폭우 속에 끝이 나지만 언젠가 여기,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될 것임을 알기에 지금의 나는 슬프거나 허망해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며 지켜볼 뿐이다. 새로운 춤판이 벌어질 때까지 말이다. 
 
 불타는 인내를 지녀야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이 충만한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 (네루다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에서) (131)
 
 이 책을 덮고 책장을 뒤져 묵은 시집을 꺼내본다. 시집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지 밑줄 친 구절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 편의 詩는 눈에 확 들어오며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끝머리에 조금이나마 옮겨둔다. 네루다를 위하여. 젊은 날의 나를 위하여!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 <詩> 부분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143) 에서
 
 
2010. 1. 18. 밤, 제게도 詩가 찾아온 적이 있답니다….
 
들풀처럼
*2010-007-01-07
 
 
*책에서 옮겨 둡니다.
 시인의 원칙 : 네루다는 내 천박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말했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현 부인 마틸데 우루티아이고 '창백한 과거'를 뒤적일 만한 정열도 관심도 없다고 말이다.  (12)
 
 이 책을 쓰는 데 십사 년이 걸렸다  (12)
 
 그러는 사이 아뿔싸! 책을 그만, 그만, 그만…… 몽땅 읽어버리고야 말았다.  (22)
 
 메타포 :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27)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29)
 
 시인은 영감을 얻으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만 돼. 아무것도 모르고 쓸 수는 없는 걸세.  (45)
 
 "유식한 척하는 양반. 유물론자가 뭐요?" ~ "장미와 통닭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할 때 항상 통닭을 집는 사람이죠."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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